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 여자부 개막특집 ② 현대건설 전력 분석

입력 2018-10-16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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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착함, 그리고 냉정함. 현대건설 이도희 감독을 상징하는 단어다. 이 감독은 현대건설에 위계질서를 심으며 팀컬러를 바꿔냈다. 작전 타임 중 선수단에게 뭔가를 주문 중인 이 감독(가운데). 사진제공|KOVO

현대건설은 최근 일본 V리그 토요타차체, 도로공사와의 연습경기에서 완패를 당했다. 양효진이 뛰지 못했고 미국 국적의 베키 페리가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도로공사전에는 무릎 이상으로 뛰지도 못했다. 경기 뒤 심판들이 “걱정이 많겠다”고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도희 감독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했겠지만 겉으로는 알 수 없었다. 이런 침착함과 냉정함이 현대건설에는 필요했다. 이도희 감독은 “선수들이 뒤에서 나를 마녀라고 부를 것”이라고 웃었다.

첫 상견례 때 감독은 선수들에게 팀의 원칙을 말했다. “연습 분위기를 흩뜨리지 말라. 아무리 선수가 유명하고 지도자는 무명이라도 코칭스태프는 가르치는 사람이다. 그 선을 넘지 말라. 대신 개인생활은 원하는 대로 하라.”

그동안 현대건설은 이런 위계질서가 없는 팀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선수와 스태프 사이에 프런트가 끼어들어 문제가 더 복잡했다. 베테랑이 구단에 조르르 달려가 팀 내부의 불만을 털어놓고 스태프는 감독을 제쳐놓고 프런트를 먼저 만났다. 이도희 감독은 부임 이후 이 부분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단장~부단장~사무국장의 자연스런 교체를 통해 과거의 관행은 사라졌다. 그 결과가 지난 시즌 3위의 성적이었다. 지금은 감독과 주장이 프런트와 접촉하는 유일한 공식창구다. 개인적인 대화와 면담, 뒷담화는 사라졌다.

현대건설 이도희 감독. 사진제공|KOVO


● 감독 이도희의 냉정과 열정 사이

이도희 감독은 훈련 때도 냉정했다. “너희가 연봉을 받는 이유는 배구를 하기 때문이다. 아프다고 웨이트 장에서 뒹굴면서 놀라고 돈을 주는 것은 아니다. 아프면 훈련을 하지 말고 쉬어라. 하지만 훈련하고 싶다면 투덜대지 말고 열심히 하라”고 지시했다. 대신 선수들의 몸 상태와 체력, 나이에 따라 충분한 배려를 하고 관리도 해준다. 휴식이 필요한 양효진은 국가대표에서 돌아오면 무조건 휴식이다. “양효진은 쉬면 더 잘하는 선수”라고 했다.

반대로 황연주에게는 “이제부터 네 이름을 지키기 위한 배구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훈련 때 더 열심히 준비하라”면서 땀을 요구했다. V리그 최초의 5000득점을 돌파한 기록의 여왕 황연주는 올해가 15번째 시즌이다. 여전히 싱싱하고 점프도 가볍다. 요즘에는 어깨와 무릎에 테이핑 등도 하지 않는다. 그만큼 철저한 관리 속에서 아프지 않고 꾸준히 기량을 유지하고 있다. 이도희 감독은 황연주의 적응력과 마음가짐을 대견해 한다. KOVO 때 2년차 김다인의 들쭉날쭉한 세트를 어떻게 해서든지 공격으로 연결하면서 애를 먹었지만 전혀 불평하지 않았다. 미안해하는 감독에게 “그러다보면 기술이 늘겠지요”라고 했다. 그런 긍정적인 마음이 황연주를 버티게 하는 힘이다. 이제 황연주는 고작 32살에서 33살로 넘어간다.

현대건설 김연견(왼쪽)-황민경. 사진|KOVO·스포츠동아DB


● 배구가 흥미로워진 김연견과 황민경의 헌신이 시즌성공의 열쇠

현대건설은 그동안 백오더가 기본패턴이었지만 이번 시즌에는 프론트오더로 바뀐다. 백오더는 양쪽 사이드의 공격을 강화해주고 프런트오더는 서브리시브를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 “이렇게 해야 리베로가 가운데서 서브리시브를 더 많이 한다”고 감독은 설명했다. 리베로 김연견의 성장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때 주위로부터 상처를 받아 배구를 포기하려던 그는 요즘 배구가 재미있어졌다. 감독은 “요즘 왜 이렇게 배구가 어렵냐고 물어볼 정도다. 예전에는 빨리 선수생활을 그만두겠다고 하더니 요즘 그런 말이 사라졌다”고 했다. 아직 베키의 능력이 완전하게 발휘되지 않았기에 김연견과 황민경의 리시브 범위가 더 넓어질 가능성도 있다. 두 명의 잘 받아주는 능력과 설거지 역할에 팀의 성적이 좌우될 가능성도 크다.


● 이다영의 눈물과 베키와의 신경전

누구나 인정하는 한국배구의 미래 이다영은 비시즌 때 좌절을 겪었다. 대표팀에 차출됐지만 막상 코트에서의 경험은 적었다. 그래서인지 “작년에는 배구가 재미있었는데 요즘에는 배구에 질렸다”고 했다. 마음고생을 하고 팀에 복귀한 이다영을 감독은 달랬다. “아직 너는 완성형 선수가 아니다. 앞으로 3년은 더 배워야 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먼저 우리 선수가 보이고 다음에는 상대 블로킹이 보이고 마지막에는 상대 수비수가 보일 것이다. 그래서 3시즌이다. 절대로 자신감이 떨어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코트에서 신나게 놀아야 흥이 나는 이다영은 지난 시즌 라커에서 감독에게 호되게 혼나고 눈물 한바가지를 쏟았다. 시즌 준비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몇 차례 감독 방에 불려가 눈물을 흘렸다. 현대건설 대부분의 선수도 이런 과정을 거쳐 감독과 하나가 되고 공동의 목표를 위해 움직이는 원팀이 됐다.

김세영의 FA이적으로 팀의 장점이었던 높이가 사라진 것은 뼈아프다. 보상선수 정시영으로 메워보겠지만 난 자리가 아쉽다. 백업멤버도 다른 팀에 비하면 떨어진다. 그래서 감독은 비주전들의 기량을 업그레이드 하는데 많은 신경을 썼다. 주전세터가 대표팀에 오래 차출되는 바람에 손발을 맞춰볼 시간도 모자랐다. 아시안게임을 마치고 이다영이 돌아온 뒤부터 본격적인 시즌 준비에 들어갔다.

새 외국인선수 베키는 감독과 한 달여 동안 신경전을 펼쳤다. 이탈리아와 터키리그에서 뛰었다는 자부심이 문제였다. V리그와 현대건설의 훈련, 동료들을 깔보는 듯한 모습에 감독은 호통을 쳤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는 선수가 필요하다. 그럴 거면 돌아가라”고 했다. 베키는 눈물을 흘렸고 이제 감독의 지시를 잘 따른다. 이도희 감독은 “지난 시즌 엘리자베스의 실패를 거울삼아 외국무대 경험이 있는 베테랑을 선택했다. 처음 사령탑을 맡으면서 이다영과 외국인선수를 모두 육성시켜 가겠다고 했지만 외국인선수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베키는 성격이 있는 것 같아서 뽑았다”고 털어놓았다. 최근 무릎이 좋지 않은 것이 찜찜하지만 베키의 경험을 믿고 있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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