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인터뷰] ‘리틀 포레스트’ 김태리 “연기, 하면 할수록 어렵고 괴로워”

입력 2018-03-03 09: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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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인터뷰] ‘리틀 포레스트’ 김태리 “연기, 하면 할수록 어렵고 괴로워”

충무로 신데렐라. 배우 김태리의 이름 앞에 따라붙는 대표 수식어다. 15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에 출연한 김태리는 단숨에 주목받았다. 말 그대로 혜성 같이 등장한 여배우였다. 김태리는 상업 영화 ‘아가씨’로 데뷔해 제69회 칸국제영화제를 다녀왔고, 제37회 청룡영화상부터 제25회 부일영화상 등 신인상을 휩쓸었다. 스포트라이트는 김태리를 비췄고 차기작 러브콜이 줄을 지었다.

하지만 김태리가 선택한 작품은 대규모 상업 영화나 드라마가 아닌 영화 ‘리틀 포레스트’였다. 일본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리틀 포레스트’는 도시 생활에 지친 혜원이 시골 고향집으로 돌아와 오랜 친구들과 사계절을 보내는 이야기를 담았다. 스토리상 사계절을 고루 담아내야 하기 때문에 1년여 시간을 정성들여야하는 작품이었다. 왜 김태리는 보장된 꽃길을 마다하고 ‘리틀 포레스트’로 향했을까.

“시나리오가 좋았어요. 그런 감성을 좋아해요. 일본 만화도 영화도 좋았어요. 시나리오를 읽기 전에 원작 만화를 먼저 봤는데 많이 도움 됐어요. 한국 시나리오는 일본 감성과는 다르게 각색됐고 혜원 캐릭터도 일본 원작과 사뭇 다르더라고요. 각색된 부분까지 마음에 들었어요.”


‘리틀 포레스트’는 지난해 1월 21일 크랭크인해 그해 10월 24일 크랭크업했다. 한국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정수’를 담기 위해 각 계절의 정점의 시기에 촬영을 진행했다. 네 번의 크랭크인이 있었고 네 번의 크랭크업이 있었다. 덕분에 영화는 시골 마을을 소복이 덮은 겨울의 눈, 과수원을 채우는 봄의 사과 꽃, 여름 밤 냇가, 가을의 황금 들판까지 각기 다른 사계절 풍경의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을 스크린에 그대로 펼쳤다.

“회사와도 방향성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어쩌면 시간을 버리는 일로 볼 수도 있죠. 회사 입장에서는 배우를 통해 돈을 벌어야 하니까요. 그런데 회사도 저와 같은 생각이었어요. 자연스럽게 ‘리틀 포레스트’를 결정하게 됐죠. 실제로 사계절 촬영을 해보니까 어땠냐고요? 다시 적응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어렵더라고요. 하하. 영화를 왜 붙여서 찍는지 알겠더라고요. 그래도 또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보이후드’처럼 해를 거듭하는 작품도 좋고요.”

‘리틀 포레스트’는 사계절 속에서 농작물을 심고 키우고 수확하는 과정을 통해 주인공의 성장을 그려냈다. 김태리는 직접 요리하고, 농작물을 키우고, 장작을 패면서 전원생활을 즐겼다고 밝혔다.

“어릴 때부터 요리를 즐겨온 캐릭터잖아요. 능숙해 보이는 게 중요했죠. 촬영 전부터 푸드스타일리스트와 함께 연습에 매진했어요. 먹는 연기는 진짜 다 먹었어요. 입에 넣은 후 뱉는 분들도 있다던데 저는 실제로 하지 아니면 어색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하수인 거죠. 음식이 진짜 다 맛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요리는 떡이요. 떡을 만들어먹는 게 신기했고 맛있기도 했어요. 장작 패기는 몸을 사용하는 논리가 있어요. 원래 몸 쓰는 걸 좋아하다보니 잘 되더라고요. 꽤 잘 팼답니다. 하하”


사계절의 풍광과 영상미뿐 아니라 감성 충만한 내레이션과 장면 하나하나로 관객의 마음을 울리는 ‘리틀 포레스트’. 김태리 또한 ‘리틀 포레스트’와 함께하는 시간 개인적으로 많은 힐링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혜원이 감자 싹을 보면서 미소 짓는 장면이 있어요. 실제로 제가 심은 감자거든요(흥분). 그 장면에 내레이션으로 엄마가 과거 했던 말이 나와요. ‘기다린다, 기다린다. 모든 것은 타이밍이다’라는 내용으로 봄이 왔다는 것을 알리는 대사죠. 많이 위로받고 감동도 받았어요.”
이어 김태리는 인생의 ‘타이밍’과 관련해 속 깊은 이야기를 꺼냈다. “연기를 하다가 내가 어느 순간 사라져버리면 ‘때가 와서,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갔구나’라고 생각해 달라”고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남기기도 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덜 성숙한 사람”이라며 “방랑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고백한 김태리. 그는 자신의 인생에 아직 ‘아주심기’는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언급된 ‘아주심기’는 더 이상 옮겨 심지 않고 완전하게 심는다는 의미의 농업 용어다. 혜원이 겨울을 겪은 양파를 아주심기 하는 장면은 영화가 주는 위로의 메시지와 맞닿아 있다.

“우리는 ‘실패’를 끝, 낭떠러지라고 생각하면서 살잖아요. ‘실패’는 거절당하고 관계가 끊기고 마지막으로 내몰리는 것이라는 뉘앙스를 받죠. 혜원이 고향에서 자연과 함께 살면서 보내는 사계절이 낙오된 순간일 수 있어요. 하지만 사실은 혜원의 삶에 필요한 부분이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죠. 그러니까 말이죠. 생각을 달리 해보면 실패는 사실 실패가 아닌 거예요. 우리가 실패를 가볍게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고통 받는 이 순간도 성장에 밑거름이 될 수 있는 거고요. 양파를 아주심기 하는 것 처럼요.”


김태리는 자신도 겨울을 이겨낸 후 아주심기한 양파처럼 단단해지고 싶다고 고백했다.

“요즘 흐물흐물해져서 잡생각이 많이 들거든요. 연기를 하면 할수록 어렵고 괴로워요. 스스로의 한계를 아는데 이상치는 높아지니까요. 재밌을 때보다 괴로움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다 보니까 그래요. 단단해지고 심지가 굳어졌으면 좋겠어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하면 폭발적인 순간의 반응이 올 텐데 잘 견디려면 정신 단련을 많이 해둬야 할 것 같아요. 연기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열심히 준비해야죠.”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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