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레전드’ 남현희 “태극마크는 국위선양, 내 몸은 국가의 몸”

입력 2018-08-17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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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펜싱대표팀 남현희. 진천|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2000시드니올림픽 펜싱 남자 플뢰레에서 김영호(현 로러스 펜싱클럽 총감독)가 금메달을 획득하기 전까지, 한국은 펜싱 불모지에 가까웠다. 김영호는 한국 펜싱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린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남현희(37·성남시청)는 그 뒤를 이어 한국 펜싱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했고, 지금도 변함없는 기량을 뽐내며 후배들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AG)부터 2018자카르타-팔렘방AG까지 5연속 AG 출전의 기록은 남현희의 꾸준함을 보여준 한 단면이다. 단순히 출전에 그치지 않고, 이전 4개 대회에서 6개의 금메달(개인전 2개·단체전 4개)과 한 개의 동메달(개인전)을 거머쥐며 아시아 최고의 검객으로 우뚝 섰다.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몇 번이나 선수생활을 포기할 뻔한 위기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며 다시 일어섰다. 그렇게 수확한 국제대회 메달만 무려 98개다. 대한펜싱협회 관계자는 “남현희가 엄청난 연습벌레다.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번 AG 여자 플뢰레 개인전과 단체전에 모두 출전하는 남현희는 15일 결전지인 자카르타에 도착했다. 출국에 앞서 그를 만나 이번 대회를 앞둔 각오를 들었다.


● 피할 수 없었던 무릎수술, 그리고 35일 만의 복귀


사실 남현희는 이번 AG에 출전하는 자체만으로 박수 받아 마땅하다. 그는 지난 4월 오른 무릎 반월판 연골이 끊어지는 큰 부상을 당해 수술대에 올랐다. 무릎을 굽히는 동작이 많은 종목의 특성상, 연골 부상은 37세의 남현희에게 감당하기 힘든 시련이었을 터다. “반월판의 연골이 다 끊어졌다. 무릎이 붓고 피가 고여 있었다.” 남현희의 회상이다. 다행히 빠르게 컨디션을 되찾은 덕분에 수술 후 35일만인 6월 아시아선수권대회에 나설 수 있었다. 피스트에 오른 것 자체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지만, 남현희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의사 선생님께서 6월 아시아선수권에선 성적을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랭킹포인트가 걸린 대회라 출전은 해야 했다.”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음에도 남현희가 거둔 성적은 개인전 동메달, 단체전 금메달이었다. 그는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선수생활을 2년은 더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통증도 없었다. 아시아선수권에선 개인전 동메달을 확보한 뒤에는 크게 무리하지 않았다. 이 대회를 통해 AG 메달에 대한 희망을 키웠다”고 밝혔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 당시 남현희. 스포츠동아DB


● “끊임없는 목표설정? 동기부여를 위해!”

남현희가 올림픽과 AG, 아시아선수권 등 9개 국제대회에서 현재까지 획득한 메달은 무려 98개에 달한다. 그의 펜싱 인생에서 이룰 것은 다 이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혹자는 지금까지 현역 생활을 지속 중인 남현희에게 “욕심이 많다”고 한다. 편견과도 싸워야 했다. 무릎 수술을 받고 대표팀에 복귀한 뒤에는 “이제는 안 된다”는 시선에 직면했다. 2013년 출산 후에도 그랬다.

그러나 남현희는 그때마다 오히려 더 당당하게 맞섰다. 처음 펜싱을 시작했을 때도 “작은 키(155㎝) 때문에 롱런하지 못할 것”이란 편견에 맞서 이겨냈던 남현희다. ‘더 당당하게 행동하자. 주변 얘기에 상심하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도 그의 목표는 단 하나다.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최선을 다해서 마무리 잘하고 싶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목표를 설정하는 이유도 바로 동기부여를 위해서다.

이번 AG에선 개인전과 단체전 모두 입상해 국제대회 메달 100개를 채우는 게 목표다. “동기부여를 위해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스스로 동기부여를 찾으려 한다. 내 마음을 다잡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번 AG에서 100개의 메달을 채우면 정말 기쁠 것 같다.” 남현희의 진심이다.


● 남다른 태극마크 자부심

태극마크에 대한 남현희의 자부심은 남다르다. 단 한 번도 추천이 아닌, 선발전을 통해 합류했다는 자부심도 강하다. “태극마크는 국위선양이다. 내 몸은 나라의 몸이고, 지원을 받은 만큼 보답해야 한다.” 그의 말에는 큰 울림이 있었다. 1996애틀랜타올림픽부터 2012런던올림픽까지 5연속 출전해 6개의 금메달(개인·단체 각 3개)을 따낸 발렌티나 베잘리(이탈리아) 등 세계적인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까지, 그 시간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예전에는 유럽 선수들이 말도 섞지 않았다. 시간이 지난 뒤에야 ‘빠르고 경쾌한 펜싱이 눈에 띈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만약 국가대표가 아닌 개인으로 맞섰다면 자신감이 없었을 것이다. ‘나는 한국인이다. 내 뒤에 대한민국이 있다’는 생각을 하며 이겨낼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번 AG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피스트를 누빌 그의 동작 하나하나가 곧 역사가 될 것이다.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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