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일 축구협 부회장 “한일전 앞두고 하도 긴장돼 화장실 4~5번씩 들락날락”

입력 2017-12-14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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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대표팀 선수 시절 최영일-미우라 가즈요시(오른쪽).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 최영일 축구협 부회장의 한일전 추억

왕년 미우라 족쇄맨…축구행정가로 변신
E-1 챔피언십 선수단장으로 대표팀 지휘
“일반경기 부담이 100이면 한일전은 300”


1990년대 축구 한일전을 기억하는 올드팬들에겐 최영일(51)이라는 이름은 낯설지가 않다. 상대 에이스를 철저하게 마크해 숨통을 조이는 철벽수비를 펼친 이가 바로 최영일이었다. 그의 진가가 발휘된 무대는 한일전이었다. 특히 축구팬들 뇌리에 깊숙이 남아있는 1997년 도쿄대첩(1998프랑스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순간이다. 당시 최영일은 일본의 대표 공격수 미우라 가즈요시(50) 전담마크맨으로 투입돼 그를 꽁꽁 묵었다.

덕분에 한국은 적지에서 통쾌한 2-1 역전승을 거두고 역사의 한 페이지를 멋지게 장식했다. 20년 전 철벽 수비수는 이제 50대 중년이 돼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다. 지난달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에 선임된 것이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모교 동아대에서 사령탑을 맡았던 최 부회장은 이제 행정가로서 축구인생의 새로운 길을 걷게 됐다. 첫 발은 현재 일본 도쿄에서 열리고 있는 ‘2017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이다. 이번 대회에서 단장을 맡아 남녀대표팀을 앞에서 이끌고 있다.

13일 현지에서 만난 최 부회장은 예상대로 눈앞으로 다가온 한일전 이야기부터 꺼내들었다. “긴장감이 흐른다. 국민들의 관심 역시 높다. 다른 어떤 경기와도 비교할 수 없다. 게다가 이번 경기는 토요일 저녁에 TV를 통해 생중계된다. 절대로 물러설 수 없다.”

대한축구협회 최영일 부회장.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한일전의 추억을 묻자 이야기 한 보따리가 나왔다. “그때는 태극마크를 향한 애절함이 있었다. 특히 한일전은 그 부담감이 더했다. 경기를 앞두고는 화장실을 4∼5번씩 가기도 했다. 적지에서 치르는 한일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상대 관중이 우리를 압도한다. 정신력을 다잡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 옛날엔 한일전에서 지면 대한해협을 건너오지 말라는 이야기도 있지 않았는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나이 서른에 태극마크를 달았기 때문일까. 자부심이 짙게 묻어나보였다.

“물론 이러한 부담감은 대표팀으로서 안고 가야할 몫이다. 일반경기의 스트레스가 100이라면 한일전은 300이다. 이 같은 요소들을 극복해야 한일전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 수비수였던 나는 ‘너 죽고 나 죽자’라는 마음 하나로 그라운드에 나갔다.”

1997년 도쿄대첩에서 승리 후 환호하는 최영일(맨 오른쪽).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그러나 추억은 어디까지나 추억일 뿐. 20년이 흐른 지금은 정신력으로 경기 전체를 풀어나갈 수 없다.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를 냉정하게 분석하지 않으면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일본의 전력을 묻자 최 부회장은 “해볼만하다”며 단호하게 말했다. “이번 대회 상대국 단장들과 이야기를 해보니 한국에 경계심을 갖고 있더라. 이는 곧 경기에서도 심리적으로 밀리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다만 우리로선 현장 분위기에 주눅 들지 않아야한다. 한 번 매듭이 잘못 꼬이게 되면 힘들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과거를 회상하며 열변을 토하던 그도 최근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는 대표팀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사실 오늘 이야기한 내용들을 선수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그런데 차마 하지 못했다. 모두에게 부담이 되지 않겠는가(웃음).”

도쿄 | 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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