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민 감독 사퇴는 ‘프런트 배구’의 예고된 비극

입력 2016-02-12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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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김종민 감독이 11일 성적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대한항공은 최근 5연패에 빠지며 4위 삼성화재에 3위 자리를 위협받고 있다. 대한항공은 장광균 코치에게 감독대행을 맡겨 남은 시즌을 치를 계획이다. 스포츠동아DB



5라운드 5연패로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던 대한항공이 항로에서 급히 이탈했다. 팀을 이끌던 기장 김종민 감독이 11일 스스로 물러났다.

V리그 출범 이후 대한항공에서 중도사퇴한 4번째 사령탑이다. 장광균 코치가 잔여시즌 감독대행을 맡는다. 올 시즌을 앞두고 ‘프런트 배구’를 선택하면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결말이다.

대한항공은 국가대표 세터 한선수의 복귀와 두꺼운 선수층을 앞세워 창단 이후 첫 우승을 다짐했지만, 6라운드를 앞두고 비상착륙했다. 김 감독은 “팀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선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번 시즌 꼭 성적을 내야 하는데, 이대로 계속 두면 더 나빠질 것 같아서 결정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반전의 계기가 됐으면좋겠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4라운드까지 선두 OK저축은행에 승점 1점차로 접근하며 우승을 꿈꾸던 대한항공은 왜 5라운드 들어 하강기류에 빠져들었을까.

●프런트 배구를 선택했지만!

대한항공은 지난 시즌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문제점을 찾았다. 프런트가 내린 결론은 과거보다 강화된 코칭스태프의 역량이었다. 외국으로 눈을 돌렸다. 브라질 출신 코치 2명을 데려왔다.

이들에게 선수관리와 훈련 등을 맡겼다. 프런트 배구를 시도했다. 김종민 감독은 탐탁치 않아 했다. 구단은 그런 김 감독을 달랬다.

역할분담을 통해 공존하는 길을 찾자고 했다. 대한항공 일반직원 신분인 김 감독은 구단의 설득에 마음을 바꿨다. 올 시즌이 마지막이라며 배수진을 쳤다.

●산체스의 부상과 모로즈의 등장이 변수가 되다!

초반 기세는 좋았다. V리그 3번째 시즌인 산체스가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었지만, 국내선수들의 분전으로 승리를 따냈다. 산체스는 불만이 많았다. 기량도 예전만큼은 아니었다. 차츰 국내선수들과 벽이 생겼다. 어느 경기에선 한선수가 세트 내내 공을 거의 주지 않았다.

산체스는 경기 후 “공을 많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다 사고가 생겼다. 경기를 앞둔 훈련 도중 네트를 지탱해주는 쇠에 부딪쳐 부상을 입었다. 배구인들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태업’으로 보는 사람도 있었다. 진실은 누구도 모른다. 울고 싶은데 뺨을 때려준 꼴이었다. 김종민 감독은 교체를 결정했다. 선수들도 찬성했다. 그만큼 산체스는 인심을 잃었다.

모로즈가 새로 왔다. 출발은 좋았다. 화려한 세리머니로 동료들의 사기를 올렸다. 문제는 기량이었다. 산체스와 비교하면 타점과 테크닉이 떨어졌다. 게다가 문제가 있는 세리머니로 몇 차례 지적을 받은 뒤로는 플레이가 눈에 띄게 주눅 들었다. 이전과 같은 활기가 없었다. 가뜩이나 리더가 없는 팀이었다. 모로즈가 조용해지자 덩달아 다른 선수들도 조용해졌다.

●5라운드 도중 위태했던 불씨가 폭발했다!

1월 27일 수원에서 벌어진 한국전력과의 원정경기. 대한항공은 1-3으로 패했다. 2연패, 3위로 추락했다. 경기 후 구단 고위 관계자가 코트에 도열한 선수단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동안 열성적으로 선수들을 지원해왔고 운동을 했던 경기인 출신으로서 맥없이 경기를 한 것에 대한 분노는 이해되지만, 사단이 났다. 이미 여려 차례 위태위태한 장면을 노출시킨 대한항공이었다.

김종민 감독은 “그만두겠다”고 했다. 사태가 겉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치닫자 구단은 김 감독을 달랬다. 김 감독도 다음 날 “선수들의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일부러 그랬다”며 좋게 포장했지만, 선수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팀의 행보는 예상대로였다.

꼭 이겨야 한다는 부담이 몸을 무겁게 했는지 선수들은 너무 무기력했다. 지난 시즌 현대캐피탈과 여러 면에서 닮은 상황이 나왔다.

선수들이 흔들릴 때 누군가는 중심을 잡아줘야 하고, 선수 스스로 힘을 모으는 팀 문화가 필요하다. 대한항공은 V리그 이후 5명의 감독이 있었지만 4명이 중도에 퇴진했다. 몇 년째 시즌 도중 곪아왔던 상처가 터지면 근본적 치료 대신 감독이 희생양으로 물러나는 것으로 해결했다.

이번에도 역시 극약처방으로 선수들의 자각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결말이 나올지는 누구도 모른다. 결국 팀을 살리고 죽이는 것은 선수의 마음이다. 그런 팀 문화를 만드는 것은 선수들과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다.

공심위상(攻心爲上) 공성위하(攻城爲下), 사람의 마음을 공략하는 것이 상책이고 성을 공략하는 것은 하책이라고 했다. 서로의 마음을 모으지 못한 팀은 모래성에 불과하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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