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캐피탈 대니, “고통은 잠시지만 위대함은 영원하다”

입력 2017-04-21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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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에서 온 대니는 최고의 선수는 아니었지만 최고를 향한 노력에서는 최고로 기억될 것이다. 사진제공 | 현대캐피탈

11일 천안에 위치한 현대캐피탈의 복합 베이스캠프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이하 캐슬)’로 가는 길은 하얀색 벚꽃 물결로 일렁였다. 벚꽃의 아름다움은 역설적으로 그 찬란함의 순간이 지극히 짧은, ‘유한성’에 있다. 어쩌면 우리들의 길지 않은 인생에서 찰나의 ‘화양연화’를 느낄 수 있었다면, ‘가치 있는 삶이었다’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농구만화 ‘슬램덩크’의 주인공 강백호는 부상을 불사하고 경기를 뛴다. 말리는 감독에게 강백호는 말한다. “감독님은 인생 최고의 순간이 있었나요? 저는 지금입니다.”

현대캐피탈 외국인선수 대니(30)를 떠올리면, 벚꽃과 슬램덩크의 이미지가 겹친다. 현대캐피탈의 2016~2017시즌 V리그 우승은 이 크로아티아 출신 선수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두 차례나 발목이 돌아가는 부상을 입었음에도 끝까지 뛴 대니를 통해 우리는 ‘최고의 용병이 아닌 최선의 외국인선수’를 목격했다.

현대캐피탈 대니. 사진제공|현대캐피탈



●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그렇게 뛰었을 것”

-발목 상태는 어떤가?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다. 점프가 아직 안 될 뿐, 부기는 빠졌고 걸을 때 통증도 없다, (완쾌 후에도) 발목 보호대를 착용하고 뛰어야 될 것 같다.”


-발목이 돌아갈 때, 고통이 엄청나다고 하던데.

“그런 중요한 경기(3일 챔피언결정전 5차전)에서는 통증에 대한 감각을 꺼놓는다. (그럼에도 끝까지 뛴 데에는) ‘정말 수호천사가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은 든다.”


-솔직히 말해 이기든, 지든 그 경기를 끝으로 현대캐피탈과 계약이 종료된다. 몸이 더 소중했을 것 같은데?

“그런 상황에서 ‘못 하겠다’, ‘병원가야겠다’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평소 나의 신념은 ‘200%의 노력을 하자’는 것이다. 나 자신보다 팀을 위할 상황이었다. 내가 원해서 참고 뛴 것이고, 결과도 좋았다. (부상이 지속되는) 지금 이 상황에 대해 전혀 불행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갈 곳 없을 때 불러준 현대캐피탈에 대한 고마움이 작용했나?

“당연히 감사한 마음이 있다. 다만 처음부터 합류했든, 중간에 왔든 같은 자세로 했을 것이다. (대체선수로서) 한국에 온지 3달쯤 됐는데 팀원들은 가족처럼 대해줬고, 팬들의 열성적 응원 덕분에 집에서 지내다 가는 기분이다. 정태영 구단주님, 신현석 단장님, 스태프, 최태웅 감독님, 코치님 모두 너무 잘 대해줬다.”

대니는 챔피언결정전이 끝났음에도 발목 재활을 돕는 조준희 트레이너(오른쪽)를 향한 고마움을 빠뜨리지 않았다. 사진제공 | 현대캐피탈



● “현대캐피탈은 WOW!”

-어떻게 배구를 시작했나?


“13살 때 처음 친구의 권유로 갔는데 해보니까 잘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나중에 자그레브(크로아티아 수도)의 학교에 스카우트 되어서 제대로 배구를 시작했다.”


-해외리그는 어디를 뛰었나?

“이탈리아, 쿠웨이트, 그리스, 스페인, 튀니지 그리고 한국.”


-이국에서 뛰면 외롭지 않나?

“(잠시 생각하더니) 다른 곳에서는 가족이 없어서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가족이 동반해) 전혀 그렇지 않았다. 캐슬 주방에서 일하는 분들은 나를 위해 크로아티아 요리를 따로 배워 만들어준 적도 있었다. 16살 때 처음 배구 시작한 이래 14년이 지났다. 이제는 좀 익숙해졌다.”


-다른 나라에서도 우승을 해본 적 있었나?

“그렇다. 쿠웨이트, 스페인 등에서 컵 대회 우승은 있었다. 그러나 리그 챔피언이 된 경험은 처음이다.”


-소속팀 없이 2개월을 보냈다고 들었다. 현대캐피탈에서 제의가 왔을 때 그 당시 기분은?

“와우(WOW). (2016년 5월) 처음 (한국에) 트라이아웃에 참가했을 때, 나는 200%를 보여줬는데 다른 선수들을 지명하는 것을 보고 실망했었다. 그래서 현대캐피탈에서 스카우트 제안이 왔을 때, 정말 기뻤다. 끝이 좋아서 더 기쁘다.”


