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벤투호의 모범답안은 나와 있다

입력 2018-10-18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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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루 벤투 감독은 한국 축구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이후 다양한 전술 테스트를 진행하며 내년 1월 AFC 아시안컵을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실험은 완성품을 내놓기 위한 일종의 과정이다. 사진은 파나마와의 평가전을 하루 앞둔 15일 선수들과 미팅하는 벤투 감독(뒷줄 왼쪽에서 네 번째). 스포츠동아DB

파울루 벤투(49), 어느새 친숙해진 이름이다. 이름뿐 아니다. 무뚝뚝한 표정과 진중한 기자회견 스타일도 이젠 낯설지가 않다. 두 달 전 대한민국축구를 이끌 사령탑으로 확정됐을 때만 해도 반향이 크지 않았던 지도자다. 하지만 지금은 시나브로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한국축구는 그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경기내용을 끌어올려 국가대표팀의 브랜드 가치를 높였다. 그 대표팀을 팬들이 찾는다. 4경기 연속 만원관중이다.

벤투의 전술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2018러시아월드컵을 통해 우리가 가장 안타까워했던 건 한국적인 축구, 즉 우리만의 색깔을 잃어버렸다는 점이다.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잡는 게 최우선이었다. 그 막중한 책임을 벤투가 떠안았다. 그는 “멀리, 길게 내다보고 가겠다”고 했다.

지휘봉을 잡은 벤투는 A매치 4경기를 치렀다. 9월 코스타리카(2-0 승)와 칠레(0-0 무), 10월 우루과이(2-1 승)와 파나마(2-2 무)를 안방으로 불러들였다. 2승2무로 패배가 없다. 시행착오 속에서 벤투의 철학은 폭넓게 전파됐다.

크게 4가지 정도가 눈에 띈다. 안정된 후방 빌드업과 간결한 원터치 패스, 다양한 공격루트, 노련한 경기운영 등이다. 우리가 몰랐던 내용이라기보다는 그 가치를 벤투가 일깨워주고 있다는 게 정확할 듯하다.

빌드업의 경우 지도자마다 생각이 다르다. 벤투는 철저히 최후방부터 만들어가는 걸 원한다. 그러다보니 선수들의 볼 컨트롤 능력이 요구된다. 세밀한 패스로 상대의 압박을 벗겨내고, 그걸 통해 찬스를 만들면서 경기를 지배하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하지만 골키퍼가 볼을 잡았을 때, 그리고 그가 패스할 곳을 찾을 때는 보는 내가 불안했다. 러시아월드컵을 통해 최고 스타로 떠오른 조현우(대구)도 허둥댔다. 후방 빌드업이라는 틀 속에 녹아들지 못한 것이다. 또 동료들이 골키퍼나 수비수에게 백패스를 할 때도 아찔했다. 실수는 곧바로 실점으로 이어진다. 특히 상대 공격수가 강한 압박을 가할 때는 더욱 혼란스럽다. 아직 우리 몸에 익숙지 않은 게 사실이다. 안정 단계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지난 16일 충청남도 천안종합운동장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70위 파나마와 평가전을 가졌다. 동점골을 허용한 후 골키퍼 조현우(맨 오른쪽)와 김민재, 김영권이 아쉬워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간결한 원터치 패스 또한 후방 빌드업의 중요한 요소다. 볼이 머물면 상대의 압박이 몰려온다. 볼을 끄는 걸 최대한 자제하면서 팀플레이를 해야 한다. 반드시 전방패스만 고집하는 건 아니다. 백패스도 허용된다. 대신 공격의 동력을 얻을 수 있는 백패스여야 한다. 또 정확해야한다. 우루과이전에서 보여준 패스템포와 정확성은 칭찬 받을만했다. 반면 파나마전에서는 패스미스가 잦았다.

벤투는 기본적으로 공격지향적이다. 공격은 공격수만의 몫은 아니다. 그가 선호하는 것 중 하나는 양쪽 윙 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후방 빌드업 과정에서 윙 백은 상대 측면 깊숙이 올라가 기회를 노린다.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작전이다. 물론 측면 공격수와의 호흡이 중요하다. 서로가 빈 공간을 커버해줘야 한다. 파나마전에서 이용과 황희찬은 좋은 연계 플레이를 보였다.

최전방 공격수의 경우 우리 지역으로 내려서기보다는 상대 수비수를 달고 다니거나, 아니면 과감한 정면 돌파를 요구한다. 수비형 MF인 기성용의 롱 패스, 공격형 MF인 남태희와 황인범의 스루패스를 통한 순간적인 찬스포착도 중요하게 다뤄진다.

이처럼 벤투는 평가전을 통해 공격 옵션을 하나 둘씩 늘려가고 있다. 다양한 공격패턴을 완성해가는 것 자체가 우리의 경쟁력을 키우는 길이다.

경기운영도 노련해야 한다. 이기고 있을 때와 지고 있을 때의 패턴은 달라야 한다. 특히 리드할 때 상대 반격에 맞서며 집중력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 파나마전에서 2골을 넣고는 방심한 탓에 경기 템포를 잃어버린 건 반성해야할 부분이다. 어렵게 넣고 쉽게 실점하는 것만큼 허탈한 게 없다.

다양한 실험을 통해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최소화하는 이유는 큰 경기에서 완성품을 내놓기 위해서다. 지금은 경기마다 합격과 불합격이 뒤섞인다. 우리의 초점은 내년 1월 아시안컵과 2022년 카타르월드컵이다. 벤투의 색깔도 그 때 더 선명해질 것이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체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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