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인터뷰] ‘호랑이보다’ 이광국 감독이 말하는 ‘감독 홍상수’

입력 2018-04-21 08: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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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국 감독.

[DA:인터뷰] ‘호랑이보다’ 이광국 감독이 말하는 ‘감독 홍상수’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제작 영화사 벽돌/배급 그린나래미디어)은 동물원에서 호랑이가 탈출하던 어느 겨울 날 영문도 모르고 갑작스레 여자 친구에게 버림받은 경유(이진욱)와 그런 경유 앞에 나타난 소설가 유정(고현정)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기승전결이 스펙터클하진 않지만 감각적인 스토리텔링을 통해 캐릭터와 이들의 감정을 현실적으로 그려낸 작품.

홍 감독이 연출하지도, 각본을 쓰지도 않았지만 어딘가 ‘홍상수의 향기’가 난다. 홍 감독의 작품에 여러 차례 참여한 배우 고현정과 서영화가 출연해서일 수도 있다. 혹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2004)부터 개봉 예정인 ‘풀잎들’까지 홍상수 감독과 여덟 작품을 함께한 김형구 촬영감독이 함께했기 때문일 수도.

가장 깊고 확실한 연결고리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을 쓰고, 연출하고, 제작한 이광국 감독이 홍상수 사단 출신이라는 것에 있다. 이 감독은 서울예술대학 영화과를 졸업한 후 홍 감독의 조감독으로 ‘극장전’ ‘해변의 여인’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하하’에 참여했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은 이광국 감독의 ‘자기반영적’인 영화다. 자전적인 이야기를 영화로 풀어내는 홍상수 감독을 떠올리게 하는 방식. 경유를 연기한 이진욱 또한 기자간담회 당시 “분명 누군가의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했고, 그 누군가는 감독님인 것 같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광국 감독은 인터뷰에서 “개별 에피소드가 실화는 아니다. 평소에 가진 딜레마와 내 고민이 출발점인 것은 맞다”고 밝혔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은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예요. 그동안 제가 너무 많은 지점에서 두렵다는 이유로 비겁하지 않았나 싶더라고요. 상황과 사람 앞에서 솔직하지 못하고 도망쳤던 경험들을 떠올렸죠. 이 작품을 통해 두려움을 대면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그런 맥락에서는 제 이야기겠죠. 제가 가진 고민에서 출발했으니까요. 주인공 경유의 딜레마는 제 안에서 나온 게 맞아요. 하지만 영화 속 개별 에피소드들은 상상하거나 취재한 내용들이에요.”

이광국 감독은 실제로 홍상수 감독의 작업 방식의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연출부부터 조감독 시절까지 수년을 가까이서 보고 배우다보니 자연스럽게 익힌 방식이었다.

“홍상수 감독님을 따라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글을 어떻게 접근해서 쓰는 지에 대한 접근 방법에 영향을 받았죠. ‘극장전’과 ‘해변의 여인’ 때는 대사가 정해져 있진 않아도 구체적인 트리트먼트가 있었어요. 시나리오의 형식은 아니지만 소설처럼 재밌더라고요. 같은 방식은 아니지만 ‘글을 이렇게 쓸 수 있구나’라는 것을 배웠어요. 디테일을 잡아갈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었죠.”

홍상수 감독. 동아닷컴DB


그렇다면 이광국 감독이 가까이서 보고 배운 홍상수 감독은 어떤 사람일까.

“감독으로서 작품에 대한 태도가 깨끗한 분이에요. 사심 없이 영화만 놓고 작업하는 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좋은 태도들이 제게도 영향을 많이 줬어요. 홍상수 감독님도 어려운 상황 가운데 영화를 만드세요. 어떻게 영화를 만드시는 지 지켜봤죠. 그때의 경험이 제가 어려울 때 많이 의지가 돼요.”

이광국 감독은 홍상수 감독과 연결돼 언급되는 것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학교와 주소처럼 내 경력의 한 부분이니까”라면서 “감독님의 아우라가 크기 때문에 사람들이 선입견을 가지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작업하면서도, 끝난 후에도 부담을 가진 적은 없다”고 전하기도 했다.

장편 데뷔작 ‘로맨스 조’ ‘꿈보다 해몽’ 그리고 이번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까지. “외부의 일이나 내가 겪지 못한 소재를 가지고는 이야기를 만든 적 없다”는 이광국 감독. 그는 다음 작품으로 여성이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사랑 이야기를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남성 중심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잖아요. 여성이 온전히 이야기를 주도해서 끌고 가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사회적인 분위기를 떠나서 남자들의 이야기로 꽉 차 있는 게 너무 답답해요.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어요. 지금으로서는 ‘작은 씨앗’ 같은 거죠. 아직은 말하기 애매하네요.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봐야죠.”

이 감독은 자신의 경험이나 고민에서 출발하지 않은 작품에 대해서도 ‘마음의 문’을 열어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상업 영화를 안 하겠다는 생각은 아니에요. 하고 싶은 작품을 만나거나 쓰게 되면 좋은 환경에서 찍고 싶어요. 연을 기다리고 있어요. 지금까지는 제 고민에서 출발한 이야기로 갔지만 호기심이 가는 이야기가 있다면 제 식으로 변형하거나 접근해서 해보고 싶어요. 저에게 잘 맞고,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라면요.”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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