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리뷰] ‘네이처 오브 포겟팅’, 몸으로 전하는 인간의 망각

입력 2019-02-18 1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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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치매를 앓고 있어 딸 소피에게 의지하며 사는 아버지 톰. 소피는 55세 생일을 맞이한 아버지를 위해 입을 옷을 준비한다. 소피는 “아빠, 옷걸이 끝에 있는 재킷을 입으시면 돼요. 주머니에 빨간 넥타이를 넣어놨어요. 마이크 아저씨가 할머니를 모시고 올 거예요. 케이크도 가져올 거예요”라고 말한다. 아버지가 기억하도록 한 번 더 말했지만 톰이 기억하는 것은 ‘빨간’ 이라는 말 뿐. 빨간 옷을 찾기 시작한 톰은 죽은 아내가 입었던 빨간 드레스를 보고 그와 함께 있었던 기억들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기억의 상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그려낸 연극 ‘네이처 오브 포겟팅’(영제 The Nature of Forgetting)은 국내 관객에게 다소 생소한 ‘피지컬 씨어터’, 즉 신체의 움직임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극이다. 무언극은 아니다. 캐릭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지만 관객들에게 전달하려는 목적이 아닌 이야기를 이해시키는 정도다. 이 극은 대사보다 배우들의 몸의 움직임이 더 강렬하다. 일상적인 움직임부터 마임, 댄스 등 몸을 움직이며 관객들에게 내용을 전달한다.

70분간 몸의 언어를 활용한 네 명의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인다. 이들의 움직임은 추억을 기억해내려는 톰의 머릿속을 무대 위에서 오롯이 표현된다. 즐거운 추억을 떠올리다 기억이 나지 않는 부분은 처음을 돌아가 다시 생각하는 것부터 기억이 사라지는 과정까지 배우들은 몸동작으로 표현해낸다. 이들은 잠시도 퇴장을 하지 않는다. 무대 안에서 준비를 하고 소품 등을 직접 옮기며 연기를 펼치는 모습 역시 인간의 기억과 망각을 그대로 표현하는 듯하다.

2인조 라이브 밴드의 음악도 관객들이 극을 몰입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드럼과 퍼커션이 함께하는 라이브 밴드는 경쾌하다가도 우울하게, 또 어울림음과 불협화음이 오가며 톰의 머릿속의 상태를 고스란히 관객들의 귀로 전달한다.

이들의 열연 덕분에 메시지 역시 강렬하게 다가온다. 이번 공연의 연출이자 배우인 기욤 피지(Guillaume Pigé‧톰 역)가 기억을 되찾으려 안간힘을 쓰는 연기는 애처롭기도 하고 언젠간 누구에게나 찾아올 일에 대해 생각하며 공감하게 한다. 또 기억의 상실은 슬프지만 그럼에도 남아있는 것은 누구 혹은 무엇인지 자문하게 한다.

극 중에서 톰은 조기치매를 앓고 있는 설정이지만 제작진은 ‘치매’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 이 연극을 만들지 않았다고 전했다. 작품을 만들 당시 치매에 대해 공부하고 치매 환자와 인터뷰를 하기도 했지만 이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나이가 들면서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망각’이라고 전했다. 이에 뇌 과학자들 등 의학자문을 구하며 기억이 사라지는 과정에 대해 공부를 했다고 전했다.

2017 런던 국제 마임 페스티벌에서 전석 매진을 기록하고, 같은 해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최고의 화제작으로 주목 받은 ‘네이처 오브 포겟팅’은 18일까지 우란2경에서 공연되며 7번 공연 모두 전석 매진되는 쾌거를 낳기도 했다. 이번 공연은 연출 및 안무가이자 배우인 기욤 피지와 작곡가 알렉스 저드(Alex Judd)를 비롯한 ‘씨어터 리’(Theatre Re)의 배우들과 스태프가 내한하여, 아시아 초연 무대로 한국 관객들과 만났다.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연극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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