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의 아빠 까바르 자카르타] 운명의 장난, ‘100메달’ 뒤로 미룬 남현희

입력 2018-08-20 17: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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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현희(왼쪽)와 전희숙이 20일(한국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8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펜싱 여자 플뢰레 16강전에서 맞대결을 펼치고 있다. 자카르타(인도네시아)|강산 기자posterboy@donga.com

운명의 장난이었다. 20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컨벤션센터(JCC)에서 열린 2018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AG) 여자 플뢰레 32강전 대진표가 전광판에 표출되자 곳곳이 술렁였다. 남현희(37·성남시청)와 전희숙(34·서울시청)이 16강에서 만날 최악의 대진이었기 때문이다.

남현희는 B조 4위를 기록하며 가까스로 예선을 통과한 탓에 32강전을 치러야 했다. 메리 아난다(싱가포르)를 꺾은 뒤 만나게 될 A조 1위가 바로 전희숙이었다. 동반 메달의 꿈이 물 건너간 상황이라 남현희는 물론, 일찌감치 16강에 직행한 전희숙 입장에서도 원치 않는 맞대결이었다. “4강 이후 만나면 좋았을 텐데….” 남현희의 목소리에 아쉬움이 짙게 배어났다.

이들 모두 이번 대회를 마지막 AG 무대로 생각하고 있다. 그만큼 이겨야 할 명분은 확실했다.

2014인천AG 때는 4강에서 둘의 맞대결이 이뤄졌기에 동반 메달 획득이 가능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모든 것을 걸어야 했다. 개인전 순위가 단체전의 시드 배정에 영향을 미치기에 동작 하나하나를 허투루 할 수 없었다. 팽팽할 것이라던 예상과 달리 흐름은 초반부터 기울었고, 전희숙의 13-8 승리로 마무리됐다. 득점 하나하나에 격한 세리머니가 이어진 다른 경기와 달리, 이들이 맞붙은 녹색 피스트는 고요하기만 했다. 오랫동안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은 두 선후배는 어떤 세리머니도 하지 않았다.

남현희에게는 아쉬움이 짙게 남은 한판이었다. 이번 대회 전까지 98개의 국제대회 메달을 획득한 그에게는 소박한 꿈이 있었다. “자카르타에서 개인전과 단체전 모두 메달을 획득해 100개의 메달을 채우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개인전에서 메달을 따내지 못한 탓에 그 꿈을 뒤로 미루게 됐다.

몸도 따라주지 않았다. 5월 무릎 연골 반월판 수술을 받은 뒤 기적적으로 실전감각을 회복했지만, 이번에는 왼쪽 골반 뼈가 말썽을 부렸다. 남현희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골반 뼈가 남들보다 두세 배는 더 자랐다.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했는데, 키가 작은데다 다리를 찢는 동작이 많다 보니 뼈에 멍이 들었더라. 통증을 잘 참는 편이었는데, 그게 안 되더라.”

남현희는 애써 웃으려 했다. 23일 단체전이 남아있는 만큼 아쉬워하기에는 이르다는 뜻으로 읽혔다. 그는 “이번 대회가 내게는 마지막 AG다. 그래서 멋지게 마무리하고 싶었고, 색깔에 관계없이 메달을 따고 싶었다. 단체전에서도 이를 악물고 뛰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자카르타(인도네시아)|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 ‘아빠 까바르(apa kabar)’는 인도네시아어로 ‘안녕하세요’를 의미하는 인사말입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현장을 발로 뛰며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다양한 스토리를 지면에 담아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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