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 ‘자연인’ 신태용 “후회 없이 달린 소방수 4년…벤투, 꼭 성공하길”

입력 2018-09-14 05:30:00
프린트

한국축구가 급한 곳에는 언제든, 어느 곳이든 달려갔다. 그렇게 ‘소방수 감독’으로 4년이 흘렀다. 짧은 시간 동안 연령별 대표팀부터 A대표팀까지 지휘한 신태용 감독은 잠시 자연인으로 돌아갔다. 언젠가 현장에 돌아올 그는 느낌표를 찍기 위해 의미 있는 채움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동아일보DB

한국 축구가 2018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좌초 위기에 놓였던 지난해 7월, 대한축구협회는 ‘믿고 쓰는’ 소방수에게 SOS를 쳤다. 신태용(48) 감독이었다. 불과 한 달여 전까지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코리아 2018’을 이끈 사령탑은 흔쾌히 ‘독이 든 성배’를 받아들었다.

뭔가를 정비할 틈도 없이 대표팀을 꾸려 어렵게 통산 10회, 9회 연속 월드컵 본선진출을 달성했지만 그에게 돌아온 건 온갖 비난과 조롱이었다. 건전한 비판은 감내할 수 있었으나 ‘거스 히딩크(72·네덜란드) 감독 모셔오기’ 광풍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세상 어디도 멀쩡한 감독을 이유 없이 목을 치는 곳은 없다. 감독이 파리 목숨인 중동에서도 이렇게 경우 없이 내치진 않는다.

더욱이 정식 제안도 아니었다. 히딩크 측근이 자의적으로 뜻을 해석한 내용을 문자 메시지에 담아 협회 고위층에게 보낸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이었다.

이후 신 감독에게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명장에게 감독직을 내주지 않은’ 욕심쟁이 그리고 축구계 대표 비호감 적폐로 몰렸다. 그럼에도 모든 힘을 쏟았다. 월드컵 본선에서 아쉬움, 아픔이 있었지만 끝은 창대했다. 태극전사들은 대회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디펜딩 챔피언’ 독일을 2-0으로 꺾는 기적을 연출했다. 전쟁은 비록 패했지만 큰 전투를 이긴 한국은 큰 희망을 얻었다. 일각에선 그저 선수만의 힘으로 일군 업적으로 폄훼하나 코칭스태프의 철두철미한 노력과 간절함이 없었다면 단언컨대 ‘카잔의 기적’은 불가능했다.

신 감독은 계약기간이 만료된 8월 파울루 벤투(49·포르투갈) 감독에 대표팀 지휘권을 넘겨주고 물러났다.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 나설 23세 이하(U-23) 대표팀에 부임한 2015년을 시작으로 U-20대표팀을 거쳐 숨 가쁘게 달린 4년이 그렇게 막을 내렸다.

최근 경기도 분당의 카페에서 만난 신 전 감독은 “후회 없이 뛰었다. 소방수의 한계도 느껴봤으나 난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아픔은 전혀 없다. 굳이 기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벤투 감독이 잘할 것이다. 전임 감독으로, 한 명의 팬으로 열심히 대표팀을 응원하겠다. 벤투 감독의 대표팀은 잘될 것이고, 그래야 하는 사명이 있다”는 따스한 메시지도 빼놓지 않았다.

신태용 감독. 스포츠동아DB


-어떻게 지내고 있나.

“힘겨운 여정을 끝낸 뒤 아주 홀가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인도 만나고, 가족도 열심히 챙긴다. 모처럼 가장 노릇을 한다. 축구하는 아들(신재원·고려대)의 평범한 아빠로 즐겁게 살고 있다. 4년 동안 계속 비워내기만 했으니 지금은 충전이 필요하다. 선진축구 현장을 찾아야 하고, 공백기를 길게 가져가진 않겠지만 당분간 휴식하고 채우는 데 집중하겠다.”


-지난 4년을 되돌아본다면.

“내 축구인생의 전성기? 선수가 아닌 지도자로서 정점을 찍었다. 현역 때 월드컵은 나가지 못했지만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수많은 좋은 선수들과 함께 생활했다. 행복했다. 많이 배웠고, 느꼈다. 지난 4년이 앞으로의 인생에 큰 도움이 되리라 확신한다.”


-무엇을 배웠는지.

