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의 모범이 될 도로공사의 성공한 지역정착 프로젝트

입력 2018-12-07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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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배구 도로공사는 2015년 김천에 정착한 뒤 3시즌 연속 여자구단 최다 관중을 동원하며 시민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선수단 숙소와 훈련장까지 김천으로 옮기는 등 연고지와 깊이 소통하려는 자세가 흥행의 비결이다. 사진제공|한국배구연맹

이강래 한국도로공사 사장

한국도로공사(사장 이강래)는 프로배구 V리그 출범 이후 3번 연고지를 옮겼다. 시작은 구미(2005~2010년)였고, 성남(2010~2015년)을 거쳐 2015년 5월 21일 김천에 정착했다. 도로공사의 행보를 보면 남자구단의 파트너지만 사실상 을의 입장에서 시작했던 여자구단이 어떤 과정을 통해 자립하고 남녀리그 분리 이전의 단계까지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 성공의 궤도에 들어서는지 잘 보여준다.

V리그 출범을 앞두고 2005년 남녀구단은 V투어를 개최했다.

프로리그 출범의 주역이었던 남자구단들은 천안, 인천, 수원, 대전, 구미 등 V투어가 열린 도시를 각각 연고도시로 정했다. 파트너로 여자구단과 하나씩 짝을 맺었다. 흥국생명은 천안, GS칼텍스는 인천, 현대건설은 수원, 인삼공사는 대전을 각각 연고지로 정했다. 도로공사는 LIG손해보험과 함께 구미에 정착했다. 남녀구단의 관계는 대부분 좋지 못했다. 의사결정과 실행정책이 남자구단 위주로 진행된 탓이었다. 입장료 정산과 경기장의 광고판 설치 등 디테일에서 서로 마음을 맞춰야 할 남녀구단은 자주 티격태격 했다.


● V리그 여자구단 연고지 이전의 역사

2009년 여자부 제6구단 IBK기업은행이 창단했다. 기업은행은 용감하게도 화성에 독자 연고지를 정했다. 이를 계기로 여자구단들의 독립이 본격화됐다.

2010년 9월 28일 도로공사도 성남으로 연고지를 옮겼다. 마침 본사도 성남이어서 결단은 쉬웠다. 하지만 정부정책에 따라 도로공사는 김천 혁신도시로 본사를 옮겨가야만 했다. 도로공사가 인구 100만명 가까운 수도권의 큰 도시 성남을 버리고 인구 14만명의 지방 소도시로 이전한 이유였다.

대부분 배구팀이 수도권에 연고지를 두려고 하고 훈련장과 숙소가 용인 인근에 모여 있는 상황에서 도로공사는 용감하게 연고지는 물론 선수단 숙소와 훈련장도 함께 옮기는 결단을 내렸다. 2018~2019시즌으로 도로공사는 김천시대 4년째를 맞는다. 그동안 도로공사의 관중현황(표 참조)을 보면 경쟁 프로스포츠가 없는 지방 소도시에 터를 잡은 여자프로배구단의 지역정착 프로젝트가 성공했다는 결과를 보여준다.


● 도로공사의 김천시대 4년. 성과와 과제는

김천시대 첫해인 2015~2016시즌 도로공사는 2만9988명의 관중(이하 경기평균 1999명)을 모았다. 2016~2017시즌 3만5198명(2374명), 2017~2018시즌 4만9571명(3317명)의 관중이 김천 실내체육관을 찾았다. 3시즌 연속 여자구단 가운데 최고의 관중동원 성적이었다. 특히 2017~2018시즌은 정규리그 우승과 V리그 출범 이후 첫 챔피언결정전 우승이라는 호성적을 바탕으로 유일하게 경기평균 3000명 이상의 밀물관중이 들어왔다.

2018~2019시즌은 여자부 경기가 평일 오후 7시로 고정되고 남자부와 동시간대에 경쟁을 하는 상황에서도 김천시민들의 배구사랑은 여전하다. 10월22일 도로공사-IBK기업은행의 시즌 개막전은 무려 5617명의 관중이 입장해 V리그 역사상 최다관중 신기록을 세웠다. 2라운드까지 치른 5경기에서 김천실내체육관에는 총 관중 1만5534명(3106명)이 입장했다. 평균수치가 지난 시즌보다 줄었지만 고객들의 충성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는 평이다.

도로공사 배구단이 한 시즌에 펼치는 최소 15번의 홈경기와 연고지 이전을 계기로 김천에서 벌어졌던 다양한 이벤트매치를 통해 김천과 인근 구미 지역의 시민들은 새로운 여흥거리를 찾았다. 수도권과 대도시와 비교해 문화를 즐길 인프라와 소프트웨어가 부족하던 지역에 프로스포츠가 가져다준 생활의 변화는 많았다. 이전까지 밤에 즐길 거리라고 해봐야 술 마시거나 영화를 보는 것이 일상이었던 지역에 가족과 함께 배구를 보며 즐거운 기억을 공유하고 응원을 통해 함께 열정을 불사를 곳이 생겼다는 것은 중요한 변화였다.

