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 일하는 해외 인재 사회를 떠받치는 중심축[광화문에서/박형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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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도쿄 특파원
박형준 도쿄 특파원
“아빠, 내 뒷자리에 흑인 학생이 있어. 좀 시끄럽지만 재미있는 친구야.”

1월 일본 도쿄의 한 초등학교에 편입했던 4학년생 딸이 최근 이런 말을 했다. 일본 학생들이 낯선 한국 학생을 ‘왕따’ 시킬까 봐 은근히 걱정했는데, 다른 외국인 학생이 더 있다는 말에 안도했다. 딸은 반 전체 39명 중 자신을 포함해 총 3명이 해외에서 왔다고 했다.

기자가 거주하는 도쿄 미나토구 주민 중 7.8%가 해외 국적자다. 딸이 서울에서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외국인과 같은 반이 된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도쿄에서는 매 학년 적어도 1명 이상 일본인이 아닌 다른 외국인과도 같은 반이 될 것 같다. 일본 1741개 기초지자체 중 43곳의 비(非)일본인 비율은 5%를 넘는다. 도쿄 신주쿠구의 해외 국적자는 12.6%에 이른다.

외국인의 증가와 함께 일본 자체로도 점점 다민족 국가로 변하고 있다. 2007년 이후 매년 인구가 자연감소하고 있어 해외 인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심각한 노동력 부족에 빠진다. 일본 정부는 올해 ‘특정 기능’이란 체류 자격도 신설했다. 일손 부족을 겪는 14개 업종에 한해 일본어 실력만 갖추면 조건 없이 해외 인재를 받아들이는 제도다.

문제는 일본인들은 이런 다민족 사회를 받아들일 준비가 충분치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도쿄전력은 올해 4월 특정 기능 자격으로 입국한 해외 근로자를 후쿠시마 원전 폐로 작업에 투입하려다가 비난을 받았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이들을 위험한 작업장에 보내려 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외국인 기능 실습생을 원전 오염 제거 작업에 투입한 4개 일본 건설업체가 제재를 받았음에도 해외 근로자에 대한 인식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일본 도쿄후쿠시(東京福祉)대에 2016∼2018년 재학했던 유학생 1610명이 자취를 감춘 사실도 최근 드러났다. 학교 측은 그들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행방불명된 이들은 ‘정규 과정’ 학생이 아닌 대부분 ‘학부연구생’이었다. 문부과학성은 학부연구생 입학정원을 관리하지 않기에 대학 측은 이런 학생들을 자유로이 뽑을 수 있다. 작년 도쿄후쿠시대의 학부연구생은 2656명으로 전체 유학생 5133명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 때문에 “돈벌이를 위해 유학생을 마구 받아들였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40년 이상 일본에서 일한 재일교포 A 씨는 ‘한류 덕분에 좀 편해졌느냐’는 질문에 “3년만 근무하다가 귀국하는 외교관이나 대기업 주재원들은 편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재일교포는 수시로 차별을 경험한다. 집이나 상가를 계약할 때 수차례 거절당한다”고 말했다.

다음 주엔 오사카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다. 문재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 주요국 수장들이 모인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또다시 오모테나시(손님을 극진하게 모시는 일본 문화) 외교를 선보일 것이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이들은 1박 2일 짧게 다녀가는 정상들이 아니라 세금을 내며 일본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해외 인재들이다. 상당수 일본인이 아직은 해외 인재를 ‘인격체’로 대하는 게 아니라 ‘노동력’으로 여기는 것 같아 씁쓸하다.

박형준 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
#일본 취업#재일교포#다민족 사회#일본 외국인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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