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인터뷰①] 전여빈 “부국제 올해의 배우상, 감사하면서도 미안한 마음”

입력 2017-12-27 09: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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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전여빈. 스물넷에 단편 영화 스태프로 시작해 뚜벅뚜벅 연기의 길을 걷는 중이다. 천천히 하지만 올곧게 가는 배우. 거짓으로 스스로를 포장하기보다는 속에 있는 이야기를 모두 꺼내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 또한 그는 양쪽 볼에 수놓아진 주근깨까지 사랑스러운, 말간 눈빛의 여자이기도 했다.

전여빈의 필모그래피는 10편 조금 남짓. 영화 ‘간신’ ‘우리 손자 베스트’ ‘여배우는 오늘도’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등에 조연으로 출연했다. 주연 영화 ‘죄 많은 소녀’는 올해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커런츠상을 받았다. 전여빈 또한 “스크린을 압도하는 놀라운 배우의 탄생”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했다. 제43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도 배우 부문 독립스타상을 품에 안기도 했다.

첫 드라마 데뷔작 OCN ‘구해줘’에서는 홍소린 기자 역할을 소화해 호평을 받았다. 적은 분량임에도 실감 나는 연기로,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눈도장을 찍었다. 이승환, 브라운아이드소울, 지코 등 실력파 뮤지션들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경험도 있다.

작은 배역 혹은 작은 규모의 영화에 주로 출연해온 전여빈. 그래서 아직 그를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 몰라도 좋다. 곧 자연스럽게 그를 알게 될 테니. 충무로가 주목하는 신예, 전여빈의 꽃길은 이미 시작됐다.


Q. ‘죄 많은 소녀’에는 어떻게 캐스팅됐나요.

A. 오디션을 보러 와줬으면 좋겠다는 요청을 받았어요. 3~4회에 걸쳐 오디션이 진행됐는데 처음에는 대 여섯 장 정도의 분량을 리딩만 했고 두 번째 오디션에는 김의석 감독님도 계셨어요. 두세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눴죠. 오디션 보러 갔을 때 속에 있던 이야기를 다 꺼냈어요.

당시 통 대본을 받았는데 핸드폰으로 읽다가 마음이 점점 무거워지는 거예요. 핸드폰으로 읽기엔 글의 무게가 크게 느껴졌어요. 곧장 제본소로 달려가서 제본해 읽었어요. 학창시절 제 심정과 맞닿은 지점이 있었어요. ‘작품을 잘 할 수 있을까?’보다는 ‘내 안의 상처를 마주할 수 있을까’를 많이 생각했어요. 내 상처를 파고드는 작업을 해야 하니까요.


Q. 어떤 사건이 있었나요.

A. 한 가지 사건은 아니에요. 살면서 많은 일이 일어나잖아요. 그럴 때 다들 상처를 덮어두고 잊으려고 하잖아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묻히기도 하고요. 그런데 ‘죄 많은 소녀’를 하게 된다면 그런 기억들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죄책감을 느꼈어요.



Q. 과거의 상처투성이인 나를 마주한다는 게 쉽지 않죠. 연기할 때 힘들진 않았나요.

A. 어느 정도 담담해지긴 했어요. 영희 캐릭터에 파고 들어가야 할 때 악몽을 많이 꾸긴 했어요. 경민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는 장면이 있는데 극 중에서 친구의 얼굴이 녹아내려요. 그 장면이 꿈에 계속 나왔어요. 연기와 내 시간을 따로 떨어뜨릴 수 없는 작업이 되겠구나 싶었죠. 연기와 생활을 분리하는 배우들이 부러웠어요. 저는 아직 기술적으로 부족한 사람인 것 같아요.


Q. 크랭크업 후 캐릭터에서 빠져나올 때 괜찮았나요.

A. 후반 작업 기간이 길어서 마음에서 정리할 시간이 충분했던 것 같아요. 잘 정리했지만 감정은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요. 이렇게 온 에너지를 쏟을 작품을 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어요. 배우는 작품과 역할을 잘 만나야 하는데 ‘배우로서’ 영광인 기회였어요.



Q. ‘죄 많은 소녀’를 보고 여운이 길게 남더라고요. 소통과 이해가 부족한 이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가 크다고 봐요. 주연 배우로서 이 작품이 관객들에게 어떤 작품으로 다가갔으면 하나요.

A. ‘죄 많은 소녀’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 놓인 인간들의 군상을 그린 작품이에요. 언급하기 조심스럽지만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저는 다른 작품 트레일러를 찍고 있었어요. 꽁냥꽁냥하는 장면이었죠. 촬영 후 다 같이 점심 먹으면서 ‘구출됐대?’ ‘다행이다’라고 이야기를 나눴는데 나중에 구출을 못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패닉을 느꼈어요. 엄청난 죄책감이 몰려왔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마음을 졸이면서 뉴스를 보는 것 밖에 없더라고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지켜봐야한다는 트라우마가 상당했죠. 그때도 며칠을 악몽을 꿨어요.

우리 작품을 세월호 사건에 빗댈 수는 없지만 해결이 불가한 문제 앞에 놓인 사람들의 암담한 마음 혹은 치사함을 엿볼 수 있는 영화예요. 자신이 상처 받지 않으려고 서로 상처 주는 존재들. 선인도 악인도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내리고 서로 어떻게 이해해야할까요. ‘죄 많은 소녀’는 관객들의 다양한 생각을 들을 수 있는 기회의 작품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Q. 이 작품으로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했어요. 조금 늦었지만 수상 소감 부탁해요.

A. ‘죄 많은 소녀’는 정말 많은 배우들과 스태프가 사투를 벌이면서 만든 영화예요. 제가 그 분들을 대표해서 ‘올해의 배우상’을 받은 것 같아 기분 좋았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려되기도 했어요. 영광을 나 혼자만 받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교차했어요. 어떻게 대처하는 게 현명한 것일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 더 그런 것 같아요.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필름있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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