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름 눈물의 은메달 뒷얘기, 사흘간 햄버거 한 조각 먹고 뛰었다

입력 2018-02-25 16: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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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름.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무차별 폭격에 심신이 지쳤다. 한 지인은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오랫동안 준비한 주종목을 포기할 생각까지 했다. 1년 전 세계종목별선수권대회에서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던 바로 그 장소에서 열리는 주종목이건만. 그러나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어떻게든 뛰어야 했다. 결과는 은메달. 멘탈이 산산조각난 상황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가치를 얻었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매스스타트의 간판 김보름(25·강원도청)이 그랬다.

일련의 사건은 알려진 대로다. 19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여자 팀추월 준준결승에서 7위(3분03초76)를 기록했는데, 레이스 막판에 김보름과 박지우(20·한국체대)가 동료 노선영(29·콜핑팀)을 도와주지 않고 먼저 골인했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분노했다. 여기에 경기 직후 방송인터뷰에서 노선영의 체력 저하를 탓하는 듯한 발언을 해 논란이 일파만파 번졌다. 다음날(20일)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쏟으며 사과했지만, 성난 민심을 달래지 못했다. ‘김보름과 박지우의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서명한 국민의 수는 60만명이 넘었다. 2018평창동계올림픽에서 처음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매스스타트의 우승후보로 관심을 받던 소녀가 일순간에 여론재판을 받는 신세가 됐다.

늘 당당했던, 꿈이 명확했던 소녀의 마음에 커다란 생채기가 났다. 현장에서 만난 한 스피드스케이팅 전문가는 “심리적인 부분이 분명히 경기력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본인이 이겨내야 할 몫이지만, 극복해야 할 벽이 너무 높아 보인다”고 우려했다. 게다가 21일 팀추월 7~8위전에 앞서 장내아나운서가 본인 이름을 호명했을 때 팬들이 침묵한 것을 보고는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는 전언이다. 밥이 넘어가지 않았고, 잠도 오지 않았다. 신체리듬은 산산조각이 났다. 24일 매스스타트 출발선에 서기 전까지 사흘 동안 햄버거 한 조각만 먹고 버텼다. 이마저도 남들이 자기를 알아볼까 두려워 마스크를 쓴 채로 식당을 찾았는데, 그 작은 햄버거조차 다 먹지 못했다. 동료들이 끌고 가다시피 해 식사를 권했지만,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다행히 경기 당일 우려했던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김보름은 정상적으로 경기에 나섰고, 강릉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을 찾은 홈팬들은 환호를 보냈다. ‘김보름 널 좋아해’라는 문구가 새겨진 플래카드도 등장했다. 막판 스퍼트 때는 엄청난 환호가 쏟아졌다. 팬들의 함성은 김보름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이 무리에는 김보름의 어머니도 있었다. “함성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었다.” 취재진을 보자마자 울먹이던 김보름은 말을 잇지 못했다.

김보름은 연신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시상대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고도 웃지 못했다. “죄송하다는 말 외에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고,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그의 말 마디마디에 진심이 느껴졌다.

‘시련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는 말이 있다. 김보름은 선수 인생에서 가장 큰 시련을 가장 큰 무대(올림픽)에서 겪었지만, 보란 듯이 딛고 일어섰다. 이는 멘탈과 기량 모두 성숙한 김보름의 앞날을 기대케 하는 대목이다.

강릉|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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