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 회복한 에루페, “어제도 오늘도 또 내일도 한국마라톤을 위해”

입력 2018-03-19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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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마라톤 겸 제89회 동아마라톤이 열린 18일 케냐 윌슨 로야나에 에루페 선수가 국제부문 남자 1위를 하고 있다. 전영한 동아일보 기자 scoopjyh@donga.com

‘케냐 특급’ 윌슨 로야나에 에루페(30·청양군청)가 2018서울국제마라톤 겸 제89회 동아마라톤 국제부문 남자부 정상을 밟았다.

에루페는 18일 서울 일원에서 열린 42.195㎞ 레이스에서 2시간6분57초로 2위 마크 코리르(2시간07분03초), 3위 벤슨 키프르토(2시간07분11초·이상 케냐) 등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월계관을 썼다.

에루페는 2012년 대회에서 2시간05분37초로 전체 국내대회 통틀어 사상 첫 2시간05분대 기록을 세운 검증된 철인이다. 2016년 대회에서는 2시간05분13초로 대회 최고기록이자 역시 국내개최 대회 최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3연패를 노린 지난해 대회는 많이 아쉬웠다. 2시간06분27초로 전체 5위에 그쳐 2시간05분54초로 골인한 에이머스 키프루토(케냐)에게 왕좌를 내줬다. 극심한 슬럼프가 지속되던 시기였다.

그토록 꿈꾸던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출전이 좌절된 여파가 이어졌다. 에루페는 한국국적 취득과 함께 올림픽 도전을 노렸으나 끝내 귀화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팔목에 태극문양의 링을 차고 뛸 정도로 한국에 대한 애정이 강했으나 그만큼 실망도 컸다.

한동안 운동을 잊고 살았다. 연일 술로 시간을 보내며 훈련을 거의 하지 않았다. 체중이 3㎏ 가량 불었고, 체지방도 늘었다. 그러나 다시 마음을 잡았다. 오랜 스승인 오창석 백석대 교수가 직접 케냐를 방문해 아끼는 제자가 마라토너의 길을 포기하지 않게끔 도왔다.

“걱정하지 마라. 귀화는 다시 추진하면 된다. 우리 체육계 정책도 바뀌었고, 분위기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으니 절차를 밟자. 다만 동아마라톤을 잘 뛰고 합당한 기록을 내야 (귀화를) 반대하는 분들의 마음까지 돌릴 수 있다.”

지난해 말부터 케냐의 마라톤 훈련지 엘도레트와 이텐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했다. 해발 2000m 이상 고지대에 위치한 두 곳에서 레이스에만 매진하다보니 리듬을 되찾았다. 근력과 지구력도 빨리 올라왔고, 스피드 역시 상승곡선을 탔다.

다행히 다시 일어섰다. 우승에 대한 욕심은 굴뚝같았으나 스스로에 만족할 만한 레이스를 펼치는 것이 우선이었다. 2011년 10월 생애 두 번째 풀코스이자 생전 처음 출전한 국제대회인 동아일보 경주국제마라톤에서 2시간09분23초로 정상에 오른 것을 상기시키며 의지를 다졌다. 운명의 레이스를 앞두고 “어느 때보다 몸이 좋다. 마음도 가볍다. 2시간05분대의 벽을 깰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신한 에루페는 최선을 다했고 확실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기대에 살짝 못 미친 기록에도 환한 표정으로 내일의 희망을 그리고 있었다.

잠실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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