[베이스볼토피아] 우등생보다 개근생, 개근생보다 모범생?

입력 2015-08-03 05:45: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국가대표 리드오프 민병헌은 두산의 핵심전력이다. 민병헌이 5월 17일 KIA전에서 상대 투수의 투구에 무릎을 맞고 쓰러져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감독과 코치, 동료들, 프런트 모두 민병헌만큼 놀라고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바라봐야 했다. 스포츠동아DB

■ 기량·내구성·솔선수범…프로선수의 조건들

기량 좋아도 부상 달고 살면 ‘만년 기대주’
김주찬·민병헌 등 부상 위험에 도루 자제
마정길처럼 솔선수범하는 선수도 꼭 필요

흔히 야구선수의 가량파악은 달빛 속에서 미인을 고르는 것만큼 어렵다고 한다. 몇몇 종목은 그 선수가 뛰는 모습이나 플레이 한두 번만 보면 기량이 짐작되고 예상도 거의 틀리지 않지만 야구는 다르다. 겉으로 드러나는 기량 외에도 쉽게 드러나지 않는 멘탈이라는 요소가 있기에 세상의 어느 예측보다 힘들다.

스카우트들은 현재보다는 선수들이 어디까지 성장할 것인지 예측하는 것에 포인트를 둔다. 이들은 ▲리그를 대표하는 슈퍼스타감 ▲팀의 주전급 ▲필요한 백업요원 ▲2군용 혹은 경기진행을 위해 필요한 등급 등으로 선수들을 예측한다. 이 평가에 따라 선수들에게 공을 들이는 정도나 성장할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시간도 달라진다. 이번 시즌 144경기 체제가 되면서 스카우트들이 눈여겨봐야할 또 다른 항목이 하나 생겼다. 바로 내구성이다.


● 우등상도 좋지만 개근상이 팀에 더 필요하다


빡빡한 경기일정상 모든 경기를 커버할 수는 없겠지만 자주 출장하는 튼튼한 선수가 반짝 기록을 내는 선수보다 팀에 더 필요한 존재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주전들이 돌아가면서 다치는 바람에 전반기 내내 고전했던 SK 김용희 감독은 “성적을 잘 내는 선수도 좋지만 매일 경기에 출장해 주는 꾸준한 선수가 더 좋다”고 했다.

sky스포츠의 이효봉 해설위원은 독특한 시각으로 선수를 분류했다. “일주일 잘하는 선수, 한달 반짝하는 선수, 두 달 잘하는 선수, 반 시즌을 버티는 선수, 전체 시즌의 70∼80% 밖에 소화하지 못하는 선수, 전 경기를 뛰는 선수가 있다. 원해서 부상을 당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부상도 대부분의 경우는 선수가 어떤 원인을 안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부상이 없는 선수가 진짜로 팀의 중요한 존재고 이런 선수가 슈퍼스타다. 기량은 좋지만 자주 부상을 달고 다니는 선수는 불운한 스타 내지는 만년 기대주일 뿐”이라고 했다.

이번 시즌 화제의 중심에 있는 팀 한화는 유난히 주전 선수들의 부상이 잦다. 최근에는 이용규가 공에 맞아 또 결장해야 한다. 선수가 다치면 감독의 마음은 더 아프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20세기 야구선수 가운데 해태의 김성한 이순철 이종범, MBC∼LG의 이광은 김재박 등은 대단한 선수였다. 이들은 거의 경기에 빠지지 않았다. 이광은은 한 시즌(1987년) 내내 한 이닝도 빠지지 않고 출전했던 적도 있다. 주전자리가 결정되면 바뀌는 것을 싫어했던 해태 김응룡 감독은 선수들이 아프다고 경기에 빠지려고 하면 불같이 화를 냈다. 김성한은 선수생활 말년 때도 후배들에게 자기 자리를 잠시라도 내주는 것을 꺼렸다. 누구는 이를 욕심이라고 했지만 그런 욕심과 자기 자리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에 자랑할 만한 대기록을 세웠다.


