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16연패 끊은 한국전력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

입력 2018-12-19 13: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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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 김철수 감독. 사진제공|KOVO

16연패의 수렁에 빠져 있던 한국전력이 마침내 시즌 첫 승을 거뒀다. 18일 수원실내체육관에서 벌어진 2018~2019 도드람 V리그 KB손해보험과의 3라운드 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2로 이겼다. 시즌 개막 이후 2달여 17번째 경기 만에 거둔 귀중한 승리다. 이미 2명의 외국인선수를 돌려보낸 우여곡절 속에 힘들게 시즌을 꾸려가던 한국전력 선수들은 승리가 확정된 순간 서로를 얼싸안고 코트를 빙빙 돌았다. 1342명의 관중은 진심어린 축하의 박수를 보냈고 이번 시즌 처음으로 수원실내체육관에서 승리의 축포가 터졌다. 13일 KOVO 이사간담회에서 외국인선수 추가영입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터라 이제는 죽으나 사나 토종선수들끼리 긴 시즌을 헤쳐 나가야했던 한국전력 선수들의 절실함과 불굴의 의지가 만든 감동의 승리였다.


● 승리의 순간 한국전력 김철수 감독의 인터뷰가 없었던 이유

이날 경기를 현장에서 중계한 SBS스포츠는 한국전력의 승리가 확정되자 김철수 감독과의 인터뷰를 준비했다. 연패가 길어지는 동안 “특별히 할 말이 없다”면서 사전 인터뷰를 거절해왔던 감독으로부터 절실했던 승리순간의 소감을 생생한 목소리로 들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사정이 생겼다. 고대하던 그 순간 김철수 감독은 갑자기 몸에 잠시 이상증세를 느꼈다. 연패가 거듭되면서부터 찾아온 증상인데 귓가가 윙윙 거리고 속이 뒤집어지는 느낌이라고 했다. 승패의 스트레스가 만든 일종의 ‘직업병’이다. 최근 들어 더 심해졌다고 했다.

김철수 감독은 5세트 막판부터 이명현상이 심하게 와서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을 정도 어지럽고 속이 메스꺼워지자 경기가 끝나자마자 얼른 화장실로 향했다. 증세는 쉽게 누그러지지 않았다. 이 바람에 SBS스포츠는 코트인터뷰를 포기하고 말았다. 그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행해진 취재진과의 인터뷰 때는 다행히 웃는 얼굴로 등장해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한국전력-KB손해보험의 경기 내내 애를 태우던 사람이 있었다. 관중석에서 애타게 경기를 지켜보던 한국전력 이성수 홍보과장이었다. 그는 승리 뒤 “축하한다”는 주위의 격려에 펑펑 눈물을 쏟았다. KB손해보험의 직원들은 경기 내내 “죽겠다”면서 코트를 주시했지만 패배가 확정된 순간 조용히 경기장을 떠났다. 팀이 지면 가장 가슴 아픈 사람은 감독과 가족이고 그 다음은 프런트라는 말이 새삼 실감났다.

강만수 신임 KOVO 유소년육성위원장. 스포츠동아DB


● 김철수 감독에게 힘을 불어넣었던 강만수 전 감독의 연패 기억

강만수 KOVO 유소년 위원장도 이날 경기장을 찾았다. 그는 한국전력의 라커를 찾아 김철수 감독을 격려했다. 한국전력의 사령탑으로 있을 때 연패를 경험했던 그는 “김철수 감독의 살이 많이 빠졌다. 연패를 하고 있으면 감독은 정말 힘들다. 옛날 어른들이 밥을 먹어도 모래를 씹는 기분이라고 했던 말을 나도 실감했다. 팀이 계속 지면 식욕도 없어진다. 주위의 눈치가 보여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다. 억지로 먹는데 맛을 못 느낀다. 딱 모래를 씹는 기분이다. 선수 구성상 이기기 힘든 전력인데도 위에서는 우승을 원하고 성적이 나지 않으면 감독만 무능하다고 한다. 그런 것들이 감독을 힘들게 한다”면서 용기를 내라고 격려했다.

김철수 감독은 연패가 길어지자 선수들이 포기하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먼저 선수들에게 솔직하게 얘기했다. “감독이 외국인선수 선발과 교체 때 잘못된 판단을 해서 애꿎은 너희들이 고생한다. 미안하다”면서 모든 책임이 자기에게 있다고 했다. 하나 둘 패배가 쌓이는 동안 선수를 다그쳐도 보고 휴가도 줘봤지만 결국은 참고 기다리면서 선수들이 스스로 상황을 이겨내도록 용기를 주는 것이 정답이었다. 다행히 한국전력 선수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서로를 격려했다. 패배의 책임을 남에게 돌리지 않았다. 위기상황에서 서로 네 탓만 했다면 배는 산으로 갔을 것이다.

김철수 감독은 “12연패를 넘어서면서부터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선수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스스로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만 했다. 결국 팀을 이끌어가는 것은 선수들이었고 마음을 비우면 새로운 것을 채운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했다. 이제 사령탑 2년차의 김철수 감독은 어느 감독도 쉽게 하기 어려운 귀중한 교훈을 몸으로 배웠다. 팀에는 큰 자산이다.

한국전력 서재덕. 사진제공|KOVO


● 서재덕이 펠리페에게 사랑을 고백한 사연

2018년 서재덕에게는 2개의 블로킹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18일 세트 14-9에서 펠리페의 공격을 막아내며 승리를 확정한 것과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대만과의 준결승전 5세트의 마지막 블로킹이 그것이다.

서재덕은 17일 코트 적응 훈련 때 KB손해보험의 펠리페를 만나자마자 서로를 얼싸안고 안부인사를 나눴다. 서글서글한 성격의 서재덕은 펠리페가 한국전력 유니폼을 입었던 지난 시즌에도 사이좋게 지냈다. 그렇지만 중요한 순간에 블로킹으로 펠리페를 가로막았다. 가로막는 순간 어떤 생각이 들었냐고 묻자 그는 “고맙기도 하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고 해서 주위를 웃게 만들었다. 팀의 주장인 서재덕은 KB손해보험전을 앞두고 선수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많은 일을 했다. 경기 이틀 전에는 쉬는 시간에 김철수 감독의 카드를 가져가 숙소 인근의 커피숍에서 동료들과 승패의 부담에서 벗어나는 시간을 가졌다. 선수들과 친한 커피숍 주인은 커피 외에 고급 인삼차를 선물하며 힘을 내라고 격려했다.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어느 팬도 김철수 감독에게 용기를 잃지 말라고 했다. 많은 이들의 격려와 바람이 결국 18일의 승리를 만들어냈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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