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한 번도 와 본 적 없는 이국의 화가들 눈에 비친 ‘6·25 전쟁’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19일 15시 39분


코멘트
전쟁을 결정하는 건 권력자들이지만 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민중이다. ‘냉전시대 최초의 열전’이었던 6·25전쟁은 한민족 역사의 최대 비극을 낳았다. 그 충격은 한국을 한 번도 와 본 적 없는 이국의 화가들에게도 미쳤다.

1951년 파리에서 활동하던 파블로 피카소는 ‘한국에서의 학살’을 그려 전쟁의 참상을 세계에 고발했다. 같은 해, 폴란드 화가 보이치에흐 판고르 역시 6·25의 비극을 알리기 위해 ‘한국 엄마’를 그렸다. 화면 속 엄마는 피를 흘리며 길바닥에 쓰러져 있고, 어린 아들은 엄마 시신을 붙잡고 화면 밖 관객을 응시하고 있다. 망연자실한 표정의 아이는 ‘도와주세요’라고 말할 기운조차 없어 보인다. 멀리 배경에는 폭격으로 불 탄 마을 위로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그림 속 아이는 전쟁고아로 살아남았을지, 피난길에 엄마처럼 죽었을지 알 수 없다.

화가는 이 비극의 가해자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관객은 미군의 폭격으로 아이엄마와 마을이 희생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당시 구소련의 영향 하에 있던 공산국가 폴란드에서 그려진 그림이기 때문이다. 그림의 기법 역시 소련에서 들어온 ‘사회주의 사실주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사회현실을 그리는 이 창작 방법이 1949년 폴란드의 공식적인 예술양식이 되자, 원래 입체파나 인상주의 풍의 그림을 그렸던 판고르도 작품 스타일을 바꿔야했다. 6·25전쟁은 그가 양식을 바꾼 후 처음으로 선택한 주제였고,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첫 작품이었다.

그림이 바르샤바에서 처음 전시되었을 때, 폭격의 주체를 구체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지만, 훗날 이 그림은 좌우 이념을 넘어선 반전과 평화의 상징이 됐다. 엄마를 눈앞에서 잃은 전쟁고아의 처연한 눈빛은 그 어떤 반전 메시지보다 강렬하다. 전쟁은 결국 힘없고 무고한 사람들의 비극과 희생으로 귀결된다는 걸 각인시켜준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