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겸의 엔터 파워맨] 신현빈 대표 “격조 높은 트로트, 케이팝의 새길 열 것”

입력 2018-08-17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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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빈 대표는 언제 어디서 만나더라도 항상 정장차림이다. 불볕에 만난 이날도 정장이었다.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넥타이와 커프스버튼으로 격식을 차린다. 매니저란 직업에 대한 자긍심 때문이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7> ‘1세대 한류제작자’ 신현빈 루체엔터테인먼트 대표

Y2K·써클 등 한류 콘텐츠의 시초
조정민에게서 트로트의 미래 발견
엔카계 대부 나카무라 타이지 참여
일본 데뷔곡 ‘아빠’로 가능성 확인
중국 시장까지 열리면 대박 날 것

1999년 데뷔해 ‘헤어진 후에’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록밴드 Y2K는 최초의 한일 합작그룹으로 이슈를 모았다. 한국인 멤버 고재근과 일본인 멤버 마츠오 유이치, 마츠오 코지 형제로 이뤄진 Y2K는 세 장의 앨범으로 약 200만 장의 판매량을 기록했고, 2000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벌인 콘서트에는 8만 명이 몰렸다. 한국과 일본에서 크게 성공한 Y2K는 한류콘텐츠의 시발이었다.

Y2K를 기획한 사람은 루체엔터테인먼트 신현빈 대표다. 그는 Y2K에 1년 앞서 써클이라는 한중일 합작 걸그룹을 론칭시켰다. 한국인 2명, 일본인 2명, 중국계 일본인 1명으로 이뤄진 틴에이지 그룹이었다. 첫 앨범은 30만 장이 팔렸다.

당시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다국적그룹을 기획해 오늘날 케이팝의 초석을 세운 신현빈 대표. 남다른 도전으로 ‘1세대 한류 제작자’로 평가받는 그는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흔히 한류하면 떠올릴만한 아이돌 그룹이 아니라 트로트로 일본 엔카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엔카도 트로트만큼이나 젊은 세대를 파고들지 못하면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상황인데도 신 대표는 케이팝의 새로운 지류를 내겠다는 것이다. 남들과 다른 행보로 승부수를 띄워온 그가 이번에는 트로트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현빈 대표를 그의 서울 성산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 과거 - 외국과 합작으로 한류를 선도하다


-당시 다국적그룹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1996년 일본을 방문했다가 아무로 나미에가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걸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 그런 여성 아이돌 문화가 없었다. 일본 제작자들과 어울리며 써클을 기획하게 됐다.”


-왜 한중일 합작그룹이었나.

“일본과 중국시장을 보았기 때문이다. 일본은 우리보다 인구가 많고, 화폐가치도 높았다. 문화소비에 대한 욕구가 강했다. 중국 14억 인구도 한국문화를 찾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당시 중국시장에 진출하고 싶었던 일본은 한국을 우회하려 했다.”


-써클은 오래가지 못했다.

“앨범 2장으로 끝났다. 시행착오를 겪었다. 다음번엔 남자팀, 록 음악으로 하자 생각했다. 그래서 만든 Y2K는 처음부터 대박이 났다. 하지만 일본 측 파트너의 욕심으로 팀은 깨지고 말았다.”

신현빈 대표는 한일문화교류에 앞장 선 인물이다. 1997년 11월 일본 음악계 거물들을 초청해 서울 신라호텔서 ‘한일문화교류의 밤’ 리셉션을 열었다. 이듬해 10월 정부의 일본 대중문화 유입을 허용하는 조치가 내려지자 유명 엔카가수 신노 미카를 한국으로 불러 KBS 1TV ‘가요무대’에 출연시켰다.


-어떤 자격으로 그런 행사를 열었나.

“당시 난 음반업계 선두주자였다. 히트곡을 많이 냈고, 젊은 나이에 레코드 회사(동양레코드)도 차렸으니까.”

그는 스물다섯이던 1985년 제대 후 신촌뮤직 장고웅 사장을 만나 매니저가 됐다. 당시 ‘멍에’로 국민가수 대접을 받던 김수희의 방송매니저를 맡았다. 이수만, 최혜영의 방송일도 같이했다. 서울 방배동 라이브 카페에서 김동환을 발견한 스물아홉엔 음반제작을 시작했다. 첫 앨범 ‘묻어버린 아픔’은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다. 서른 살 때는 이승철 1집 ‘안녕이라고 말하지마’를 제작해 성공을 거뒀다. 막대한 수입을 올린 그는 음반유통·도매사 동양레코드를 세웠다. 유피, 이덕진, 신성우, 사준, 좌회전 등을 데뷔시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1997년 겨울 IMF 사태로 업계 부도가 잇달았다. 동양레코드도 부도를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써클과 Y2K로 가요계에서 변함없는 영향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문득 “너무 앞만 보고 달렸다”는 생각에 2003년 돌연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에서 다양한 사업을 했지만, 매니저가 천직임을 새삼 깨닫고 7년 만에 귀국했다. 2012년 신사동호랭이를 만나 걸그룹 EXID를 제작했다. 중국인 멤버가 포함된 남성 7인조 엠파이어도 론칭시켰다.

