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여론 편승한 김보름 비난에 대한 아쉬움

입력 2018-02-23 1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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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름.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2018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대표팀의 팀워크 논란이 처음 발생한 19일로부터 나흘이 지났다. 대표팀은 이날 강릉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준준결승에서 7위(3분03초76)를 기록했는데, 레이스 막판에 김보름(25·강원도청)과 박지우(20·한국체대)가 동료 노선영(29·콜핑팀)을 도와주지 않고 먼저 골인했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공분했다. 여기에 경기 직후 방송인터뷰에 응한 김보름과 박지우가 노선영의 체력 저하를 탓하는 듯한 발언을 해 논란이 일파만파 번진 것이다.

이 사건 이후 김보름은 한마디로 ‘욕받이’가 됐다. 20일 긴급 기자회견에 나서 사건을 해명했지만, 오히려 비난 여론에 더욱 불이 붙었다. 자연스럽게 노선영 동정론은 확산했다. 21일 7~8위 결정전에서도 관중은 노선영이 소개될 때 환호를 보냈지만, 김보름과 박지우에게는 침묵했다.

준준결승 당시 레이스와 김보름, 박지우의 인터뷰 내용이 논란의 여지를 남긴 것은 맞다. 그러나 이들은 전후 사정을 모른 채 브라운관을 통해 본 장면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있다. 한마디로 보고 싶은 것만 본 것이다. 그러면서 김보름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당장 24일 주종목인 매스스타트 출전을 앞둔 선수에게 말이다.

냉정히 말해 현시점에서 누구의 잘못인지는 가려지지 않은 게 맞다. 당사자들 외에는 모르는 일들이 한둘이 아닌데도 특정 장면에 매몰돼 비난여론이 일고 있는 것이다. 물론 탄탄한 조직력을 중시하는 팀추월 종목에서 팀워크 논란을 일으킨 것은 반성해야 하지만, 이것 또한 김보름의 잘못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김보름과 박지우의 인터뷰 내용에 대한 평가도 주관적이다. 맞고 틀리고를 가늠할 기준도 없다.

게다가 여론이 ‘피해자’라고 단정한 노선영은 입을 열지 않고 있다. 한 언론사와 인터뷰를 통해 20일 기자회견에 참석한 스피드스케이팅대표팀 백철기 감독과 김보름이 밝힌 전략과 팀 분위기에 대해 반박했을 뿐이다. 심지어 노선영은 이날 기자회견에도 불참 의사를 밝혔다. 한 관계자는 최초 “노선영이 ‘나는 할 말이 없다’는 이유로 불참을 통보했다”고 귀띔했는데, 정작 백 감독은 “몸살이 심해서 기자회견에 참석하기 어렵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게다가 준준결승에서 자신이 세 번째 주자로 달린 전략에 대해서도 “한 번도 연습해보지 않은 방식”이라고 반박했지만, 실제로 2017년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대회(강릉) 팀추월에서 노선영은 마지막 주자로 달렸다.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 특히 삿포로아시안게임에선 2000m 구간부터 쭉 세 번째 주자로 달렸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노선영도 해명할 의무가 있다. 당당하다면 전면에 나서는 게 맞다.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대표팀.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진실도 밝혀지지 않았는데, 무조건 김보름에게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는 이들을 보면 씁쓸하기만 하다. 게다가 김보름은 올림픽 첫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매스스타트에서 초대 우승에 도전하는 입장이다. 지금의 비난 여론에 따른 심리적인 영향이 없을 리 없다. 기자가 백 감독에게 ‘김보름과 박지우가 매스스타트에 정상적으로 출전할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심리적으로 많이 불안하다. 좋은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힘을 주셔야 한다”고 밝힌 이유도 이들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진실공방을 벌이거나 전후 사정을 모르고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분할 때가 아니다. 경기를 남겨둔 선수들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응원해야 할 시기다. 평창올림픽의 여러 문제점을 지적하는 언론에 “올림픽을 망칠 셈이냐”고 비난하던 이들이 선수들의 올림픽을 망치고 있는 아이러니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는데, 아쉬울 따름이다. 현장에서 만난 한 외국 취재진의 “팀추월 대표팀의 팀워크 논란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달라”는 요청에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이들이 언급한 것은 김보름과 박지우를 비난한 댓글들이었다. 김보름은 24일 매스스타트에 출격한다. 장소는 그가 지난해 세계선수권 이 종목 우승을 차지하고 환호했던 강릉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이다.

강릉 │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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