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칸 ‘감독주간’ 정다희 감독이 펼친 독창적인 애니의 세계

입력 2019-05-25 13: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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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서 단편 애니메이션 '움직임의 사전'을 공개한 정다희 감독. "시간의  상대성을 이야기하려 했다"고 밝혔다. 칸(프랑스)|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칸 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 흥미로운 단편 애니메이션 한 편이 초청됐다. 정다희(37) 감독의 ‘움직임의 사전’이다. 진지한 주제의식으로 무장하거나 장르적인 파격을 시도하는 영화들로 주로 채워진 칸 국제영화제 상영작 목록 가운데 마치 ‘신선한 봄바람’을 일으키는 듯한 작품이다.

10분 분량의 ‘움직임의 사전’은 다섯 개로 이뤄진 키워드를 통해 ‘시간의 상대성’을 이야기한다.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단편 애니메이션이 가진 색다른 매력, 시간과 공간을 ‘상대성’의 키워드를 통해 감각적으로 풀어낸 감독의 실력이 돋보인다.

칸 국제영화제 초청은 2014년 ‘의자 위의 남자’ 이후 두 번째인 정다희 감독을 21일(이하 한국시간) 칸 메인 행사장인 팔레 드 페스티벌에서 만났다. 칸은 물론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 초청돼 수상 성과를 거두기도 했던 그는 대학(홍익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뒤 프랑스 파리에서의 유학 경험 등을 거치면서 자신의 세계를 확고히 다졌다.

“그동안 개인적인 이야기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주로 만들어왔어요. ‘빈방’이나 ‘의자 위의 남자’처럼 집안 방에서 벌어지는 작품 3편을 연이어 했고요. 그러다가 이제 내 자신을 그만 바라보고(웃음),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자고 생각했죠. 그 무렵 어떤 친구가 저에게 ‘행동이나 말이 너무 빨라서 맞추기 어렵다’는 말을 했어요. 하지만 또 다른 친구는 저한테 ‘너무 느리다’고 했죠. 그런 시간의 상대성이 뭘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시간의 상대성’을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했다는 감독의 설명을 들으면 ‘움직임의 사전’은 다소 난해하지 않을까 예상되지만 이 작품은 ‘기발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감각적이다. ‘기준’ ‘반응’ ‘역할’ ‘가속’ ‘인식’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작품을 다섯 장으로 나눈 감독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 바라보는 세상을 쉼 없이 뒤튼다.

파리 국립장식미술학교에서 ‘부동과 원동’이란 주제의 논문으로 애니메이션 석사 학위를 받은 감독은 이를 통해 “다양한 속도에 대해 연구를 해왔다”고 말했다.

“공간과 시간에서의 부동과 원동, 영화와 관객 사이에서 일어나는 부동과 원동에 대해서도 꾸준히 생각해왔다”며 “영화에 나오는 다섯 개의 캐릭터는 ‘엄청 느린’ ‘느린’ ‘보통’ ‘빠른’ ‘뒤로 가는’이란 키워드로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역시 그에게 영감을 줬다

“단편 애니메이션을 처음 접한 건 대학 1학년 때였어요. 흥미로웠어요. 졸업 뒤 광고회사에 잠깐 다니다가 프랑스에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졸업 논문을 계기로 ‘부동과 원동’의 주제에 계속 관심을 두고 있어요.”

정다희 감독은 성과를 꾸준히 내왔다. 그에게 칸 국제영화제 경험을 처음 안긴 ‘의자 위의 남자’는 안시 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크리스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 다른 작품인 ‘빈방’은 2016년 히로시마 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대상을 받았다.

○ 목탄 연필로 그린 애니메이션의 독특한 질감

사실 일반적으로 영화관객이 단편 애니메이션을 접할 기회는 적다. 어쩔 수 없이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더욱이 ‘움직임의 사전’처럼 서사가 아닌 개념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독창적인 단편은 국제영화제를 통하지 않으면 접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사람마다 말하는 방식이 다른 것처럼 애니메이션으로 무엇을 말하는 지 작품마다 달라요. 저 역시 익숙한 서사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낼 수도 있지만 그보다 ‘나무는 겨울에 옷을 벗고 사람은 옷을 입는다’ ‘여름엔 나무가 옷을 입고 사람은 옷을 벗는다’ 같은 상대적인 개념의 작업을 좋아해요.”

‘움직임의 사전’은 정다희 감독이 2년간 작업한 결실이다. 칸 국제영화제는 그를 다시 감독주간에 초청하면서 “철학적이고 시적이다”는 평가를 내놨다.

이번 작품 뿐 아니라 앞서 정다희 감독이 만든 ‘의자 위의 남자’ 등은 독특한 질감을 갖고 있다. 그의 작품 스타일이 낯설지만,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바로 이 질감에서 나온다. “목탄 연필로 밑그림 작업을 하는 방식”이 불러온 효과가 아닐까.

“물론 채색 작업은 컴퓨터로 해요. ‘움직임의 사전’을 완성하기까지 그린 종이의 장수를 따지면… 50cm 정도 될 것 같아요. 단편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소수이긴 하지만 그래서 더욱 서로 응원하고 여러 시도를 하면서 작업하고 있어요.(웃음)”

정다희 감독은 단편을 넘어 서사가 있는 장편 애니메이션 작업도 시작했다. “‘없는 데, 있는 사람’을 주제로 만들고 있다”는 감독의 말에 호기심이 일었다.

칸(프랑스)|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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