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 레이더] 사라진 광고판 사건 19일 KOVO 이사회 정식안건 되다

입력 2018-12-18 14: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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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K저축은행 배구대표팀. 스포츠동아DB

지난 13일 한국배구연맹(KOVO)에서는 상징적인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남녀 13개 구단의 살림을 책임지는 사무국장들이 상암동 한국배구연맹(KOVO)을 항의 방문했다. 전날 밤 사무국장들의 단체 대화방에서 뜨겁게 의견을 주고받은 이들은 “식물회의가 된 실무회의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우리의 주장을 알리자”면서 항의방문을 결의했다. 도로공사, KGC인삼공사, 한국전력을 제외한 10개 구단의 실무자들이 KOVO로 몰려들었다.


● V리그 15년 만에 처음으로 사무국장들이 단체행동에 나선 까닭은

현 집행부 뿐 아니라 V리그 출범 이후 최초인 구단들의 단체행동이 나온 배경은 배구코트에 깔린 광고판 하나 때문이었다. 지난 11일 안산 상록수체육관에서 벌어진 OK저축은행-KB손해보험 경기를 앞두고 코트의 광고판 한 개가 사라져버렸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KOVO에서 새로 영입한 스폰서였다. 계약에 따라 모든 경기장의 코트에 이 광고판이 붙어 있는데 OK저축은행이 최근 “상록수체육관에는 이 광고를 붙이기 어려운 사정이니 철거했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OK저축은행은 KOVO에 공문도 보내고 단장과 사무국장 등이 찾아가 자신들의 뜻을 알렸다. 실무자회의에서도 이 안건을 거론했다.

하지만 KOVO에는 리그를 지탱해온 원칙이 있었다. 즉 KOVO가 수익사업을 위해 영입한 스폰서가 회원사의 권리와 상충할 경우 모두의 발전을 위해 KOVO의 스폰서권리를 우선한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V리그의 스폰서 가운데 건설사와 금융관련 회사의 광고가 가능했다.

그런데 OK저축은행이 제동을 걸고 나왔다. OK저축은행이 강공 드라이브로 나온 것은 회사 내부의 사정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OK저축은행은 여러 경로를 통해 부탁을 했고 직접 그 스폰서와 만나 자체적으로 해결방법도 알아봤다. 워낙 간곡하게 OK저축은행 측에서 부탁하자 KOVO도 해결방법을 알아봤다. 실무회의에서도 원칙을 고수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바꿔 19일 이사회 때 정식 안건은 아니지만 OK저축은행의 입장을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해주기로 했다.


● 갑자기 사라진 상록수체육관의 광고판, 분노한 사무국장들


19일이면 모든 일이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었던 사안은 11일 경기를 앞두고 그 광고판이 사라져버리면서 폭탄이 됐다. 실무회의에서 OK저축은행의 요구사항을 논의했던 사무국장들 누구도 이 사실을 몰랐다. 11일 TV로 경기를 지켜보고서야 뒤늦게 알았다. 결국 폭탄이 터졌다. 12일 밤에 단체 대화방이 뜨거웠다. KOVO 사무총장까지 초대해 사무국장들의 생생한 분노의 목소리를 알렸다.

하지만 OK저축은행의 이야기는 다르다. “우리는 KOVO로부터 광고판을 떼도 좋다는 사인을 7일 받았고, 10일 재차 확인한 뒤 철거했다. KOVO로부터 협조와 승인을 받은 사안이다”면서 막무가내로 벌인 사안이 아님을 설명했다.

결국 소통과정에서 오해로 일이 꼬여버렸다. 이 바람에 배려를 해주고도 뒤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한 사무국장들은 분노했다.

그동안 실무회의에서 나온 안건들이 이사회에 전달되는 과정에서 왜곡되고 분위기도 제대로 전해지지 않아서 불만이 많던 사무국장들에게는 울고 싶었던 참에 뺨을 때려준 꼴이었다. 13일 실력행사에 나섰다. 이들은 항의방문을 통해 사무총장에게 이번 일이 발생한 과정과 추후 비슷한 일이 발생했을 경우 재발방지책을 설명하라고 요구했다. 다행히 KOVO에서 절차상의 문제를 인정했다. 재발방지도 약속해 더 이상의 문제로 번지지 않았지만 현 집행부를 향한 각 구단의 실망감과 서로를 향한 시선이 어떤지는 확인했다.


● 19일 이사회에 정식 안건으로 들어간 광고판 철거사건

이번 사안을 놓고 생각해봐야 할 것이 한 둘이 아니다.

먼저 OK저축은행의 이번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회원사라고 해도 모두가 지켜야할 룰이 있는데 이를 방치했을 경우 나중에 누군가가 또 다른 원칙을 위반할 길이 열린 셈이다.

KOVO는 여기저기서 원칙이라는 둑이 무너지기 일보직전이다. 외국인선수 영입, 샐러리캡 등 각 구단의 이해관계가 얽힌 민감한 사안은 한 둘이 아니다. 총재와 이사회의 구성원들이 이번 사안을 어떻게 판단하는지 궁금하다.

또 KOVO의 일처리 방식이다. 리그를 이끌어가는 원칙은 회원사들이 불만을 가지지 않게 공평정대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보의 공개를 통해 모두를 납득시키는 투명한 행정이 필요하다. 이번에는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 그래서 사무국장들은 “실무진과 소통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따지고 보면 큰 요구사항도 아니다. 자주 만나고 그들의 얘기를 귀담아 듣고 이사회나 총재에게 있는 그대로 보고하면 되는 일이다. 어차피 리그의 모든 정책의 최종결정은 이사회에서 나오기 때문에 현장의 목소리를 최대한 올바르게 전달하면 되는데 지금 이 과정에 많은 구단들이 불만을 가지고 있다.

19일 열리는 이사회에는 OK저축은행과 관련한 이번 사안이 비공식 안건이 아니라 공식 안건으로 올라갔다. 만일 이사회에서 OK저축은행의 요구를 받아들여주지 않으면 다시 상록수체육관에는 그 광고판을 붙여야 한다. OK저축은행이 이사회의 결의를 거부하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가 생긴다. 원칙이 흔들리면서 일이 아주 복잡해지고 커져버렸다. OK저축은행도 다른 구단도 모두 원칙의 중요성을 실감할 이사회에서 어떤 결정이 내려질까.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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