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인터뷰②] 전종서 “여성 인권에 대한 작품 있다면 무조건 달려들 것”

입력 2018-05-29 15: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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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버닝’은 전종서의 데뷔작이다. 독립 영화나 단편 영화 경험도 없다는 전종서. ‘버닝’은 그가 연기 경험이 전무(全無)한 상태에서 본 첫 오디션이었고 첫 작품이었다. 원석 중에서도 원석인 전종서의 캐스팅이 전해진 지난해 9월,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대체 어디 있다가 온 배우”냐고.

“어릴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어요. 비디오를 빌려보거나 VOD로 다운받아서 보면서요. 자연스럽게 영화와 함께 컸죠. 영화를 잘 알지 못하던 시절 제게 가장 먼저 다가오고, 먼저 보인 건 배우였어요. ‘배우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됐죠. 다양한 곳에 연기를 배우러 다녔어요. 지금까지 함께하는 선생님을 그 당시에 만났죠. 선생님을 통해 연기가 의미하는 게 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시작했어요. 이전에는 막연하게 관심 있었다면 고민하는 과정을 통해 연기를 바라보는 자세가 진중해졌어요. 자연스럽게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고 그 강도가 세질 때쯤 본격적으로 회사를 찾아다녔어요.”

혜성처럼 한순간 등장한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전종서는 꾸준히 충무로에 문을 두드려왔다. 그는 직접 이메일과 우편물을 보내면서 소속사를 찾아다녔다고 고백했다. 전종서가 지금의 소속사를 만나기까지 2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저와 가치관이 맞는 회사를 찾기 어려웠어요. 대다수의 회사가 신인 배우를 상품 고르듯이 픽업하는 형식이에요. 다들 신인배우에게 정형화되고 가공된 모습을 원하더라고요. 그게 정답이라는 확신을 가지고서요. 그건 강압이거든요. 저는 ‘왜?’라는 의문이 드는 거죠. 신인 배우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선택만 받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연기 지망생들이 꼭 그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저도 그게 사람을 얼마나 자괴감에 빠뜨리게 하는 건지 알거든요. 출발점부터 갇힌 채 시작하다보면 이후로도 갇힘 속에서 스스로 고통 받을 수밖에 없어요.”

전종서는 서로 본연의 모습을 존중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 이창동 감독과의 작업 방식도, 전종서가 ‘버닝’에서 해미를 표현한 방식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해미를 어떻게 표현해야겠다고 구상하진 않았어요. 캐릭터를 구축하는 방법을 배워본 적도 없거든요. 다만 해미를 받아들이는 법을 알게 됐죠. 이창동 감독님도 디렉팅을 명확하게 주시기보다는 저를 풀어놔주셨어요. 해미가 어떤 기분인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대한 대화가 오갔죠. 그런 환경을 제공해주신 것 자체가 디렉팅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버닝’에서 호흡을 맞춘 유아인과 스티븐 연에 대해서도 “상대방을 수용할 수 있는 ‘열린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카메라 안에서나 밖에서나 많은 깨달음을 주는 본보기였다고 덧붙였다. 전종서는 “서로 교감하는 가운데 배운 것이 많았다. 그들의 사고와 매너, 행동 하나하나가 내게 큰 영향을 줬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전종서는 제71회 칸 국제 영화제에서 레드카펫을 밟을 때도 ‘칸’이라는 공간보다 함께한 사람들에게서 의미를 찾았다. 그만큼 이창동 감독과 유아인, 스티븐 연은 전종서에게 남다른 존재들이었다.

“다 같이 가니까 떨림이 떨림으로 다가오지 않았어요. 잊지 못할, 의미 있는 순간이었죠. 칸 레드카펫이어서가 아니라 길거리를 그렇게 걸어도 의미가 있었을 것 같아요. 저에게는 ‘버닝’을 통해서 이 사람들과 함께 어디를 간다는 게 의미가 컸거든요. 아마 작품 경험이 많은 배우라면 칸 영화제가 다른 의미일 수 있겠죠. 저에게는 영화제 자체가 (한 번 다녀왔지만 아직도 여전히) 너무나 먼 이야기로 느껴져요.”

‘버닝’ 다음 행보는 어디로 향할까. 전종서는 홀연히 사라진 ‘버닝’의 해미처럼 “연기를 언제까지 할 줄 모르겠다. 예측할 수 없는 것 아니겠나”라고 묘한 말을 남겼다. 하지만 “영화를 사랑하고 연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변치 않는 한 연기를 계속 하고 싶다”면서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여성 인권에 대한 작품을 해보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이 시대의 갈증이라고 생각해요. 여성이 살아가면서 겪는 어려움과 고찰, 얼마나 핍박받으면서 살아왔는지 과거를 드러내는 이야기도 좋고요. 지향점에 대해 말할 수도 있겠죠. 여성이라는 성에 대한 이야기와 권리를 논할 수 있는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대단한 흥행을 목표로 하지 않아도, 엄청난 상업 영화가 아니어도 ‘무조건 하고 싶다’고 오디션을 볼 것 같아요. 제가 감히 뭘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만 분명한 메시지가 있고,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이고, 지금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이야기라면 그게 뭐든 달려들 거예요.”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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