물론 경기장을 찾는 지역 팬들의 소리는 더 귀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V리그의 정책은 서울과 대도시를 중심으로 통일성을 기본으로 하지만 김천 같은 지방 소도시만의 독특한 환경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평일 오후 7시로 고정된 여자부 경기시간도 그렇다. 밤 9시 이후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고 대중교통도 많지 않은 상황에서 도로공사의 홈경기개시 시간을 꼭 대도시 지역과 통일해야 하는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경기 뒤 삼삼오오 근처의 가게에 모여서 경기도 복기하고 즐거운 대화를 나눌 환경이 되어야 지역의 소규모 경제도 활성화되는데 7시 경기는 그런 면에서 늦다는 얘기다.

도로공사의 홈경기 객석을 가득 메운 김천 시민들. 사진제공|한국배구연맹


● 고객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예전에는 스포츠 판을 벌이기만 하면 관중이 모여들었다. 공급자 중심의 시대, 구단에게는 호시절이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변했다. 굳이 프로배구가 아니라도 세상에 즐길 거리는 많다. 다행히 김천은 경쟁 프로스포츠가 없어 시민들에게 도로공사가 우리의 유일한 프로팀이라는 자부심을 심어줄 수 있었다. 팀에게는 중요한 자산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모자랐다.

21세기 프로스포츠 사업은 영화관, TV, PC방, 모든 젊은이들이 손에 들린 스마트폰 등이 경쟁자다. 손쉽게 즐길 거리를 찾을 수 있는 이들에게 과거의 방식으로 스포츠를 보여주기만 해서는 답이 없다. 그래서 프로스포츠 선진국은 지역밀착 활동을 통해 시민들에게‘우리팀’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지역연고 선수제도를 통해 연고지 팬에게 먼저 다가서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한다.

도로공사는 김천으로 연고지를 옮기기에 앞서 가장 신경 썼던 것은 충성스런 관중을 어떻게 만들 것이냐는 것이었다. 영향력이 큰 지방자치단체의 도움이 필요했다. 다행히 김천시의 열성적인 협조가 있었다. 그 덕분에 지역 연고정착에 모범이 되는 사례와 정책을 잘 만들었다.

프로배구를 처음 선보이는 3년의 정착기간에 도로공사와 김천시는 관중유치를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내건 협약을 맺었다. 이에 따라 김천시는 시민들에게 새로운 볼거리 프로배구를 꾸준히 알렸다. 각 지역별로 경기장을 찾을 기회를 제공했고 경기일정을 알리는 다양한 홍보수단과 시설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V리그와 도로공사 배구단을 알 수 있도록 협조했다. 김천시민의 새로운 가족이 된 도로공사 본사의 존재도 초기 정착에 큰 역할을 했다.

주변의 이런 노력 덕분에 도로공사는 김천을 여자배구에서 가장 뜨거운 지역이자 열성적인 관중을 보유한 팀으로 탈바꿈시켰다.


● 지역 팬에게 사랑받기 위한 도로공사의 노력들

물론 도로공사 배구단도 노력했다. 김천시와 인근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팬클럽 초청행사(팬 데이)를 통해 시민들에게 우리의 팀이라는 시실을 반복해서 알렸다. 김천시 어머니 배구대회 등 다양한 행사에 선수들이 참가해 얼굴을 알리고 사인을 해주면서 스킨십을 강화했다. 사회봉사 활동도 꾸준히 했다.

김천시의 에너지 빈곤계층을 위한 연탄봉사 활동을 해마다 거르지 않았고 미래의 팬인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배구 일일 클리닉도 열었다. 지방도시의 특성상 불편한 교통사정을 고려해 경기장에서 구미 시까지 편하게 모시는 셔틀버스도 운영한다. 3000대 주차가 가능한 넓은 주차장 인프라도 있다.

구단은 김천에 율곡초등학교 배구부를 창단했다. 이들이 성장해가는 과정에 발맞춰 중학교 고등학교 팀도 만들어지면 연고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란 선수들이 도로공사 유니폼을 입는 선순환 구조가 완성된다. 이 시스템이 갖춰지면 지역 팬들 입장에서는 옆집 누구의 딸이 경기를 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어 경기 몰입도는 물론이고 팀 충성도가 더욱 높아질 것이다.

도로공사의 홈 경기장인 김천실내체육관의 외부 전경. 사진제공|한국배구연맹


● 꾸준한 투자와 노력은 최고의 연고지를 탄생 시킨다

팬 없는 프로스포츠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팬을 만들어내는 작업은 팀 성적을 항상 상위권에 올려두는 것 이상으로 어렵다. 중요한 것은 꾸준한 실천의지다. 생각을 변화시키는 작업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힘든 일이다. 많은 스포츠 팀이 있지만 몇몇 소수의 인기구단처럼 충성스런 팬과 지지자들을 가지지 못한 이유는 꾸준하게 실천했느냐 아니냐의 차이다.

다행히 도로공사는 정책의 기본 바탕이 팬과 지역연고다.

V리그는 출범 이후 15시즌동안 13개 남녀팀과 KOVO가 모범적인 리그운영을 통해 겨울스포츠의 최강자로 됐다. 물론 아직 아쉬운 점도 많다. 우선 프로배구 시장이 전국적이지 않다. 도로공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팀이 추풍령 이북에 있다. V리그가 모든 국민의 스포츠로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금 소외받는 호남권 영남권 시장개척에 나서야 한다. 현재는 도로공사가 영남권 시장개척의 선두주자다. 그런 면에서 도로공사의 연고지 정착 노력이 더욱 성공할 수 있도록 V리그 차원의 더 많은 지원과 팬들의 응원이 필요해 보인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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