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정은 “문광이 어울리지 않을까 걱정 또 걱정…내 재능을 의심했죠”

입력 2019-06-12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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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스러운 시간을 누리고 있다”는 말처럼 이정은은 최근 드라마와 영화로 연이어 ‘대박’을 터트리고 있다. 영화 ‘기생충’에서도 마찬가지. 그가 연기한 가사도우미 문광은 영화의 ‘히든카드’다. 사진제공|윌엔터테인먼트

■ 800만 순항 ‘기생충’ 스토리 반전의 캐릭터 ‘문광’ 역 이정은

옥자 시사회 후 도착한 콘티 한 장
충격적인 시나리오 그래도 좋았죠
‘문광’이 귀엽게 보일까봐 걱정도
목소리 연기? 듣는 분이 더 대단
현장서 리드해 준 강호 오빠 생큐

“동료들이 저더러 ‘깐(칸) 배우’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답하죠. ‘아직 안 깐 배우입니다’라고요. 하하! 호사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겸허해야죠. 거품은 금방 빠지잖아요.”

‘복’의 기운이 배우 이정은(49)에게 확실히 기울었다. ‘미스터 션샤인’부터 ‘눈이 부시게’까지 최근 출연한 드라마마다 소위 ‘대박’을 터트리더니 이젠 스크린에서도 저력을 과시한다. 누구나 가질 수 없는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의 주역이란 타이틀까지 품었다.

평단은 물론 관객의 평가도 후하다. 800만 관객 동원을 앞둔 ‘기생충’(제작 바른손이앤에이) 속 배우 가운데 이정은은 극의 완성도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히든카드’로 꼽힌다. 11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이정은도 주변의 반응을 체감하고 있다. “안과에 갔더니 진료할 생각도 없이 계속 ‘기생충’ 이야기만 하더라”면서 “사돈에 팔촌까지 연락이 오고 있다”며 웃었다.


● ‘슈퍼돼지’ 목소리 이어 봉준호 감독과 재회

‘기생충’에서 이정은은 부잣집 가사도우미 문광 역이다. 영화가 시작하고 한 시간이 지날 무렵 비 오는 밤 문광이 부잣집의 초인종을 누르는 순간부터 이야기는 대전환을 맞는다. 역할 자체가 결정적인 사건을 내포한 탓에 일찌감치 ‘스포일러’로 분류돼 존재가 감춰진 그는 칸 국제영화제에서도 레드카펫과 공식상영에만 참석했을 뿐 기자회견이나 인터뷰엔 나서지 않았다. 국내 개봉 이후에도 마찬가지. 이는 관객의 더 큰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정은과 봉준호 감독의 인연은 2009년 ‘마더’로 시작됐다. 짧은 인연이었다. 본격적인 작업은 2017년 ‘옥자’부터다.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슈퍼돼지 ‘옥자’의 목소리 연기였다.

“감독님이 옥자 사진과 제 사진을 붙이곤 ‘착한 눈이 닮지 않았나요’ 묻더라고요. 저도 성격이 이상한지, 진짜 닮았네요? 했죠. 하하! 슈퍼돼지 목소리를 상상이나 했겠어요. 동물원에도 가보도, 경기 연천의 유기농 돼지농장 주인에게 삼고초려해서 돼지 소리를 녹음해 따라해 보기도 했어요. 감독님은 또 ‘미안해하는 옥자 소리’ 같은 걸 주문하더라고요.”

‘옥자’ 시사회 날 감독은 이정은에게 “내년 스케줄을 비워주면 좋겠다”고 했다. 얼마 뒤 콘티 한 장이 이메일로 당도했다. 한 여성이 공중에 떠 벽을 미는 모습이 담긴 그림이었다. ‘기생충’ 속 문광을 상징하는 바로 그 장면이다.

“특이했죠. 무슨 이야기인지도 몰랐어요. 감독님이 ‘재미있고 이상한 작품인데, 같이 해보자’고 하더라고요. 사회 구조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 담긴 시나리오가 충격적이었지만 좋았어요. 런던처럼 주택문제로 고민하는 지역 관객들은 영화를 어떻게 볼까, 궁금하더라고요.”