“U-20, U-23 연령별 대표팀에 이어 국가대표 톱클래스 선수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팀 매니지먼트를 체득했다. 비정기적으로 소집하는 패턴에서 어떻게 훈련하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짧은 시간에 팀의 방향을 무슨 방식으로 주입시킬지를 공부했다. 클럽과 다른 노하우가 생겼다.”


-클럽(성남 일화)과 대표팀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클럽은 뭔가 만드는 과정이 길다. 시간도 많이 주어진다. 선수가 없으면 조직력으로 승부하면 된다. 얼마든지 대체선수를 찾을 수 있다. 심리적인 압박도 덜하다. 그런데 대표팀은 금세 비판으로 돌아온다. 심적 압박이 대단했다. 고민을 오래 안고 가는 타입이 아니기에 망정이지 쌓아두면 큰일 난다. 월드컵을 준비할 때도 염두에 둔 플랜A가 연이은 부상이탈로 불가능해졌다.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심리적으로 위축됐고 쫓긴 면도 있었다. 이젠 변수를 극복하는 역량도 생겼다.”


-공교롭게도 모든 대표팀에서 ‘소방수’로 투입됐다.

“정말 운이 좋은 놈이었다. 물론 노력도 많이 했다. 협회가 언제든 날 불러줄 수 있도록 그 자리에서는 최선을 다했다. 크게 성공한 인생은 아니었지만 ‘절반쯤 성공한’ ‘그럭저럭 괜찮았던’ 지도자라고 생각한다. ‘태용이, 너 열심히 했다’라고 자신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소방수라서 놓친 것도 많다.

“결국 시간이다. A매치를 치를 때마다 ‘조금만 더 여유가 있었더라면’하는 아쉬움이 컸다. 더욱이 아시아 예선도 거치지 못했다. 철학도 방향도 제대로 입힐 여유가 없었다. 충분히 선수들을 파악하고 살필 여력이 있었다면 조금은 더 강한 팀으로 월드컵에 나가지 않았을까 싶다. 이미 다 지나간 이야기지만….”

신태용 감독. 스포츠동아DB


-그래도 ‘카잔의 기적’은 상상도 못 했다.

“솔직히 나도 많이 놀랐다. 다만 그냥 운이 좋았다고는 할 수 없다. 우리의 분석과 대비, 상대의 자만이 시너지를 냈다. 독일이 월드컵을 앞두고, 사우디아라비아 평가전을 치를 때 아시아를 깔본다는 인상을 받았다. 가뿐히 너희쯤은 이길 수 있다는 느낌? 자신이 지나치면 자만이 된다. 아니나 다를까. 독일은 우리의 분석과 100% 일치했다. 바뀐 게 전혀 없었고 변화도 주지 않았다. 선수들이 전반 20분쯤 지나면서 ‘해볼 만 하다’는 생각을 했고, 후반전에는 ‘이길 수 있다’고 확신했다고 하더라. 1%의 기적이 일어났다. 너무 고맙고 감사한다.”

-감독 교체과정에 대한 서운함은 없나?

“좀 더 빨리 (이별) 통보를 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서운함은 없다. 협회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회 김판곤(49) 위원장이 많은 생각을 하고 최선의 판단을 했을 것이다. 뚜렷한 방향이 있으니 벤투 감독을 데려왔다고 본다.”


-벤투 감독의 선임에 대한 생각은 어떤지
.

“정말 모두가 열심히 도와야 한다. 벤투 감독은 새로운 환경과 문화에 적응하고, 모르는 선수들을 파악해야 한다. 주변이 발 벗고 도움을 줘야 한다. 정말 힘을 얻고, 최대한 가벼운 마음으로 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 대표팀은 국민의 사랑과 애정을 먹고 성장한다. 자신 있게 위대하고 당당하게 전진해주길 바란다. 우리가 세계적인 강호로 도약하길 희망한다. 그래야만 하고 해낼 수 있다.”


-한국축구가 어떻게 바뀌었으면 하나?

“어릴 때 기술훈련을 받아야 한다. 우린 진학 시스템으로 조직력에 초점을 둔다. 조직으로 성적을 낼 수 있지만 선수 개개인의 성장은 어렵다. 기술이 없으면 창의성도 떨어진다. 전 포지션에 걸쳐 어느 순간 특출한 선수가 많이 보이지 않는다. 번뜩이는 선수를 우리가 육성시켜야 한다.”

성남|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기자스페셜

이전 다음

뉴스스탠드

최신화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