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성②] 양귀비와의 첫날밤…정사를 팽개친 황제

입력 2018-10-18 05:45: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당나라 현종 때 나라를 위태롭게 했다고 전해지는 양귀비 초상화.

역사 속의 성

중국 역사에는 ‘나라를 기울게 한다’는 뜻의 경국지색(傾國之色)이 많이 등장한다. 하(夏)의 매희, 은(殷)의 달. 서주(西周)의 포사는 나라를 망하게 했다. 비록 나라를 망하게 하지는 않았지만, 당나라 현종 때 양귀비는 나라를 위태롭게 했다.

구름 같은 머리 가락, 꽃다운 얼굴, 거기에 황금 비녀,
연꽃 휘장 속에서 지새운 따사로운 어느 봄밤,
그러나 봄은 밤이 너무 짧아 벌써 해가 높이 솟았구나.
허지만 이를 어쩌랴. 이제 황제는 조회에도 안 나오네.

백거이의 ‘장한가(長恨歌)’ 중의 한 대목이다.

측천무후의 손자인 현종은 ‘개원(開元)의 치(治)’를 이룩한 명군이었지만 나이 50이 넘어 씻지 못할 실수를 저지른다. 아들 30명 중 18번째인 수왕과 6년을 산 며느리 양옥환을 아들과 헤어지게 한 뒤 궁으로 데려와 자신의 여인으로 삼은 것이다. 이 때 56세, 그녀가 22세였다.

동양 최고의 미인이었으니 뛰어난 외모의 소유자였겠지만, 양귀비는 비교적 짧은 팔 다리에 69kg의 통통한 체격이었다고 한다. 그 외 60cm가 넘는 길고 검은 머리를 가졌었다느니, 몸에서 심한 암내가 났지만 현종이 냄새를 못 맡았다느니, 피부가 하도 얇아 갓난아기 같았다는 등 온갖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현종은 그녀와의 첫 밤을 지내고 정사를 내팽겨 치고 사흘 낮밤을 안 나왔다 하여 그녀의 명기(名器) 소문이 무성해졌다. 그래선지 요즈음 질 전벽의 지-스팟(G-spot) 부위를 약간 도드라지게 하여 성교 중 더 자극을 받도록 시도하는 수술을 ‘양귀비 수술’이라 한다. 물론 의학적 효과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아 권하고 싶은 수술은 아니다.

어느 날 변방을 지키던 절도사로 현종의 양자를 자처하던 안록산은 궁에서 양귀비를 보게 되고 14살 연하인 그녀를 처음에는 ‘어머니’라 부르다가 얼마 뒤부터 그 호칭이 ‘여보’로 바뀌게 된다. 양귀비도 그의 희고 부드러운 살결을 좋아해 가끔 화청지로 데리고 가서 목욕을 시켜주곤 했다고 한다. 어느 날 체중 200kg의 거구인 안록산이 그녀를 안고 몸으로 비비다가 유방에 상처를 냈고 양귀비는 이를 감추기 위해 붉은 비단으로 젖가슴을 감췄는데 이것을 두고 중국인들은 세계 최초의 ‘브래지어’라고 주장한다.

결국 이들의 애정행각은 이후 ‘안록산의 난’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난 중에 현종은 병사들의 강요에 못 이겨 양귀비를 나무에 목매어 자결하도록 내어주었는데 그때 그녀의 나이가 38세였다.


김원회(부산대의대 산부인과 명예교수, 대한성학회 창립회장)

[스포츠동아]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