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송강호 “연기? 그리 ‘달달한’ 과정만은 아니다”

입력 2018-12-19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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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송강호는 영화 ‘마약왕’ 출연을 결정하는 데 마약이란 소재에 멈칫하기도 했다. 하지만 “배우로서 호기심과 스토리의 매력”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배우답게 관객의 높은 신뢰와 기대를 받는 그는 “늘 부담을 느끼지만 결과에 대해서는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했다. 사진제공|쇼박스

■ 믿고 보는 ‘1억 관객’ 배우 송강호

마약이란 소재 낯설지만 묘한 매력
욕망과 광기…이런 모습 처음 선봬
관객들로부터 논쟁이 많이 됐으면


배우에겐 저마다 다양한 수식어가 따른다. 송강호(51)도 마찬가지다. 티켓파워를 논할 때 첫 손에 꼽히는 배우란 사실은 더 이상 거론할 필요가 없다.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여러 배우가 있지만 송강호는 늘 가장 먼저 언급된다. 관객 기대치에 부합하고, 때때로 그 이상을 해내며 얻은 신뢰가 그만큼 두텁다는 의미다. 그런 송강호가 조금 낯선 모습으로 관객 앞에 나선다. ‘마약왕’(제작 하이브미디어코프)이 새로운 무대다. 최근 다양한 이야기와 인물을 담아낸 시대극에 주력해왔고, 대부분 실존인물을 구현하는 데 집중한 그가 자신의 방향을 지키면서도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사실이 일단 반갑다. ‘사회악’으로 치부되는 마약 밀매로 부를 축적한 한 남자의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송강호를 통해 완성됐다.

개봉을 이틀 앞두고 만난 송강호는 “마약이란 소재가 낯설고 두려웠지만 한편으론 배우로서 호기심과 매력을 느꼈다”고 했다. 비록 가공의 인물이지만 “실제 벌어진 사건의 토대 위에서 만들어진 인물이기에 현실감을 갖춘 점 역시 좋았다”고도 했다. 참여한 작품에 최선을 다하는 게 배우의 숙명이지만 송강호는 “신나서 했고, 만족스럽게 연기했다”고 덧붙였다.


● “인간이란 존재, 나약할 수밖에 없다”


송강호가 부산에서 ‘택시운전사’를 촬영하던 때 ‘마약왕’의 우민호 감독이 그를 찾아왔다. 시나리오를 건네기 위해서였다. 마침 송강호는 감독의 앞선 영화인 ‘내부자들’을 보고 “편집과 서사의 간결함, 그러면서도 힘이 넘치는 캐릭터”가 퍽 마음에 들던 참이었다. 그렇게 의기투합했다.

영화는 1970년대 부산을 배경으로 밀수업자인 이두삼(송강호)이 마약 밀매를 통해 거물로 성장하면서 드러내는 욕망과 집착 그리고 파멸에 관한 이야기다. “인간이란 존재가 원래 나약할 수밖에 없다”는 그는 “굴곡진 인생의 한 남자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아이러니한 과정을 인간의 본질에 맞춰 그리려 했다”고 말했다.

영화 ‘마약왕’에서의 송강호. 사진제공|쇼박스


송강호는 영화에서 권력보단 소시민 혹은 힘을 지녔어도 약자나 정의에 시선을 둔 인물을 주로 그려왔다. 그에게 ‘마약왕’ 참여는 변화의 시도였다. 특히 마약의 늪에 빠져드는 영화 후반부, 그가 보이는 모습은 낯설면서도 연기 자체로는 ‘역시’라는 반응을 이끌어낸다. 송강호가 내심 기대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초반부에는 ‘초록물고기’나 ‘살인의 추억’ 같은 영화에서 보인 유쾌함을 만날 수 있다가 후반부에선 지금껏 드러낸 적 없는 또 다른 면을 보인다. 관객조차 ‘저런 모습은 처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송강호는 영화 후반 ‘모노드라마’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극도의 갈등과 불안을 홀로 그려낸다. 지극히 연극적인 표현을 두고 그는 “상업영화 안에서 펼친 도전적 시도”라고 했다.

“위험한 요소이지만 비장의 카드가 될 수도 있다. 영화 결말을 두고 분명 호불호가 나뉠 거다. 관객에 익숙하지 않은 구조이기에. 재미있다, 없다, 좋다, 싫다의 차원이 아니라 ‘익숙하지 않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다.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고, 논쟁이 되길 바란다.”


● “책임감 크지만 결과는 겸허히”


이달 개봉하는 영화가 여러 편이지만 초반 분위기는 ‘마약왕’으로 쏠린다. 관심이 증폭되는 근원은 ‘기·승·전’ 송강호에 있다. 그가 영화를 통해 세상에 내놓는 이야기나 인물이 대부분 관객을 만족시켜온 덕분이다. 그렇게 쌓은 신뢰도 상당하다. 기대가 높은 만큼 부담도 크지만 그렇다고 제자리에 서 있을 순 없다.

“늘 부담을 느끼지만 그런 것들이 작품 활동의 방향성을 좌우할 정도는 아니다. ‘마약왕’도 결과를 떠나 관객에게 나의 새로운 도전으로 인식되길 바란다. 결과? 겸허히 받아들여야지. 작품을 선택할 때 흔히 말하듯, 이념에 의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다.”

굳이 이런 말을 꺼낸 이유가 궁금하던 찰라, 송강호는 말을 이어갔다.

“아무래도 ‘변호인’과 ‘택시운전사’ 이후에 그런 말씀(이념적)을 하는 분들이 있다. 그런 평가나 표현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다만 너무 편견을 갖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나는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 정확히 알고 싶은 이야기를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내는 영화를 추구한다. 그런 욕심을 끝까지 유지할 거다.”

배우 송강호. 사진제공|쇼박스


어릴 땐 권투선수를 꿈꾸고 경찰관도 상상해봤다는 송강호는 “연극을 시작한 뒤에는 다른 쪽으로 눈 돌린 적 없다”고 했다.

“좋은 연기? 글쎄. 그런 기준이 문법화돼 있진 않고, 관객이 영화를 보고 느끼는 기준도 전부 다르지 않나. 배우 자신이 얼마만큼 솔직하게 느낌을 연기에 투영하느냐에 (좋은 연기가)달려 있지 않을까. 배우의 진심이 투영되는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현재 영화 ‘나랏말싸미’ 촬영에 한창인 그는 얼마 전 봉준호 감독의 작품 ‘기생충’도 마쳤다. 촬영하고, 끝나면 또 촬영하는 일상의 반복이다. 촬영이 없을 때 대체 송강호는 뭘 하면서 지내는지 궁금한 것도 사실. 질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호탕한 웃음을 터트린 그는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영화 개봉을 앞둔 지금 같은 시간이 나에겐 절정의 순간이다. 연기하는 과정 자체가 그리 달달한 것만은 아니다. 그걸 극복할 수 있는 건 역시 좋은 작품,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협업이다.”


● 송강호

▲ 1967년 1월17일생
▲ 1991년 극단 연우무대 활동 ‘동승’으로 데뷔
▲ 1996년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스크린 데뷔
▲ 2000년 ‘반칙왕’ 주연, ‘공동경비구역 JSA’으로 대종상 남우주연상
▲ 2003년 ‘살인의 추억’
▲ 2006년 ‘괴물’부터 2013년 ‘변호인’, 2017년 ‘택시운전사’까지 각각 1000만 돌파
▲ 내년 ‘나랏말싸미’ ‘기생충’ 개봉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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