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인터뷰] ‘기생충’ 송강호 “배우는 무계획이어야 해, 드라마는 KTV로 본다”

입력 2019-06-05 15: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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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인터뷰] ‘기생충’ 송강호 “배우는 무계획이어야 해, 드라마는 KTV로 본다”

영화 ‘기생충’ 속 백수 기택(송강호 분)이 안쓰럽게 느껴진 이유는 살아보려고 발렛 기사부터 자영업까지 다양한 일을 했지만 반지하를 벗어나지 못한 데 있다. 그런 상황에서 아들에게 ‘무계획이 계획’이라고 말하는 아버지의 심경은 어땠을까.

송강호는 “봉준호 감독이 해놓은 극적인 장치가 아닐까 싶다. 처음부터 기택이 야심을 품고 있었다면 관객들이 느낄 충격이 덜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감독이 아닌 연기자로서 저 나름대로 해석을 해보자면,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참으로 시의적절하다’ 연극도 아니고, 굉장히 만화적인 대사잖아요. 이런 부분이 오히려 반지하 방으로 관객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더라고요. 반지하의 세계에 몰입하기보다는 관망해주길 원하죠. 처음부터 기택이 야심을 품었다면 ‘기생충’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입체적으로 그려지지 못했을 거예요. 클라이맥스에 기택이 한 선택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려는 장치가 아니었을까요?”

이어 실제로도 무계획으로 연기 생활 중임을 고백, “배우이기 때문에 좋은 작품과 좋은 연기를 위해서 노력할 뿐이다. 올해 딱 연기를 한지 30년이 됐다. 배우는 계획을 세울 수 없는 직업이기에 나도 무계획으로 산다”라고 설명했다.

“계획을 세우고 이 일을 했다면 1년도 못 버틸 거예요. 순수하게 일에 대한 애정과 마음으로 하다 보니 나름대로의 성취가 있었죠. 애초부터 계획을 했다면 무계획이어야합니다. 매번 견지한 부분이 있다면, 좋은 연기란 것은 거창하게, 카멜레온 같이 화려하게 변신하거나 재능을 폭발시키는 그런 것보다는 작품에서 어떻게 헌신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작품에서 원하는 인물이 되는지를 고민하는 자세가 더 중요하더라고요. 헌신하는 태도요! 좋은 연기의 표본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생충’을 통해 오랜만에 원톱 주연이 갖는 부담감을 내려놨다. 많은 배우들이 비교적 골고루 존재감을 나타내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송강호는 “봉준호 감독과도 ‘이런 작품 정말 오랜만에 한다’고 말했다. (원톱 주연물)을 일부러 선택한 것은 아니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10년 정도 필모그래피가 만들어진 것 같다”고 촬영현장을 추억했다.

“그 많은 배우들의 앙상블이 좋았어요. 후배들도 잘 적응을 했고요. 아직도 최우식, 박소담은 저를 아버지라고 불러요. 그 친구들에게 아버지라고 불릴 나이는 아닌데... 가난해서 가족 사이가 피폐해질 수 있지만 기택네는 서로에 대한 애정을 지닌 가족이죠. ‘기생충’이라는 영화 자체가 분노, 복수와는 안 어울리긴 해요.”

그러면서 “지난 내 필모그래피를 보니 무겁고 진중하더라. 일부러 그렇게 작품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기생충’ 작업이 특별했다. 균등하게 배우들이 많이 나오지 않나”라고 덧붙이며 아들 역할로 호흡을 맞춘 최우식을 언급했다.

“‘기생충’을 통해 최우식 별명이 ‘최분량’에서 ‘최만개’로 바뀌어요. 일단 내가 최우식 나이대였을 때, 저는 최우식처럼 피부가 곱지 못했습니다. (웃음) 영화 ‘거인’을 보고 최우식의 존재감을 알고 있었어요. 어려운 역할인데 아주 잘 하더라고요. 이번에 아들로 만나서 기뻤고 역시나 잘해줘서 또 기뻤어요.”

또 송강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TV드라마가 없다. 이에 대해 송강호는 “성향이 동시다발적이지 못하다. 20년 전에 드라마 제의가 들어왔을 때 영화를 찍고 있어서 못했다. 일부러 TV 드라마 출연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라며 “요즘도 옛날 드라마를 즐겨 본다. 80년대 ‘전원일기’ 광팬이고 ‘대장금’도 연속해서 보고 있다. 정부에서 하는 KTV 채널을 켜 놓으면 된다”고 말했다.


익히 알려진 대로 ‘기생충’은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대한민국 영화계 역사를 새로 썼다. 봉준호 감독의 페르소나로 불리는 송강호는 ‘괴물’에 이어 ‘기생충’으로 칸 영화제에 참석, 영광의 기쁨을 함께 나눴다. 그러나 대중들에겐 해외 영화제 수상작을 거부하는 성향이 있다. 예술성에 치우쳐 심오하거나 찝찝함을 남기는 작품이 대다수라는 경험을 해왔기 때문. 다행히(?) ‘기생충’은 대중적으로도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관련해 송강호는 “가장 듣고 싶은 말이다. 해외 영화제에서 상 받으면 심오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지 않나. ‘영화가 쉽다’는 말을 가장 듣고 싶다”고 만족감을 나타내며 흥행에 대한 고마운 마음까지 덧붙였다.

“쉽게 풀어도 관객 마음속으로 파고드는 묵직함이 있는 영화예요. 일반적인 엔딩이 아니니까 호불호가 나뉠 수는 있지만, 우리의 삶이 그냥 흘러가듯 결말도 그렇게 나온 것 아닐까요? 열린 결말도 아닌 것이, 뭔가 결말을 낼 수 없는 이야기죠. 관객들이 판단할 문제예요. 그럼에도 공생하는 사회를 꿈꾸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연기자의 입장에서도 희극과 비극의 감정을 복합적으로 느낄 수 있는 영화였어요.”
동아닷컴 전효진 기자 jhj@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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