신현빈 루체엔터테인먼트 대표.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현재 - 트로트로 한류의 새 지평을 열다

트로트를 하게 된 건 우연이었다. 2014년 어느 날 가수 설운도의 전화를 받고 조정민을 만났다. 만나보니 그가 출연했던 엠넷 ‘트로트 엑스’에서 본 장면을 기억할 수 있었다. 아무로 나미에와 이마가 닮았고, 피아노 치는 모습을 마음에 두고 있던 참이었다. 당시 조정민은 여러 메이저급 기획사로부터 러브콜을 받아둔 상태였다.


-조정민과 함께하게 된 결정적 한마디는.

“외국시장에 나가자고 했다.”


-트로트가 외국에서 통하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 많다.

“조정민은 일본에서 먹힌다는 확신이 있었다.”

조정민의 엔카 진출을 위해 손잡은 파트너는 ‘엔카계 대부’로 불리는 나카무라 타이지다. 그가 만든 곡이 500곡에 이르고, 수시로 NHK ‘홍백가합전’ 심사위원을 맡은 인물이다. “타이지도 ‘지금 이대로의 엔카는 안된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엔카가 가야할 미래’, 내가 가고 싶은 ‘트로트의 미래’가 같았다.”

둘의 생각은 이랬다. 트로트나 엔카가수는 누구보다 음악적 실력이 뛰어나야 하고, 아이돌 걸그룹 멤버보다 더 예쁘고 섹시해야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한 단계 위로 보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격조 있는 ‘퓨전 트로트’ ‘퓨전 엔카’로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조정민은 음악적 실력은 물론 170cm 장신에 볼륨 있는 몸매로 ‘비주얼’도 뛰어나다. 피아노전공자로서 기악 능력도 출중하다. 신 대표나 타이지에게 조정민은 ‘업그레이드 트로트’ ‘업그레이드 엔카’의 조건에 부합하는 재원인 것이다.

조정민은 4월 일본에서 데뷔곡 ‘아빠’를 발표했다. 나카무라 타이지가 한국인 친구의 슬픈 가족사를 듣고 만든 곡이었다. 최근 오사카 페스티바홀에서 열린 조정민 콘서트에 나카무라 타이지는 노래에 얽힌 사연을 들려주고 조정민을 소개했다. 조정민은 무대로 나가 피아노를 쳤다. 그리고 ‘아빠’를 불렀다. 많은 관객들이 눈물을 훔쳤다. 이 장면을 지켜본 신현빈 대표는 더욱 확신을 갖게 됐다.

신현빈 루체엔터테인먼트 대표.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미래 - 한류의 다변화를 예고하다


-일본에서도 엔카시장이 암울한 상황 아닌가.

“조정민으로 인해 트로트뿐만 아니라 엔카시장이 살아날 수 있다. 일본 내에서도 엔카에 대한 자성도 일어나고 있다. 음악은 패션이다. 트렌드를 만들어야한다. 하지만 트로트와 엔카는 머물러 있다. 옛날 음악으로만 여긴다. 그 생각을 바꿔놓아야 한다.”


-어떻게 바꿔야 할까.

“퀄리티를 높여야한다. 음악적 완성도는 물론 의상과 행동에도 기품을 갖춰야 한다. 행사용 음악으로 마구잡이로 해선 안 된다.”


-트로트가 일본 외 지역에도 어필할 수 있을까.

“중국도 우리와 정서가 비슷하다. 중국시장이 열리면 트로트는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조만간 조정민을 둘러싼 다양한 일들이 중국에서 펼쳐질 것이다.”

실제 조정민은 남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SNS를 통해 그의 무대가 소개되면서 팬들이 늘어나고 있다. 푸에르토리코, 콜롬비아, 멕시코 등지의 팬들이 30명 안팎의 그룹을 이뤄 1년에 두 번 정기적으로 한국을 방문한다. 조정민은 이들을 위해 팬미팅을 갖는다. 조정민의 노래, 예능에서 한 발언은 현지에서 한국어 교재로 사용된다.


-정부의 노력도 중요하지 않나.


“정부뿐만 아니라 대기업의 협력도 필요하다. 대기업들은 한류스타를 통해 자사 상품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할 수 있다. 이미 한류로 인해 한국에 대한 호감도 높아지고 있다. 서로 윈윈 할 수 있다.”


-트로트가 설 자리가 없는 게 현실이다.


“트로트가수가 출연하는 방송프로그램은 KBS 1TV ‘전국노래자랑’밖에 없다. 광고도 들어오지 않는다. 장르를 떠나 좋은 가수들은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1위를 하는 시대가 왔다. 한류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차분히 세계적인 네크워크를 갖춰서 프로모션을 잘하면 방탄소년단 같은 팀은 계속 나온다.”

김원겸 기자 gyumm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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