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KB손해보험 권순찬 감독이 흘린 눈물의 의미는

입력 2018-12-14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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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손해보험 권순찬 감독(왼쪽 세 번째)은 11일 OK저축은행을 상대로 6연패를 끊은 뒤 눈물을 훔쳤다. 낮고 빠른 공격을 이끄는 세터 황택의의 장점을 살린 결단이 통했다. 사진제공|KOVO

KB손해보험은 전신 LIG손해보험 때부터 내려오는 전통이 하나 있다.

V리그 출범 이후 6명의 감독과 3명의 감독대행이 팀을 거쳐 갔지만 어느 누구도 재계약을 맺은 적이 없다. 2010~2011시즌 준플레이오프 제도가 처음 생기면서 김상우 감독이 4위로 봄 배구에 진출 삼성화재에 1승을 딴 것이 유일할 정도로 리그 중위권과 하위권을 전전하다보니 재계약의 선물을 주기도 어려웠다. 신영철 감독부터 강성형 감독까지 항상 새얼굴을 뽑아놓고 결과가 좋지 못하면 먼저 리셋버튼부터 찾는 것이 팀의 전통처럼 내려왔다. 그러다보니 현장보다는 프런트의 입김이 센 구단이라는 소문만 무성했다.

KB손해보험 권순찬 감독. 사진제공|KOVO


● 연패 속에서 실체 없는 소문과 싸워야 했던 권순찬 감독

제7대 권순찬 감독은 이번 시즌 뒤 2년 계약기간이 끝난다. 지난 시즌을 앞두고 새로운 사령탑을 선정할 때 수석코치였던 그를 발탁했던 이유는 누구보다 팀을 잘 알고 젊어서였다. 지난 시즌 뚜렷한 전력보강 없이도 팀을 4위까지 이끌었기에 입지는 탄탄해보였지만 세상 어느 일도 확실한 것은 없다.

이번 시즌 KB손해보험은 고전하고 있다. 3라운드 중반까지 쌓은 승수가 고작 4승(11패)이다. 이대로라면 봄 배구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최근 6연패의 수렁에서 그나마 11일 OK저축은행을 상대로 승리하면서 한 숨을 돌린 정도다. KB손해보험이 연패에 빠지자 말 많은 배구계에서 여러 소문이 나돌았다. 권 감독도 그 얘기를 모를 리 없었다. 실체가 없는 소문과 싸우면서 부진한 팀의 성적도 올려야했기에 다른 팀 감독보다 더 힘들었을 것이다. OK저축은행 승리 뒤 방송화면에는 감독이 눈가를 손으로 훔치는 장면이 나왔다.

힘든 승리의 순간에 감정이 울컥했던 모양이다. 이를 확인하려는 기자에게 “경기 때 소리를 많이 질러서 그랬을 뿐”이라고 말했지만 그 행동이 가지는 여러 의미와 상황은 이해됐다.

KB손해보험 권순찬 감독. 스포츠동아DB


● OK저축은행 승리를 통해 확인한 것은 KB손해보험 배구의 방향성

11일 승리로 KB손해보험과 권순찬 감독이 얻은 것은 많다. 우선 팀이 추구하는 배구의 방향이 정해졌다. 지난 시즌부터 함께 해온 알렉스의 급작스런 부상과 팀 이탈로 생긴 문제의 해결방법이 이제 확정된 것이다.

펠리페의 긴급한 영입으로 KB손해보험은 많은 것을 바꿔야 했다. 왼쪽 중심의 낮고 빠른 배구가 오른쪽 펠리페 중심의 느리고 높은 배구로 바뀌는 과정에서 엇박자가 났다. 팀의 장점이던 스피드는 줄어들었다. 낮고 빠른 공을 잘 때리지 못하는 펠리페를 위해 세터 황택의가 희생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상대팀의 입장에서는 느려진 KB손해보험의 공격을 방어하기가 편했다. 펠리페, 손현종에게는 언제든지 상대팀의 미들블로커 등 2명이 블로킹 벽을 쌓았다. 이런 상황을 펠리페도 힘겨워 했다. 속절없는 6연패의 배경이었다.

OK저축은행전을 앞두고 권순찬 감독은 결단을 내렸다. 공격수를 위해 세터가 공을 맞춰줄 것이 아니라 우리 세터의 장점을 살리고 여기에 공격수가 맞춰야한다고 결정했다. 그 팀의 플레이는 세터의 스타일과 추구하는 배구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감독은 빠르고 낮은 연결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는 황택의의 기를 살리는 것이 팀의 미래를 위해서도 옳다고 판단했다. 딱 이틀간 새로운 패턴으로 연습했던 결과가 3-1 승리였다.

물론 OK저축은행이 너무나 많은 범실 탓에 스스로 주저앉기도 했지만 달라진 플레이에 상대 미들블로커들이 제대로 펠리페를 따라다니지 못했다. 이날 펠리페가 평소보다 훨씬 높은 56% 공격성공률을 올린 이유였다. 낮고 빠른 연결에 특화된 윙스파이커 황두연도 변화된 플레이 덕분에 자신의 경기최다득점 기록(20득점)을 세웠다. 황택의도 자신이 잘하는 것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플레이에 기가 살았고 창의적인 연결로 더 많은 공격기회를 만들어냈다.

권 감독은 “플레이가 빨라지면 전반적으로 속공을 빨리 뜨고 다음 공격도 빨리 이뤄져 상대가 대처하기 힘들어진다. 지난 시즌에 우리가 해왔던 장점을 살리다보니 황택의도 자심감이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제는 여전히 높은 공에 익숙한 손현종이지만 이제 큰 방향은 정해진 셈이다.

KB손해보험. 사진제공|KOVO


● 감독을 향한 프런트의 신뢰는 팀을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또 다른 변화는 프런트였다. 전영산 단장은 최근 훈련장을 찾아가 권순찬 감독에게 힘을 실어줬다. 그날 감독은 배구계에 나도는 소문을 전해줬다. 그 말을 들은 단장은 “걱정하지 말고 감독이 하고 싶은 대로 하라. 우리가 권 감독을 선택한 것은 연임할 수 있는 좋은 지도자를 원해서였다. 재계약 감독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구단관계자는 “밖의 소문은 내부 분위기와는 다르다. 우리로서는 권 감독에 대한 신뢰가 높다”고 했다. 물론 성적이 모든 것을 말하는 스포츠 세계에서 결과 이외에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순진하게 프런트의 말을 100% 믿을 감독도 아니다.

과연 KB손해보험은 이번 시즌 뒤 어떤 성적표를 받아들고 어떤 결정을 내릴지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궁금해진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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