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 피플] 전남 현영민 베테랑의 절박한 변신…2연승? 이제 시작이다!

입력 2017-04-24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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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 5연패에 빠졌던 전남은 마지막 승부수로 ‘변화’를 택했다. 베테랑 측면 수비수 현영민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전진시킨 것은 그야말로 ‘신의 한수’였다.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수비형MF 과감한 변화, 울산전 완벽 압박
전남 상승세 급반전…“제대로 분위기 탔다”


며칠 동안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장면 하나하나가 떠올랐다. 좋은 기억보다는 가슴 쓰라린 순간이 그의 머리를 계속 스쳤다.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좋지 않은 결과로 끝난 경기들을 철저히 복기했다.

K리그 클래식(1부리그) 전남 드래곤즈의 베테랑 수비수 현영민(38)이 그랬다. 기대가 컸던 올 시즌, 전남은 개막 5연패의 늪에 빠졌다. 최대 승점 15를 확보할 수 있었음에도 전남은 빈손에 그쳤다. 일방적 열세에 몰린 완패도 없었고, 내용이 딱히 나쁜 것도 아니라 더 고민스러웠다. 딱히 문제가 보이지 않았기에 훨씬 괴로웠다. 여기서 탈출구는 하나, 결국 ‘변화’였다. 고민하고 또 고민하던 전남 노상래 감독은 붙박이 왼쪽 풀백으로 뛰던 고참을 호출했다. “혹시 수비형 미드필더를 소화할 수 있겠어? 솔직히 말해줬으면 좋겠다.”

프로 데뷔 이후 줄곧 측면 수비수로 활약해온 현영민은 전남의 전술변화에 따라 사이드백을 맡곤 했는데, 여러모로 부담이 많았다. 워낙 철저히 몸을 관리한 만큼 체력적 어려움은 없었으나, 문제는 상대의 집중적 견제가 이뤄진다는 점이었다. 1∼2명은 버텨도 3∼4명이 몰려들어 에워쌀 때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9일 대구FC에 1-2로 져 개막 5연패에 빠진 노 감독은 공식 인터뷰에서 “우리 선수들은 정말 사력을 다했다. 모든 실책은 감독에게 있다”고 말했다. “아직은 ‘(사퇴할) 때’가 아니다”는 단서를 덧붙이긴 했어도, 자진사퇴를 염두에 둔 ‘배수의 진’을 쳤음은 분명했다. 어렵게 말을 꺼낸 스승에게 현영민은 분명한 대답을 했다. “하겠습니다. 문제없습니다.”

마음과 마음이 통한 대화를 나눈 시점이 13일이었다. 역시 시즌 첫 승을 신고하지 못하고 있던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외나무다리 승부’를 이틀 앞둔 때였다. 그렇다고 걱정이 전혀 없진 않았다. 솔직히 현영민은 K리그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실전을 소화해본 적이 없었다. 풀백으로 뛰다가 상대 공격 루트에 따라 위치를 살짝 바꾼 적은 있었어도, 아예 수비형 미드필더로 90분 동안 그라운드를 누빈 기억이 없다.

전남 현영민(가운데). 사진제공|전남 드래곤즈


그런데도 누구보다 무거운 책임의식을 지닌 현영민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수비라인 앞에서 1차 저지선으로 뛰는 후배들에게 핵심 포인트를 묻기도 했고, 동영상 등으로 홀로 연구하며 패턴을 익혔다. 효과는 대단했다. 짧은 시간 동안 독학으로 수비형 미드필더의 모든 것을 마스터한 그는 인천의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절대적 위기상황에서 노 감독이 내놓은 궁여지책이었지만, 현영민을 전진시킨 것은 결과적으로 ‘신의 한수’가 됐다. 전남은 3-1 승리를 거두고 개막 5연패에서 벗어났다.

22일 광양전용경기장에서 벌어진 울산현대와의 클래식 7라운드 홈경기는 정말 엄청났다. 백전노장의 리딩은 정확하고 완벽했다. 포백 수비진 앞에 선 현영민은 울산 공격진을 확실히 지웠다. 자신이 개막 초반 5경기에서 겪었던 어려움을 고스란히 되갚았다. 압박의 강도와 리듬 조율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팀도 5-0 대승으로 2연승을 신고하며 중위권 도약의 발판을 확보했다.

“동계훈련을 시작하며 (스포츠동아와) 인터뷰를 했는데, ‘사상 처음으로 상위 스플릿(1∼6위)에 진입한 지난 시즌을 함께한 대부분의 동료들이 남아있는 만큼 올해는 슬로 스타터의 오명을 씻어내겠다’고 했다. 초반부터 강하게 치고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연패가 계속돼 정말 당황했다”던 현영민은 “아직 부족한 면이 많이 보인다. 계속 보완하고 채워야 한다. 내가 제몫을 못해 잃어버린 승점이 많다. 이제 제대로 분위기를 탔으니, 훨씬 안정감 있는 레이스를 이어갈 수 있을 것 같다”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바닥을 찍고 상승세로 급반전한 전남의 진짜 시즌은 이제부터인지 모른다. 팀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베테랑 현영민이 있기에 더욱 든든한 전남이다.


● 현영민


▲생년월일=1979년 12월 25일

▲키·몸무게=180cm·76kg

▲포지션=수비수(DF)

▲출신교=경희고∼건국대

▲프로 경력=울산현대(2002∼2009년), FC서울(2010∼2012년), 성남일화(현 성남FC·2013년), 전남 드래곤즈(2014년∼현재)

▲K리그 통산 성적=411경기 9골 54도움 ▲국가대표 경력=U-23 대표(2002부산아시안게임), A대표(A매치 15회)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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