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정재 “체력의 한계 느낀 전투신, ‘소맥’으로 버텼다”

입력 2017-05-29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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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는 영화 ‘대립군’에서 천민의 얼굴로 관객을 만난다. 도회적인 모습으로 카리스마를 내뿜어온 그의 새로운 도전이다. 사진제공|이십세기폭스코리아

■ 영화 ‘대립군’ 수장 역 이정재

생소한 ‘대립군’ 세 글자에 이끌려 선택
천민 캐릭터 첫 시도, 말투부터 다 바꿔
험난한 여정…동료와 술자리 작은 위안

20년 넘도록 연기를 해온 이정재는 관객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배우의 “의무”라고 했다. 새롭게 도전한 캐릭터에서 얻는 즐거움도 크지만, 때로는 자신에게 “강박관념”이 될 정도로 무섭고 힘든 작업이다. 그래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이기에 “짜고, 짜고 또 짜낸다”고 말한다.

잠시라도 쉴 틈을 주지 않고, 매년 한두 작품씩 꾸준히 해온 그가 이번에 도전한 새로운 과제는 천민이다. 주로 도회적인 모습으로 카리스마를 내뿜어온 그가 가장 밑바닥 계층에 있는 천민의 얼굴로 관객과 마주한다. 31일 개봉하는 영화 ‘대립군’(감독 정윤철)에서 그는 대립군 수장인 토우 역을 맡았다. 영화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로 피란한 선조를 대신해 분조를 이끄는 광해(여진구)가 대립군의 도움을 받아 왜군에 맞서 싸우는 과정을 담았다.

“토우라는 인물은 산에서 먹고 사는 백정 수준이다. 그런 거친 사람들의 우두머리라 더 거칠게 해야 하는데 그걸 연기로만 표현하기 쉽지 않더라. 말투, 행동 하나하나 바꿔갔다. 과거에 시도해보지 않았던 인물이라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과정이었다.”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캐릭터도 캐릭터지만, 그동안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대립군’이라는 세 글자였다. “단어조차 생소한 ‘대립군’에 끌렸다. 저항세력에 반기를 든 군대 같기도 하고, 비정규군 같기도 하다. 소재도 특이하고 ‘진정한 군주(리더)는 백성의 손으로 만들어진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관객도 많이 공감할 것 같았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나라를 흔들었던 시국상황을 은유적으로 묘사하는 것도 같다. 3년 전 기획된 영화라 이런 상황을 겨냥한 것은 아니지만 현실과 ‘오버랩’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정치적인 내용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에 대해 부담스럽기도 했다. 가령, ‘지옥에선 앞으로 계속 걸어 나갈 수 없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마치 ‘헬조선’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감독에게 ‘피해가자’고 했더니, 되레 ‘우리 시원하게 가자!’라고 하더라. 아무리 어려움이 있어도 한 발자국 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 따랐다.”

영화는 사실감을 높이기 위해 세트를 배제하고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며 촬영했다. 덕분에 배우들의 실제 고생이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겼다. 그는 “길고 긴 험난한 여정이었다”고 돌이켰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투 장면에서 나온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표정”은 연기가 아니라 그 순간 자신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긴 것이라고 했다. ‘산 사나이’ 특성상 쉴 때도 휴식용 의자에 앉을 수 없고, 땅에 드러눕기 일쑤였다. 체력의 한계를 맛보고, 배우들과 찾는 작은 위안이라고는 촬영 후 즐기는 ‘소맥’ 한 잔뿐이었다. 촬영 초반에는 빨리 친해지기 위해 반주로 한두 잔씩 즐겼다면, 언제부터인가 횟수가 잦아지면서 소맥이 없으면 안 될 정도가 됐다.

“5개월 정도 함께 하다보니 가족보다 시간을 더 많이 보냈다. 동료애가 자연스럽게 생기고, 헤어지기 아쉬운 존재가 됐다. 그들과 반주를 곁들이며 보낸 시간이 그립다.”


● 이정재

▲1972년 12월15일생 ▲동국대 연극영화과 졸업 ▲1993년 SBS 드라마 ‘공룡선생’으로 데뷔 ▲1994년 배창호 감독의 영화 ‘젊은 남자’로 청룡상 등 신인상 ▲1998년 영화 ‘정사’ ‘태양은 없다’ 등 주연 맡으며 활약 ▲2012년 ‘도둑들’, 2013년 ‘관상’, 2015 ‘암살’ 등 잇단 흥행 ▲2016년 ‘신과 함께’ ‘대역전’ 등 한 해 1∼2편씩 출연하며 꾸준히 활동

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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