-겪어보니 어떤 팀이던가?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할 수 있을만한 환경을 갖춘 팀이다. 이 팀에 오면 다른 것들은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하나부터 열까지 배구에만 집중할 수 있다.”

현대캐피탈 대니. 스포츠동아DB



● “고통은 사람을 성장시킨다.”

-언제 가장 힘들었나?


“특정한 상황을 꼽을 순 없다. 경기가 안 풀리거나 지면 항상 힘들다. 그럴 때 걱정에 얽매이지 않고, 나와 팀의 목표를 되새겼기 때문에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다.”


-밤에 혼자 연습한 적도 많았다고 들었다.

“팀에 합류한 것이 늦었으니까 팀원과의 조직적 플레이도 있겠지만 스스로 보강하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고 느꼈다. 감독님을 찾아가 ‘해도 되겠느냐’고 물었을 때, 감독님이 선뜻 나와서 같이 봐줬다.”


-그래도 자주 빠졌다. 웜업존에 나가 있을 때 기분을 어떻게 다스렸나?

“배구는 개인운동이 아니라 팀 스포츠다. 내가 팀원으로서 코트 안에 있든, 밖에 있든, 팀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성격 자체가 포기를 모르는 것 같다. 원래 그랬나? 노력해 얻어진 것인가?

“기질이 더 작용하는 것 같다. 나는 그런 포기하지 않는 기질이 마음에 든다. 당연히 선수로서 건강을 신경 쓴다. 그러나 목표가 있다면 그것을 (몸보다) 우선시하는 것이 우선순위다. 챔피언결정전에서도 쟁취하기 위해 노력했고, 달성의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스스로를 다독이는 ‘자기주문’이 있나?

“그런 상황일수록 더 자신감을 갖고, 더 강한 생각을 한다. 크로아티아 격언 중에, (스마트폰을 한참 찾아보더니) ‘죽지 않을 만큼의 고통은 사람을 더 성장시킨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고통은 잠시지만 위대함은 영원하다’는 문장을 좋아한다. 항상 외우고 다닌다.”

현대캐피탈 대니. 스포츠동아DB



● “챔피언결정전은 배구인생 최고의 순간”

-최태웅 감독은 어떤 사람 같나?


“처음 도착한 날부터 도움을 줬다. 이 팀에 있는 동안, 편하게 느끼도록 배려해줘 감사하다. 선수들과 관계 설정에서 대화를 많이 하고, 관계를 중요시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 감독 2년차로 아는데 경험이 쌓이면 더 좋은 감독이 될 것 같다. 감독님이 선수 시절 세터로서 이름을 날린 것으로 알고 있는데 훈련 때, 원 포인트 레슨을 들으며 경험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감독님이 시작한 한국배구(스피드배구)가 결과(우승)로서 나타나 멋있다. 나를 선택해줘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고마운 마음이다.”


-우승 직후 대니도 울었나?

“울었다. 사실은 경기 도중에도 울었다. 발목이 접질리고 타임아웃 때 벤치로 들어갔을 때였다. 감독님이 ‘한국선수의 투지를 외국인인 너한테서 봤다’는 얘기를 건넸다. 그 순간 (감정이 복받쳐 눈물이 나서)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못 들었다. 아파서 그런 것이 아니라 상황이 그렇게 (감정을 고양시키게) 만든 것 같다.”


-챔피언십시리즈 4,5차전은 대니 인생 최고의 경기로 봐도 되나?

“그렇다. 나의 베스트 게임 중의 하나였다.”


-현대캐피탈이 감사의 표시로 한국 여행을 돕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디로 가나?

“(통역을 가리키더니) 네가 더 잘 알지 않느냐?(웃음) 제주도, 부산, 서울…”

대니가 이날 서울에 일정이 있어서 인터뷰를 더 오래 끌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듣고 싶었던 말은 거의 다 들은 것 같아 얘기를 끝내려 했는데 대니가 “전할 말이 있다”고 했다. 어쩌면 현실적 상황에서 현대캐피탈과의 결별을 예감하고 있었을 대니가 미리 보내는 이별 메시지처럼 들렸다. 그 고백을 건네는 대니의 눈시울은 다시 한번 붉어졌다.

“현대캐피탈 팬 여러분은 최고였습니다. 코트 바깥에서 7번째 선수로 뛰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팬 분들이 보내주신 편지, 코트에서 보내준 격려와 응원은 저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저희 팀이 챔피언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보르부아(크로아티아어로 힘내라)’를 외쳐주시는 팬들의 함성을 들으면 정말 힘이 났습니다. 평생 간직하겠습니다.”

천안 |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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