● 몸을 아껴야 팀에 도움이 되는 21세기의 야구

최근 들어 선수들의 내구성은 떨어지는 추세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20세기 선수들보다 더 우람한 몸을 만들었지만 경기에 나가는 횟수는 줄고 있다. 요즘 KIA는 김주찬을 볼 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부상을 달고 사는 그가 혹시라도 위험한 플레이를 하다 다칠 경우 팀의 피해가 더 크기 때문에 조심하라는 사인을 자주 낸다. 김주찬은 KIA가 FA(프리에이전트)로 비싼 돈을 들여 영입했을 때 기대했던 공·수·주 3가지 능력 가운데 주를 보여주지 못한다.

두산 민병헌도 최근 도루가 줄었다. 잔부상이 많아 도루를 자제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요즘 많은 선수들이 팀의 주전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2∼3년차까지는 반짝해서 열심히 달리지만 그 다음부터는 적당히 몸을 사린다. 그러다보니 전통적인 1번타자는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도루를 하다 부상으로 팀에 피해를 주기보다는 안정적인 플레이를 선호한다. 이러다보니 요즘 야구는 이전처럼 치열하지 않다. 자신의 몸을 희생해서라도 오늘 이 경기를 꼭 따내겠다는 열의가 이전보다는 많이 줄어들었다. 2007∼2008시즌 두산이 보여줬던 ‘달리는 야구’가 지금도 NC에서 이어지고는 있지만 우리 야구 전체의 흐름이 발보다는 파워와 장타로 넘어가는 추세다. 타고투저 현상과 맞물려 한 점에 대한 가치도 떨어지는 추세다.

선수들은 도루의 위험성보다는 방망이로 점수를 내는 안정적인 플레이를 선택했다. 물론 이런 선수들을 욕할 수는 없다. 한 점을 위해 절박하게 뛰고 다양한 작전이 나오던 스몰볼은 어느새 사라졌고 지금은 홈런도 많고 삼진도 많이 당하는 단순한 야구의 시대다.

최근 흐름에서 본다면 NC의 에릭 테임즈는 정말 대단한 선수다. 홈런왕을 다투면서 도루도 자주 시도한다. 경기 도중 팀이 이기기 위해 자신이 가진 기량을 발휘해야 할 필요가 있는 때는 몸을 사리지 않고 뛴다. 이런 선수가 진짜 영양가 있는 선수다.


● 우등생은 아니더라도 모범생은 팀에 꼭 필요하다

팬은 우등생을 더 기억하고 개근생도 칭찬하지만 팀을 이끄는 감독의 입장에서는 더 필요한 선수가 있다. 바로 모범생이다. 지난달 7일 넥센 마정길은 개인통산 500경기에 등판했다. 1-3으로 뒤진 7회초 2사 1루에서 등판해 1.1이닝을 던졌다. 팀이 1-3으로 패한 경기여서인지 KBO리그 통산 31번째의 기록은 묻혀 지나갔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어도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은 있었다. 넥센의 손혁 투수코치는 “정말 팀에 필요한 선수”라고 했다. “빛나지는 않지만 조연으로서 자기 역할을 싫은 소리 없이 해 준다”고 말했다.

현재 팀에서 맡은 역할은 추격조. 필승조와 함께 불펜진의 한 축이지만 좋게 말해서 추격조고 나쁘게 말하면 패전 처리다. 강팀이라도 4할 이상은 패하는 야구에서 어떻게 지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저마다 에이스의 빛나는 역할만 고집한다면 팀은 와해된다. 질 경우 누군가 나서서 깔끔하게 뒤처리를 해줘야 한다. 이런 설거지를 잘 해주고 추가실점을 막아 팀에 추격의 계기를 마련해주는 마정길은 빛나지는 않지만 팀에는 꼭 필요한 역할이다. 어떤 상황이건 덕아웃의 호출이 오면 군소리 없이 “던지겠다”고 한다. 웜업피칭수도 적다. 급할 때는 2개만 던지고도 마운드에 오른다.

넥센 염경엽 감독은 헌신도 헌신이지만 후배나 동료들에게 행동으로 보여주는 자세에 높은 점수를 준다. “선배가 꼭 앞으로 나서서 후배들에게 미팅을 하고 지시하는 것보다는 묵묵히 행동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조용한 리더가 더 중요하다. 마정길은 이런 역할을 잘 한다”고 했다. 세상에는 다양한 꽃이 있다. 모두가 아름답기만 하면 사람들은 꽃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을 것이다. 화려한 장미도, 진흙속의 연꽃도, 가녀린 코스모스도, 이름 없는 야생화도 자기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기에 더욱 꽃이 아름다운 것이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