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토크①] 배해선, 그가 말한 ‘오이디푸스’와 배우 ‘황정민’

입력 2019-01-24 09:55: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춥고 또 추웠던 어느 겨울, 남산에서 만난 배해선과의 1시간 남짓 인터뷰는 ‘운명’과 ‘극복’에 대한 대화가 가득했다. 그에게서 운명인 줄 알았던 연기자의 인생과 더불어 그로 인해 생기는 어려움을 이겨내려고 했던 배해선의 이야기는 그가 현재 연습 중인 연극 ‘오이디푸스’가 말하고자 하는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고 극복하는 자들의 이야기와도 맞닿아 눈길을 끈다.

1월 29일부터 2월 24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연극 ‘오이디푸스’(연출 서재형)에서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의 아내이자 어머니인 ‘이오카스테’의 역을 맡은 배해선은 ‘로미오와 줄리엣’(2016) 이후 오랜만에 연극 무대에 올랐다. 연극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혼인해 그 사이에서 자식을 낳을 것이라는 신탁을 받아 버려졌지만 아무리 벗어나려 애써도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비극적인 운명을 그린 소포클래스의 작품이다.

배해선은 서재형 연출의 출연 제안도 있었지만 연극을 하고 싶다는 마음도 강했다. 그는 “여러 차례 제안을 주셨는데 다른 스케줄이 있어 참여를 하지 못했다”라며 “올해도 드라마 촬영 등이 있어 참여를 주저하기도 했다. 민폐가 되긴 싫었지만 연극이라는 행위 자체에 애정이 있어 출연을 결정했다”라고 말했다.

“연극은 정말 ‘완벽’을 요구하는 행위잖아요. 배우로선 자기 무덤을 파는 일, 생명연장의 꿈을 포기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즐겁지만 고통스러운 작업이죠. 연기를 위해서 일부러 슬픔, 아픔을 느끼고 끄집어내는 거잖아요. 하지만 경지를 넘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해요. 이 작업에 대한 끊임없는 애증이 있는 것 같아요.”


연극을 한창 준비 중인 배해선은 2012년에 했던 연극 ‘그을린 사랑’을 떠올리며 연습을 한다고 했다. ‘그을린 사랑’은 ‘오이디푸스’를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배해선은 당시 사랑에 빠져 애인의 아이를 갖게 된 14세 소녀 ‘나왈’ 역을 맡았다. 그는 “그 때는 눈앞에 녹지 않을 것 같은 빙산을 마주한 기분이었다”라며 “작품이 주는 무게가 내 장기나 기술로는 할 수 없어서 막막하고 답답했는데 그 빙산이 점점 녹으며 내게 오는 기분이 든 연극이었다”라고 말했다.

“가끔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오카스테’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어요. 그 때 ‘오이디푸스’ 공부를 많이 해서 이 작품 자체를 하면 어떨지에 대한 기분이 들기도 했어요. 이 드라마는 눈덩이가 계속 굴러 언제 이렇게 큰 눈덩이가 됐는지 모를 정도로 감정을 절제해서 하는 연극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제 캐릭터 연기보다는 작품 전체 스타일을 먼저 파악하고 있는 중이에요. 단체 줄넘기를 하는 기분이랄까요? 누군가는 발에 걸리고 줄넘기 줄이 바르게 안 넘어오는 상황이지만 점점 박자를 맞춰 동시에 뛰려고 노력 중이예요.”

‘오이디푸스’에서 배해선은 ‘오이디푸스’ 역을 맡은 배우 황정민과 연기 호흡을 맞추기도 한다. 황정민과 배해선은 20여년 전 같은 극단부터 함께 온 깊은 인연이 있다. 1998년 뮤지컬 ‘의형제’에서는 모자관계로도 1년 여간 함께 했다. 황정민은 한 인터뷰에서 “그동안 각자 위치에서 잘 했기 때문에 이렇게 만난 것 같다”라며 배해선과의 연기 호흡을 기대하기도 했다.

황정민을 오랜만에 만난다는 배해선은 “너무 친했기 때문에 오랜만에 만나니 반가운 감정보다는 익숙함이 더 컸다”라며 “처음 만나면 친해지려고 말이라도 많이 붙였을 텐데 그러기엔 너무 친근한 사람이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다 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배해선에게 황정민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황정민 오빠는 극단시절에도 굉장히 열정적인 사람이었어요. 한편으로는 사부작거리는 사람이기도 했어요. 단 한 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았죠. 학전 소극장 천장에 있는 파이프가 끊어질 정도로 매달려서 운동을 했던 사람이었어요. 당시에는 집이 같은 방향이라 같이 버스를 타고 퇴근을 하기도 했죠.”

이제는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황정민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으로서, 배우로서 멋지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특히 영화, 드라마 등 수많은 작품 제안이 많이 들어오면서 1년에 연극 한 편을 올리는 그의 결심에 더 대단하다고 느꼈다고 전했다. 배해선은 “누군가에겐 또 다른 연기를 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연극을 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결심이 필요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연기를 하면 할수록 연극을 준비한다는 것은 큰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 같아요. 선‧후배들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다 드러내겠다는 결심을 하고 출연을 하는 거니까요. 관객들은 배우가 완성시킨 캐릭터를 보지만 참여하는 배우들은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단점까지도 다 노출될 수 있거든요.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아무도 연기를 잘하지 않아요. 오히려 실수하고 부족한 모습을 보이죠. 선배가 된 입장으로서 가끔 부끄러운 일이 될 수도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연극을 하시는 선배들은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무대에 오르시는 거예요. 그래서 전 정민 오빠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 베테랑 토크②로 이어집니다.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오늘의 핫이슈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