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협화음으로 가득한 재즈, 여전히 신비로워” 한국 재즈의 대모 박성연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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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9일 서울숲재즈페스티벌 출연… 요양병원서 투병하며 신곡 준비

화려한 외출이었다. 21일 서울 은평구의 한 카페. 분홍빛 선글라스를 쓰고 멋스러운 재킷을 입고 나온 재즈 보컬 박성연은 품에 안은 가방에서 감춰둔 보물처럼 립스틱을 꺼내 발랐다. “괜찮아요?”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화려한 외출이었다. 21일 서울 은평구의 한 카페. 분홍빛 선글라스를 쓰고 멋스러운 재킷을 입고 나온 재즈 보컬 박성연은 품에 안은 가방에서 감춰둔 보물처럼 립스틱을 꺼내 발랐다. “괜찮아요?”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가보고 싶은 마음은 항상 있죠. 평일에도 가보고 싶고. 말로가 공연할 때도 가보고 싶고….”

서울 서초구의 재즈 클럽 ‘디바 야누스’ 얘기다. 하지만 그의 몸은 묶여 있다. 재즈 보컬 박성연(76). 한국의 빌리 홀리데이. 한국 재즈의 대모. 1978년 국내 최초의 토종 재즈 라이브 클럽 ‘야누스’를 설립해 수십 년간 운영한 이. 신부전증으로 입원한 그는 4년째 서울 은평구의 요양병원에 기거하며 투석과 물리치료를 이어가는 중이다. 허락된 공식적 외출 횟수는 월 1회. 클럽 운영은 후배 보컬 말로에게 맡겨 뒀다.

요양병원 근처 카페에서 21일 박 씨를 만났다.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그의 거동은 느렸지만 인터뷰 도중 카페에 흐르는 음악에 반사적으로 반응했다.

“…땃! …땃! 하하하.”

빌 에번스의 ‘Interplay’에 나오는 엇박자 강세에 입소리로 화답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리듬감에는 요양이 없었다. 아니, 정교하고 민첩한 동물적 스윙(swing·재즈 특유의 긴장감 있는 리듬)이 꿈틀댔다. 그는 28, 29일 서울 성동구에서 열리는 ‘서울숲재즈페스티벌’에 출연한다. 2017년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이후 2년 만의 큰 무대다.

“답답한 병실에서 나와 노을도 보고, 들판도 보고, 청중도 볼 수 있으니…. 긴장은 돼도 참 설레요. 제 순서가 28일 오후 6시 40분부터래요. 해질녘 서울숲이 가장 아름다워지는 시간이라는데 제게 맡겨 주셔도 되는 건지. 후배들에게 좋은 무대를 줘야 하는데….”

어렵게 재즈 하는 후배들이 설 무대를 지키려고 경영난에도 수십 년간 클럽 운영을 강행한 ‘디바’는 여전하다. 자신보다 “우리 후배들…”을 입에 달고 산다. 이번 서울숲 무대에서는 후배 보컬 문혜원과 듀엣곡도 부른다. ‘My Way’ ‘바람이 부네요’ ‘It Don’t Mean a Thing’ 같은 박 씨의 대표 레퍼토리를 펼쳐낸다. 2016년 발표한 ‘바람이 부네요’는 올해 가수 박효신과 새로 녹음한 듀엣 버전으로 자동차 광고에 실려 화제가 됐다.

노래 연습이 부족하다고 박 씨는 연방 걱정했다. 그가 머무는 6인실에서는 노래는커녕 음악 감상도 쉽지 않은 실정.

“올해 초 헤드폰을 샀어요. 제 옛 녹음을 (병상에서) 들으며 속으로 연습하고 있어요.”

몸은 누워 있어도 열정은 서 있다. 그는 신곡 발표를 준비 중이다. 제목은 ‘어느 가을날’. 원로 베이시스트 차현 씨가 얼마 전 헌정한 곡이다.

“열심히 연습해서 꼭 CD로 찍어내야지요.”

평생 마르고 닳도록 듣고 부르고 몸을 바친 재즈. 그게 대체 그에게 뭐기에….

“불협화음의 신비함이 가득 들어 있는 아름다운 음악. 아직도 저는 재즈가 신비로워요. 많이 듣고 싶어요.”

오랜만에 스피커로 듣는 재즈에 디바는 몸을 들썩였다. 주름진 얼굴로 예쁜 미소도 번졌다.

“한 번, 한 번의 무대가 참 소중해요.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임해야지요.”

카페를 나오며 디바의 우렁찬 목소리가 실내를 울렸다.

“오늘 재즈를 틀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서울숲재즈페스티벌#재즈#박성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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