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日, 징용판결에 보복” vs 日 “안보위한 수출관리”… WTO 격돌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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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경제보복 파장]WTO 이사회서 수출규제 여론전

WTO 참석한 한일 23일(현지 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일반이사회에 참석한 김승호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왼쪽 사진)이 발언 순서를 기다리며 웃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하라 준이치 주제네바 일본대표부 대사(오른쪽 사진) 등이 참석했다. 채널A 화면 캡처
WTO 참석한 한일 23일(현지 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일반이사회에 참석한 김승호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왼쪽 사진)이 발언 순서를 기다리며 웃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하라 준이치 주제네바 일본대표부 대사(오른쪽 사진) 등이 참석했다. 채널A 화면 캡처
“일본의 무역 제재가 적절하다고 생각하십니까?”

23일 오전 10시 10분(이하 현지 시간) 스위스 제네바 세계무역기구(WTO) 본부 내 일반이사회 회의장.

동아일보 기자가 이하라 준이치(伊原純一) 주제네바 일본대표부 대사에게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해 물었지만 그는 대꾸 없이 회의장으로 향했다. WTO에서 전 세계를 대상으로 펼쳐질 한국과 일본의 팽팽한 여론전을 의식한 모습이었다.

한국은 WTO를 통해 일본의 수출 규제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을 이유로 한 정치 보복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일본은 대한(對韓) 수출 규제가 수출 관리 체계 점검 차원일 뿐 보복이 아니라며 방어막을 치는 형국이다. 일본의 수출 규제를 둘러싼 한일 양국의 국제 여론전이 본격화되고 있다.

○ 한일 양국 WTO 여론전


WTO 일반이사회는 164개 전체 회원국 대표가 중요 현안을 논의·처리하는 자리다. 이날 오전 9시 55분 한국 측 대표인 산업통상자원부 김승호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이 회의장으로 들어갔다. 기자가 “일본 무역 제재의 문제점과 우리 측 방어 전략이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김 실장에 이어 데니스 시어 주제네바 미국대표부 통상담당 대사가 나타났다. 그 역시 일본의 무역 제재에 대한 미국의 의견을 묻는 질문에 답변을 피했다.

한국은 회의에서 일본이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때문에 한국에 보복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측 김 실장은 22일 제네바 공항에 도착해 “백색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면 일본의 (WTO 규범) 위반 범위는 더 커진다”면서 “일본의 주장에 준엄하지만 기품 있게 반박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일본은 세계 각국이 자국 안전 보장을 위해 수출 관리를 하고 있으며 한국이 전략물자를 부적절하게 관리했다고 주장할 것으로 알려졌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23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WTO에서 인정하는 ‘안보를 위한 수출관리제도’를 적정하게 재검토한 것이며 WTO 규정 위반이라는 (한국의) 지적은 전혀 맞지 않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날 한국 대표로 참석한 김 실장은 통상 분쟁 전문가로 4월 한국이 일본과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 관련 WTO 분쟁에서 승소하는 데 기여했다. 일본 대표단 중 한 명인 야마가미 신고(山上信吾) 외무성 경제국장도 당시 제소 과정을 총괄했다. 야마가미 국장은 수산물 분쟁서 패소한 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불려가 ‘방심해서 졌다’며 질책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 강제성 없지만 미국 중재 효과 기대


WTO 일반이사회에서 논의된 내용이 강제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당장 일본의 조치 철회를 이끌어 내거나 회원국에 관련 결의를 요청하기는 어렵다. 전문가들도 이번 회의만으로 실효성 있는 조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일본이 당장 물러서지는 않겠지만 일본 조치의 부당함을 국제사회에 계속 알리면서 미국이 개입할 근거를 마련할 수 있는 기회”라고 했다.

한국 정부는 일반이사회 논의 이후 WTO 분쟁 해결 기구에 공식 제소를 준비할 예정이다. 일반이사회에서 한국 대표가 발언한 내용은 향후 WTO에 제소할 때 심리에 반영될 가능성도 있다.

이날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의 지지와 중재를 이끌어내기 위해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유 본부장은 27일까지 미국 경제, 통상 관련 고위 인사들과 관련 업계 인물, 상·하원 의원 등을 두루 만나 일본이 강제징용을 이유로 경제 보복을 하고 있다고 강조할 계획이다. 유 본부장은 “일본의 수출 제한이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분업 체계를 흔들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네바=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 세종=최혜령 기자 / 도쿄=박형준 특파원
#일본 무역 제재#징용판결#wto 이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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