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영웅’ 박항서, 그의 위대한 도전에 한계란 없다

입력 2018-12-14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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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축구대표팀 박항서 감독. 스포츠동아DB

베트남 축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저 그런’ 팀이었다. 약체 이미지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아무리 좋게 포장해봐야 동남아시아의 다크호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제는 다르다. 베트남은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박항서(59)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뒤 급격하게 성장했다. 위상도 올라갔다. 지역적인 한계를 넘어 아시아 강호로 꾸준히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2018년, 베트남의 퍼포먼스는 실로 대단했다. 신년벽두부터 아시아를 뜨겁게 달궜다. 1월 중국에서 개최된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에서 깜짝 준우승을 차지할 때부터 심상치 않았다. 공교롭게도 한국 U-23 대표팀의 부진과 맞물리면서 베트남 축구의 도전은 더욱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8월 2018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AG)에서도 베트남은 충분한 가능성을 보였다. 사상 첫 4강 진출에 성공했다. 박항서 감독의 절친 김학범(58) 감독이 이끄는 한국에 무릎을 꿇어 전진이 멈춰버렸으나 최선을 다한 베트남 전사들은 울지 않았다.

대미를 장식할 무대는 15일(한국시간) 오후 9시 30분 베트남 하노이의 미딘 국립경기장에서 열릴 말레이시아와의 2018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 결승 2차전이다. 11일 콸라룸푸르에서 펼쳐진 원정 1차전에서 2-2로 비겼기 때문에 베트남은 굉장히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원정 다 득점 원칙에 따라 0-0 혹은 1-1로 비겨도 정상에 선다.

베트남 축구대표팀 박항서 감독. 스포츠동아DB


스즈키컵은 박 감독이 가장 부담을 느낀 무대다. U-23 대표팀을 지휘할 때도 항상 마음 한구석에는 연말 예정된 ‘동남아 월드컵’이 머물렀다. 지인들에 따르면 2008년 이후 10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안겨줘야 한다는 압박이 대단했다. “베트남 사람들의 축구사랑은 대단하다. 동남아에서 자신들의 실력이 가장 우수하다고 여긴다. 태국이 동남아 패권을 쥐고 있을 때에도 베트남인들은 인정하지 않았다. 이렇게 높은 자긍심과 자부심을 어떻게 채워줘야 할지 고민스럽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U-23 대표팀의 폭발적인 전진도 걱정스러웠다. A대표팀의 뼈대를 U-23 자원들이 채워냈다고는 하나 연령별 무대와 A매치의 무게는 전혀 다르다. 그런데 혼란은 없었다. ‘박항서 매직’은 계속됐다. 말레이시아와 결승 1차전까지 A매치 15경기 연속 무패(7승8무)를 찍으며 승승장구한다. 이와 함께 베트남은 최근 발표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에서 100위에 올랐다. 박 감독이 갓 부임한 지난해 10월보다 무려 34계단이 상승했고, 97위를 경험한 2012년 이후 6년 만에 가장 높은 위치에 서게 됐다.

박 감독은 현지에서 가장 유명하고, 많은 사랑을 받는 외국인이다. 강하게 압박한 뒤 빠른 역습을 펼치는 공격적인 3-4-3을 주 전략으로 활용하면서 적시적소에 선수들을 기용하고 휴식을 부여하는 특유의 용병술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나 그를 더욱 높인 것은 따스한 인간미와 인성이다.

스승은 경기(훈련) 도중 제자의 다친 발을 직접 마사지해주고, 항공기에서 자신에게 배정된 비즈니스 좌석을 부상 선수에게 양보한다. 아침 식사를 꼼꼼히 챙기고, 고른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도록 음식 메뉴에도 많은 신경을 쓴다. 꾸준한 유제품과 육류 섭취가 여기서 비롯됐다.

베트남 축구대표팀 박항서 감독. 사진제공|AFC


여기에 장점은 극대화할 수 있도록 돕는다. 베트남 선수들 스스로가 꼽은 ▲ 투쟁심 ▲ 협동력▲ 자존감을 높여주기 위해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발언은 피한다. 한국을 유난히 두려워해온 선수들의 정신을 개조하기 위해 스즈키컵 개막을 앞두고 호랑이 굴’로 찾아와 혹독한 전지훈련을 가졌다. 한국축구의 좋은 기운을 받아가자는 의미도 담겼다.

경기도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서 진행된 베트남의 강화훈련을 지켜본 김학범 감독은 “(박 감독이) 정말 알차게 준비했더라. 훈련 프로그램이 굉장히 짜임새가 있었다. 경기 리듬, 컨디션 사이클을 최적의 상태로 유지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스즈키컵에서 제대로 터졌다. 때 이른 강추위에도 반팔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훈련하는 모습을 보며 숨은 저력도 확인했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지금 베트남은 온통 축제 분위기다. 입장권 예매전쟁과 팬이 실신하는 사태까지 폭발 직전이기도 하다. “축구경기가 열리는 날은 사실상 무정부 상태다. 흥겨운 소요사태가 벌어지곤 한다”는 것이 국내 제조업체의 베트남 주재원 유상수(37) 씨의 전언이다. 꽤 오랜 시간 한국어 강사로 활동한 남궁석(39) 씨도 “대학생 때 경험한 2002한일월드컵의 열기를 여기서 느끼고 있다. 밤낮 가리지 않고 축제가 계속 된다”며 혀를 내둘렀다.

어느덧 가장 가까운 이웃처럼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선 베트남과 박항서 감독의 위대하고 당당한 도전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그들의 아름다운 동행은 어디서 마침표가 찍힐까.

● 박항서

▲ 생년월일=1959년 1월 4일 ▲ 출신교=경신고~한양대 ▲ 선수 경력=제일은행(1981년) 육군 충의(1981~1983년) 럭키금성 황소(1984~1988년) ▲ 코치 경력=LG 치타스(1989~1996년) 수원삼성 2군 코치(1997~1999년) 한일월드컵대표팀 수석코치(2000~2002년) 포항 스틸러스 수석코치(2003년) ▲ 감독 경력=부산아시안게임 감독(2002년) 경남FC 감독(2005~2007년) 전남 드래곤즈 감독(2008~2010년) 상주상무 감독(2012~2015년) 창원시청 감독(2016~2017년) 베트남대표팀 감독(2017~현재) ▲ 수상 경력=체육훈장 맹호장(2002년)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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