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호의 해피존] 야구도 운은 계획에서 비롯된다

입력 2019-04-25 1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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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김태형 감독(왼쪽)-박세혁. 스포츠동아DB

야구는 파면 팔수록 심오한 인생철학을 만날 수 있는 경기다. 그 덕분인지 야구인들은 주옥 같은 명언을 많이 남겼다. 전설적인 옛 스타들만의 전유물도 아니다. 두산 베어스 조성환 수비코치가 현역시절 남긴 “가슴에 팀 로고가 있는 이유가 분명 있다”는 말은 메이저리그의 유명한 금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도 손색이 없는 울림이 담겨져 있다. 워렌 스판의 “배팅은 타이밍이고 피칭은 그 타이밍을 뺏는 것이다”는 말은 단 한 줄로 야구를 명쾌하게 해석한다. 요기 베라의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니다”는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자주 사용하는 명언이다.

야구, 스포츠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자주 인용되는 명문장 중 하나로 “운은 계획에서 비롯된다(Luck is the residue of design)”를 꼽을 수 있다. 야구 경영자로 명예의 전당에 오른 브랜치 리키(1881~1965년)의 메시지로 그라운드를 넘어 경영, 심리, 인생지침서 등 많은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리키는 LA 다저스 단장 시절 전 사회적인 이슈가 된 흑인 선수에게 메이저리그의 문을 연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역시 각고의 노력 끝에 이뤄진 결정이었고, 첫 번째 흑인 선수로 재키 로빈슨을 선택한 것도 기술적인 능력뿐 아니라 정신적인 성숙도까지 판단한 철저한 분석을 통해 이뤄졌다.

리키가 남긴 것은 이뿐이 아니다. 매일 경기 전 타자들이 타격 훈련을 하는 배팅케이지도 리키가 가장 먼저 고안했다. 지금까지도 배팅케이지 덕분에 한 야구장에서 타격과 수비, 체력 훈련을 동시에 할 수 있게 됐다. 피칭 머신도 리키의 아이디어였다. 또한 현대적인 스프링캠프와 팜 시스템도 리키가 도입한 혁신적인 변화였다.

우리는 야구장에서 리키의 말을 실천하고 있을까. 두산 김태형 감독은 지난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취재기자들에게 포수 박세혁을 칭찬했다. 고칠 점, 더 노력해야 할 부분도 있었지만 기자들과 사담을 나누는 자리가 아니면 ‘아픈 말’을 하지 않았다. 박세혁을 외야수로 선발 출장시킨 경기도 있었다. 양의지라는 큰 벽에 가로막혀 있던 팀의 두 번째 포수에 대한 응원으로 보였다. 그러나 더 큰 그림이 있었다. 김 감독은 양의지의 잔류를 누구보다 원했지만 프리에이전트(FA) 협상은 자신의 권한 밖 일이었다. 양의지는 망설이다 결국 두산을 떠났다. 박세혁은 공백이 크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올 시즌 두산 안방을 잘 지키고 있다. 자신을 양의지의 ‘대체 자원’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깊은 신뢰와 믿음, 응원을 보내준 김 감독 앞에서 100% 이상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키움 장정석 감독(왼쪽)-장영석. 스포츠동아DB


‘계획된 운’은 키움 히어로즈에도 존재한다. 무려 10년 동안 자리를 잡지 못했던 장영석은 올해 전혀 다른 타자로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슈퍼스타들 사이에서 타점 선두 경쟁을 하고 있다. 올해 갑자기 폭발한 것으로 보이지만, 장정석 감독의 철저한 준비가 숨어 있다. 장 감독은 3루수 김민성의 FA 이적에 대비해 지난해부터 장영석에게 많은 기회를 줬고 진심으로 격려했다. 한국시리즈 우승팀은 하늘이 점지한다는 말이 있다. 당연히 운이 없으면 될 일도 안 되는 곳은 야구장뿐만이 아니다. 그러나 준비 없는 곳에 결코 행운은 함께하지 않는다는 것은 변함없는 진리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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