‘기생충’에서 이야기와 장르의 전환을 책임지고, 반전도 이끄는 이정은은 칸 국제영화제에서도 외신기자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호평도 따랐다. 하지만 스스로는 “재능을 의심했다”고 말했다. “귀여운 역할을 많이 해서인지, 내가 어울릴까, 더 적합한 배우들의 얼굴까지 떠올랐다”고 털어놨다.

“걱정스런 마음에 촬영 때 ‘귀여워 보이지 않느냐’고 계속 물었죠. 다들 ‘안 귀엽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제 눈엔 지금도 문광의 모습이 귀여워 보여요. 하하하!”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 송강호도 부러워한 ‘이정은의 목소리’

이정은은 1992년 대학로에서 연극을 시작했다. 20년 넘도록 연극배우와 연출, 뮤지컬에만 몰두했다. 드라마나 영화에 본격적으로 나선 건 불과 5∼6년 전이다. 20년간 묵묵히 쌓은 실력은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무엇보다 그는 ‘목소리 마술사’로 통한다. 서울 태생이지만 전라남도가 고향일 거란 의심을 살 정도로 사투리 연기도 탁월하다. ‘기생충’에선 북한 아나운서를 흉내 낸 장면으로 또 한 번 관객을 놀라게 했다. 봉준호 감독이 가장 매력을 느끼는 부분, 송강호가 부러워하는 것도 그의 목소리다.

“저는 그냥 할 뿐인데 미묘한 걸 발견하는 분들이 더 대단하죠. 어머니가 전화통화만 하면 한껏 교양을 더해 ‘여보세용∼’ 그래요. 그런 모습을 참고해 표현하면 감독님이 좋아하더라고요.”

이정은은 “기생충 팀은 성향도 기생충 같은 구석이 있다”고 했다. “같이 있어야 다들 힘이 나고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칸으로 향하기 전 팀의 연장자인 송강호는 동료들에게 ‘감독에게 힘을 실어주자’고 했고, 팀은 기꺼이 응했다.

“강호 오빠의 말 덕분에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그 순간을 겸허하게 받아들였어요. 전주에서 촬영하는 동안에도 오빠 덕분에 누구든 편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어요. 바쁜 감독의 빈틈을 채워준 분도 오빠에요.”

이 대목에서 귀에 들어오는 호칭은 “강호 오빠”. 송강호에게 “오빠”라는 호칭을 쓸 수 있는 후배 배우가 과연 얼마나 될까.

“제가 대학로 막내 때부터 알던 선배죠. 몇 년 전까진 차마 그렇게 부르지 못했지만 저도 이젠 오십 살이 됐는데. 하하! 영화 ‘택시운전사’ 때부터 오라버니라고 불렀어요. 그런 저를 귀여워 해주는 분이에요.”

송강호는 후배 이정은에게 때때로 ‘산만하기 이를 데 없다’는 말도 한다. “강아지들 챙기고, 캠핑도 좋아하고, 춤에도 빠져 사는” 이정은도 수긍한다. “번잡하고 산만한, 혼자서도 놀게 많은 사람”이라고 자평한다. 세 편을 함께 한 봉준호 감독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할까.

“집요하게 만날 영화만 생각하는, 인간의 폐부까지 꿰뚫어보는 감독이죠. 눈 뜨면 영화만 생각하는 남자이고요.”

● 이정은

▲ 1970년 1월23일생
▲ 한양대 연극영화과 졸업
▲ 1991년 연극 ‘한여름밤의 꿈’ 데뷔, 연극 ‘슬픈 인연’ ‘마호로바’ ‘장석조네 사람들’ 등
▲ 2008년 뮤지컬 ‘뺄래’·제1회 젊은 연극인상
▲ 2014년 tvN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
▲ 2017년 영화 ‘택시운전사’
▲ 2018년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대한민국문화연예대상 드라마부문 여자 우수연기상
▲ 2019년 OCN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 예정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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