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인터뷰①] ‘폴란드로 간 아이들’ 추상미 감독 “시작은 산후우울증…”

입력 2018-10-31 09: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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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인터뷰①] ‘폴란드로 간 아이들’ 추상미 감독 “시작은 산후우울증…”

1994년 연극 ‘로리타’를 통해 데뷔한 후 20년 가까이 배우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추상미. 하지만 드라마 ‘시티홀’(2009)과 연극 ‘은밀한 기쁨’(2014) 이후 ‘배우 추상미’는 모습을 감췄다.

연출 전공으로 대학원에 진학한 추상미는 영화감독으로 전향, 두 편의 단편 영화를 연출했다. 31일 개봉을 앞둔 다큐멘터리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추상미 감독의 첫 장편 영화. 1951년 폴란드로 보내진 1500명의 한국전쟁 고아와 폴란드 선생님들의 비밀 실화를 찾아 남과 북 두 여자가 함께 떠나는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추상미와 폴란드 그리고 북한 사이에 대체 어떤 연관성이 있기에 첫 장편의 소재로 삼았을까. ‘폴란드로 간 아이들’의 출발점에는 더더욱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산후우울증이 있었다.

“산후우울증이 심했어요. 아이에 대한 불안증과 애착이 심했죠. 아이가 죽는 악몽도 자주 꿨어요. 그러던 어느 날 북한 꽃제비(식량을 찾아 헤매는 북한의 아이들을 지칭하는 은어) 사진을 보고 강렬한 느낌을 받았어요. 리서치를 거쳐서 1990년대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으로 300만명이 아사했다는 것을 알게 됐죠. 제가 관심이 없어서 몰랐을 수도 있지만 같은 나라에서 벌어진 일인데 모르고 있었던 거죠. 북한 아이들이 폴란드로 간 것은 분단 초기의 일인데 꽃제비 아이들은 여전히 분단 현재에 있는 상황인 거예요. 분단이 없었다면 없었을지도 모르는 비극이죠.”


아이에 대한 관심은 또 다른 아이들에게 퍼져갔다. 그렇게 추상미는 전쟁 도중 폴란드로 향한 북한 고아들을 주인공으로 한 극영화 ‘그루터기’의 시나리오 작업에 돌입했다. 추상미에게 이 프로젝트는 일종의 책임감이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일인데 주변에서 모른다는 것에 책임감이 생겼어요. 누구라도 만들어야 하는데 하필 저에게 왔기에 ‘내가 할 수밖에 없겠다’ 싶었죠. 폴란드에 계신 선생님들 연세가 너무 많으신 거예요. 원장 선생님은 지병도 있으시고요.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싶었어요. 극영화보다는 다큐멘터리로 먼저 만들어야겠다 싶었죠. 영화 제작 지원 마감 한 시간을 앞두고 부랴부랴 신청서를 냈어요.”

‘그루터기’에 앞서 ‘폴란드로 간 아이들’ 프로젝트가 가동됐다. 오디션을 거쳐 ‘그루터기’에 캐스팅된 새터민(탈북민) 배우 이송이 추상미의 폴란드 답사에 동행했다. ‘폴란드의 아이들’은 추상미 개인의 성찰과 고백에서 시작해 과거의 전쟁고아와 현재의 새터민으로, 연역적 추론을 통해 연결고리를 찾아나간다.

“‘레이어가 너무 많다’ ‘이야기를 집중하는 게 좋겠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고집스럽게 밀고 갔어요. 버릴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으니까요. 능숙한 감독이 아니다보니 맥락을 연결하는 과정이 너무 어려웠어요. 챕터를 만들고 배치도 바꿔가면서 과정을 쌓아나갔죠.”


2년여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남북의 정세에도 큰 변화가 찾아왔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평화의 시대가 열린 것. 추상미는 개봉 시기를 두고 ‘신의 한 수’라고 표현했다.

“작품 진도는 안 나가지, 판단력은 점점 잃어가지, 아이는 소아 사춘기를 겪어서 말을 안 듣지, 또 몸은 아프고. 정말 다 놓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보다 더 힘든 게 시국이었어요. 진짜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였잖아요. ‘인도주의적 지원도 다 끊어야 한다’고 하는데 ‘북한을 품자’는 메시지를 제가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포기하고 싶은데 지원금을 돌려줄 수도 없고 사면초가였죠. 그런데 기적이 일어난 거예요. 제1차 남북 정상 회담 때 아마 전 국민 중에 제가 제일 기뻐했을 거예요.”

추상미는 정치적 경제적 통일과 함께 ‘사람의 통일’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서는 배척보다는 ‘역사의 희생양’들을 품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만들면서 민간 차원에서 통일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통일은 정말 길고 지난한 여정이라고 생각해요. 급작스럽고 빠르게 가기보다는 천천히 한 단계씩 밟아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역사의 성찰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과거 분단과 한국 전쟁의 상처가 이데올로기를 견고하게 만드는 데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상처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커넥트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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