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입시업체, 대포폰 돌리며 ID 세탁… ‘가랑비 옷 젖듯’ 댓글 조작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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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투스’ 불법 댓글작업 자료 보니


“중요한 건 지속성. 가랑비에 옷 젖듯, 계속. 지우면 또 올리고. 연관 검색어는 항시 노출되게.”

유명 입시교육 업체 ‘이투스교육’ 본부장 정모 씨가 2014년 4월 4일 A 씨 등 부하 직원 3명에게 보낸 이메일 내용 중 일부다. 부하 직원이 보낸 보고 메일에 답장을 하면서 ‘가랑비에 옷이 젖듯’ 뭔가를 계속 하라고 하는 내용이다. 정 씨가 지시한 것은 불법 댓글 작업이다.

이투스 측은 2012년 5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마케팅업체 글로벌인재교육과 계약을 맺고 자사 강사를 홍보하거나 경쟁 업체 강사를 비방하는 댓글 약 20만 건을 조직적으로 달았던 사실이 경찰 수사를 통해 드러났다.

글로벌인재교육은 원래 인터넷 강의를 듣는 수강생들에게 학습법을 알려주는 대학생 멘토를 이투스 측에 소개하고, 이투스 홈페이지 내 게시판에 올라오는 댓글을 관리하는 업체였다. 그러다가 2012년 5월부터 따로 계약을 맺고 이투스의 경쟁 업체를 비방하는 댓글을 전문적으로 다는 업체로 변신했다. 2명뿐이었던 직원은 2014년 8월부터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면서 많을 때는 10명까지 늘어났다. 컴퓨터 10대를 새로 들이고 24시간 불법 댓글을 달 수 있는 작업 환경을 갖췄다.

이투스 측이 댓글 작업의 대가로 글로벌인재교육에 주는 돈도 매월 400만∼800만 원 선에서 3000만 원으로 늘었다. 아르바이트 직원들은 글로벌인재교육과 직접 근로계약을 맺고 매달 150만∼180만 원을 받았다. 그러던 중 2017년 1월 당시 이투스 소속이던 한 강사가 회사 측의 불법 댓글 활동을 폭로하는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면서 문제가 불거지자 글로벌인재교육은 문을 닫았다.

이투스 측의 불법 댓글 조작 사건을 수사한 서울 강남경찰서가 검찰로 넘긴 범죄 증거자료에 따르면 글로벌인재교육은 댓글과 검색어 조작 등을 위해 여러 개의 아이디(ID)가 필요하자 차명 휴대전화(일명 ‘대포폰’)를 사들여 댓글 작업에 이용했다. 주로 외국인 관광객이 선불 휴대전화를 이용하며 유심칩을 생성해 쓴 뒤 대리점에 반납한 휴대전화를 사들였다. 기존에 댓글을 너무 많이 달아 이른바 ‘댓글 알바’로 의심받는 ID는 탈퇴시키고 새로운 ID로 다시 가입하기도 했다. 대포폰 1개를 사는 데 55만 원을 들여 1년에 ID 생성·유지비로만 약 3600만 원을 지출했다.

또 이 업체는 수험생들이 많이 찾는 커뮤니티에 회원으로 가입하기 위해 실명인증이 필요하자 실명인증에 필요한 개인정보를 중국 해커로부터 구입하기도 했다. 네이버는 별도의 실명인증 없이 회원 가입을 할 수 있지만 회원 수가 267만 명에 달하는 수험생 커뮤니티 ‘수만휘(수능날 만점 시험지를 휘날리자)’의 회원 가입을 위해서는 실명인증이 필요했다.

이투스 측이 업체의 댓글 작업 경과를 매주 상세히 보고받은 정황도 드러났다. 경찰은 실제로 게시글과 댓글을 얼마나 달았는지, 검색 시 상위 노출이 되는지를 체계적으로 보고받은 이메일 내용을 확보했다. 김형중 이투스 대표가 부하 직원 A 씨와 주고받은 이메일 내용에는 글로벌인재교육이 요청한 비용을 김 대표가 승인한 정황이 담겨 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김도균)는 김 대표와 본부장 정 씨 등 이투스 임원 3명을 업무방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상 명예훼손 혐의로 5월 불구속 기소했다. 글로벌인재교육 직원 2명도 개인정보보호법과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정 씨는 불법 댓글 활동을 지시하고 전략을 세우는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18일 1심 법원의 첫 재판을 앞두고 있다.

한성희 기자 chef@donga.com
#이투스교육#불법댓글#대포폰#수만휘#글로벌인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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