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리뷰] ‘빌리 엘리어트’ 어둠 속에서 피어난 ‘희망’이라는 꽃

입력 2018-03-21 1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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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리뷰

탄광에서 일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소년 빌리는 복싱 수업을 마치고 체육관 열쇠를 건네주다 처음으로 ‘발레’를 접하게 된다. 처음에는 관심도 없던 발레에 흥미를 갖게 된 빌리는 복싱 수업 대신 발레를 배우지만 곧 이내 아버지에게 들통이 난다.

앞으로 발레를 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명령이 떨어졌지만 ‘발레’가 유일한 기쁨인 빌리는 윌킨슨과 런던 로열발레학교 입학을 위한 오디션 준비를 하기로 결정한다. 밖에서 아버지와 형이 광부대파업 운동을 하는 동안 빌리는 몰래 연습을 한다. 하지만 이마저 아버지와 형이 알아채고 막는다. 윌킨슨은 빌리의 집에 찾아가 사실을 말하고 이를 들은 아버지와 형은 분노하며 다시는 빌리에게 접근하지 말라며 경고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텅 빈 복지회관에서 혼자 춤을 추고 있는 빌리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큰 실수를 했다는 생각에 아들을 오디션을 보내기로 결정한다. 이에 그는 빌리를 런던에 보내기 위해 파업을 깨고 다시 갱으로 돌아간다. 빌리의 아버지가 배신자라고 여겼던 마을 사람들도 그 사정을 듣고 빌리를 위해 돈을 모아 그에게 준다. 오디션에 합격한 빌리는 런던으로 향하고 광부들은 파업의 실패 소식을 듣고 쇠락하는 탄광으로 돌아간다.




● 아이의 핑크빛 꿈과 대비된 어른의 흙빛 현실

영국의 역사 중 가장 어둡고 격동의 시기라고 할 수 있는 1984년~85년을 배경으로 한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국가’와 ‘노동자’, ‘현실’과 ‘꿈’, ‘여성성’과 ‘남성성’ 등 씨줄과 날줄로 한 자리에 모인 작품이다. 실제 영국 정부가 1984년 3월 탄광 폐쇄를 결정한 후 전국적으로 광부들이 12개월간의 파업이 소재가 되기도 했다.

어린이가 주인공이라고 해서 이 뮤지컬이 어린이들만 위한 공연은 아니다. ‘빌리 엘리어트’가 전 세대를 위한 극인 이유는 한 소년의 핑크빛 꿈이 이뤄지는 가운데 어른들의 어둡고도 현실적인 이야기가 뒤에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빌리의 성장담 못지않게 영국 정부의 탄압을 향한 공동체의 투쟁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극의 첫 넘버인 ‘더 스타스 룩 다운(The Stars Look Down)’부터 주요 테마곡인 ‘솔리대리티(Solidarity)’, 그리고 마가렛 대처를 향한 일침이 담긴 ‘메리 크리스마스 매기 대처(Merry Christmas Maggie thatcher)’까지 차가운 현실이 담긴 넘버가 이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특히 ‘솔리대리티’에서는 광부와 경찰, 그리고 빌리와 발레걸스가 함께 하는 안무와 동선으로 꿈과 현실이 한 공간에서 펼쳐져 마치 지금 세상을 보는 듯 울컥해지기도 한다.

결국 극의 결말은 아버지의 희생과 공동체의 화합으로 ‘빌리’라는 희망을 키워낸다는 것이다. 빌리의 가능성을 본 아버지는 투쟁에서 굴복으로 돌아서며 희생한다. 함께 투쟁하던 이웃 사람들도, 반대편에 섰던 사람들도 어린 소년 ‘빌리’의 꿈을 위해 재정적으로 도움을 주며 화합을 그려낸다.

마지막에선 화합의 절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기나긴 싸움 끝에 광부들의 패배로 끝난 파업으로 다시 탄광으로 돌아가지만 그들의 헤드라이트를 비롯해 조명은 빌리를 비춘다. 마치 자녀세대를 위해 희생하며 뒤로 물러서지만 아이들의 가는 길을 밝혀주는 듯 말이다.

‘빌리 엘리어트’에서는 사회적 약자를 비추기도 한다. 노동자와 어린이를 비롯해 노약자 그리고 성소수자까지 다양한 인물들의 조합이 무대 위로 올라간다. 특히 할머니와 빌리의 친구 ‘마이클’은 사회적 약자로 불리는 이들이지만 누구보다 밝고 웃음을 주는 캐릭터라 눈길을 끈다.




● ‘빌리’의 몸짓에 눈은 반짝, 입에선 환호가

이 작품의 가장 특별한 점은 어린 배우가 3시간의 극을 이끌어간다는 것이다. 오디션을 통과해 ‘빌리 스쿨’에서 약 1년간 발레, 탭, 현대무용, 아크로바틱, 스트리스 댄스, 보컬 등 트레이닝을 받은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 빛을 발한다.

영국 북부지역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기에 말투는 전반적으로 거세다. 영국 지방 특유의 악센트 대신 배우들은 목소리의 크기로 대신했다. ‘빌리’ 역을 맡은 김현준은 스피드 스케이터와 같은 연기를 펼친다. 초반에는 여느 다름없는 소년의 모습이지만 죽은 엄마의 편지를 읽고 영감을 받으며 발레를 배우는 빌리는 섬세한 감정연기를 한다. 스케이터처럼 추월을 해야 할 때는 감정을 폭발 시킨다. 1막 마지막인 ‘앵그리 댄스’를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면서도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 극의 마지막까지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한다.

빌리의 춤을 볼 수 있는 장면은 크게 세 장면이다. 아버지의 반대로 오디션 참가를 못하자 절규하는 ‘앵글리 댄스(Angry Dance)’와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에 맞춰 발레리노가 된 미래의 빌리와 함께 하늘을 나는 2인무 ‘드림 발레(Dream Ballet)’, 그리고 오디션 장에서 “춤을 출 때 자유를 얻는다”며 춤추는 ‘전기(electricity)’다. 춤으로 감정 표현을 해야 하는 김현준은 세 장면에서 분노와 환희 그리고 자유를 무대 위에서 표현한다. 격정적인 발 구름, 우아한 몸동작 등 무대 위에서 자유자재로 표현하는 김현준의 모습에 모든 시선이 그에게로 반짝이고 입에선 환호가 쏟아진다.

이 외에도 ‘마이클’ 역에 유호열, ‘스몰보이’ 안유준, 그리고 발레 소녀들은 극의 깜찍함을 더하고 극장을 핑크빛으로 채운다. 발레 코치 ‘미세스 윌킨슨’ 역인 최정원은 베테랑 배우답게 노련한 연기로 무대에 웃음과 감동을 안긴다. 또한 아버지 역에 ‘최명경’, 할머니 역에 ‘홍윤희’, 형 ‘토니’ 역에 구준모 역시 남다른 존재감을 펼친다. 5월 7일까지 서울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에서.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신시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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