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베테랑 토크②] 이해영 “막노동한 용산역서 첫 영화 시사…가슴 뭉클”

입력 2017-04-05 1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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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영은 배우로 살아온 30여년의 세월을 돌아보며 “‘잘 버텼다’고 스스로 위로하고 싶다”고 말했다. 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배우 이해영의 출연작은 약 30여 편. 결코 적지 않다. 특히 최근 몇 년 들어서는 분량도 커지고 작품 수도 늘었다. 지난해에는 영화 ‘그날의 분위기’ ‘사냥’이 개봉했고 드라마 ‘뱀파이어 탐정’ ‘피리 부는 사나이’가 방송됐다. 올해가 겨우 석 달 지난 현재 영화 ‘공조’와 ‘프리즌’이 극장가를 찾았고 드라마 ‘보이스’가 종영했지만 이해영은 사전제작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로 시청자들을 만나고 있다.

“그래프로 그린다면 조금씩 횟수가 올라가는 것 같긴 해요. ‘공조’는 정말 잘 됐고 ‘보이스’도 얼떨결에 들어왔다가 작품이 잘 된 덕분에 다들 좋게 봐주시고요. 예전에 비해 작품 수가 큰 차이가 있진 않아요. 사실 제가 어떤 상황이고 상태인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하. 체감되는 것도 없고 연락이 특별히 많아지지도 않았어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영화와 드라마 모두 출연을 논의 중이다. 앞서 언급했듯 이해영은 언제나 감독과 배우들이 다시 찾는 배우다. 핵심은 ‘다시 찾는’다는 것. 작품의 연이 거미줄처럼 이어져왔다. “씨를 뿌리고 키워왔으니 이제는 수확하는 시기”라는 기자의 말에 이해영은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쌓아온 필모그래피가 이를 증명한다. 데뷔 30년차를 몇 년 앞둔 지금 ‘싹이 움트는 단계’는 확실히 넘어섰다.

“참 어떻게 왔는지…. 정말 아득하네요. 잘 버텨온 것 같아요. 필모그래피를 보면서 ‘제법 이렇게 했구나’ 싶어요. 훌륭하고 능력 있는 배우들이 많은데 운 좋게도 많은 기회를 얻었어요. 그래도 아직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았어요. 오롯이 나를 위해서, 책임감 있고 충실하게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피부로 와 닿고요. 한편으로는 ‘잘 버텼다’고 위로도 받아요. 감사하고 기쁘죠.”

영화 ‘공조’와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의 한 장면. 사진|CJ엔터테인먼트-SBS


이번에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이해영의 첫 영화를 돌아봤다. 그의 스크린 데뷔작은 장진 감독의 ‘박수칠 때 떠나라’(2005). 이해영에게 장진 감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이다. 두 사람은 강산이 두 번 변하고도 넘는 시간을 함께 걸어왔다. 이해영은 ‘거룩한 계보’ ‘굿모닝 프레지던트’ ‘퀴즈왕’ ‘하이힐’ ‘우리는 형제입니다’ 등 장진 감독의 작품에 다수 출연했다. 장진 감독이 대표로 있는 필름있수다에 몸담고 있기도 하다.

“오래됐죠. 참 의리 있는 분이에요. 많이 챙겨줘서 고맙죠. 아무래도 같은 회사니까 역이 크든 작든 같이 작품을 하려는 마음인 것 같아요. ‘아직도 연기를 그렇게 하느냐’고 혼나기도 해요. 디렉션이 명확한 분이죠.”

단순히 감독과 배우, 대표와 소속 연예인 그 이상이다. 연기를 접었던 이해영을 돌아오게 한 것도, 영화로 이끈 것도 모두 장진 감독이다. 이야기를 풀다보니 데뷔 전 대학교 시절 기억까지 소환됐다.

“원래 연출 전공이었어요. 서울예술대학 연극과 재학 당시 써클에서 장진 감독님의 희곡을 연출하기도 했죠. 그런데 제가 연출을 잘 못했나 봐요. 제대 후 복학했을 때 교수님이 연기를 추천하더라고요. 연출을 더 잘하기 위해 연기를 공부해보라는 뜻이었나 싶기도 해요. 그래서 2학년 1학기부터 연출이 아닌 연기로 전향했죠. 계속 연출을 했으면 더 많은 것을 알고 경험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후회는 없어요. 연기만 하길 잘했다 싶어요.”

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대학교 졸업 후 이해영은 무대로 향했다. 그러나 열정 하나로 버티기엔 연극배우의 현실은 고달팠다. 경제적 압박을 느낀 이해영은 2년 정도 막노동으로 생활비를 채웠다.

“처음에는 국방부 신축 건물 막노동을 1년 가까이 했어요. 용산역 KTX 건설 공사에도 참여했죠. 당시 반장님이 ‘이 자리에 쇼핑몰과 CGV가 들어 올 거야’라고 하더라고요. 몇 년 후 용산 CGV에서 제가 출연한 첫 영화 ‘박수칠 때 떠나라’ 시사회가 열렸어요. 제 손으로 벽돌 하나하나 쌓은 그 곳에서 시사회라니…. 정말 감회가 새로웠죠.”

막노동 벌이는 꽤 괜찮았다. 일당을 모으니 일주일에 약 30만원. 그렇게 돈은 모았지만 연기 공백이 길어지자 덜컥 겁이 났다.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했던가. 그때 장진 감독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어느 날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이러면 안 되겠다’ 싶은 거예요. 연기로 돌아가야겠다 싶었어요. 때마침 장진 감독이 연극을 이야기하더라고요. 오랜만에 하는 작품이다보니 걱정이 앞섰죠. 류승룡 이철민 등 동기, 후배들과 하는 연극이었는데 연습하면서 엄청 혼난 기억이 나요. 여주인공은 옆에서 울고 있고요. ‘내가 만약 이 연극을 제대로 못해낸다면 배우를 진짜 그만둬야 겠다’는 마음으로 했어요. 그런데 작품이 대박 난 거예요. 관객들이 연극을 보려고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서 뭉클했어요. 그때부터 여기까지 쭉 오게 된 거죠.”


<특별기획: 베테랑 토크③으로 이어집니다.>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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