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 ‘원라인’ 박병은 “솔직한 박실장, 섹시하지 않아요?”

입력 2017-04-05 18: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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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인상, 서늘한 눈빛. 그러나 웃으면 전혀 다른 사람처럼 한없이 따뜻한 인상이다. ‘천의 얼굴’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배우, 박병은을 만났다. ‘원라인’ 주연 배우 가운데 가장 손꼽아 기다린 인터뷰였다. 박병은은 앞서 제작보고회와 기자간담회 그리고 무비토크까지 ‘원라인’ 행사에서 남다른 입담을 과시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뻔뻔하리만큼 유쾌했다. 무뚝뚝한 얼굴로 엉뚱한 애드리브를 던지는가 하면 뜬금없이 노래하기도 했다.

베일을 벗은 영화 ‘원라인’에서는 또 달랐다. 박병은은 세상에 다시없을 냉소적인 캐릭터 ‘박실장’을 그려냈다. ‘박실장’은 성공을 위해서라면 누구의 머리든 사정없이 찍어버리는 냉혈안. 한 마리의 야수 같은 남자다.

‘원라인’을 제작한 미인픽쳐스 곽중훈 대표는 일면식도 없던 박병은에게 직접 전화해 출연을 제안했다. 곽 대표는 사석에서도 박병은의 연기력과 자세를 칭찬하면서 “두고 봐라. 분명 큰 배우가 될 것”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뿐 아니라 박병은을 먼저 만난 관계자와 기자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왜 다들 입을 모아 칭찬할까. 백문이 불여일견. 박병은을 만나보니 자연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Q. ‘원라인’에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요.

A. 제작사 대표님을 통해서 캐스팅됐어요. 어느날 휴대전화에 ‘미인픽쳐스 곽중훈 대표입니다. 나눌 이야기가 있는데 전화 부탁합니다’라고 문자가 와 있더라고요. ‘뭐지? 나에게? 왜?’ 싶었죠. ‘암살’로 인지도가 미약하게 오른 후였지만 그때까지도 저에게 작품이 들어오는 건 상상도 못했거든요. 대표님과는 일면식도 없었고요. 통화해보니 ‘원라인’을 준비한다고 박실장 역할을 얘기하더라고요. 작은 역할도 아니고 주연이라고요. 속으로 ‘이 사람이 왜 이러지? 사기인가?’ 했죠(웃음). 통화를 마치고 주위에 확인까지 했어요.

일면식도 없던 저에게 이렇게 큰 역할을 맡겨주셔서 감사했죠. 감독님을 만났는데 저를 염두에 둔 캐릭터라는 말에 믿음이 먼저 생겼어요. ‘다른 배우는 생각한 적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신뢰가 쌓였죠. 애착을 가지고 열심히 찍었어요.


Q. 악역 박실장은 ‘악 중의 악’이었죠. 어떤 점이 매력적이었나요.

A. 가장 끌린 점은 ‘솔직함’이었어요. 박실장 대사 중에 ‘돈, 더럽지. 그런데 다 좋아하잖아’라는 대사가 있어요. ‘너네도 돈이 좋으면서 왜 솔직하지 못해’라는 거죠. 이 대사가 박실장의 캐릭터를 잡는데 큰 축이 됐어요. 시나리오를 보는데 박실장이 되게 섹시하게 느껴졌어요. 나쁜 짓을 하고 등쳐먹고 속이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갈 길을 쭉 가잖아요. 프로페셔널하고 솔직하고요. 남자다운데다 싸움도 잘하죠. 진짜 섹시하지 않나요?


Q. 후반부에 얼굴이 피 범벅되는 장면은 며칠에 걸쳐 촬영한데다 테이크를 40번 넘게 갔다고 하더라고요. ‘그럼에도 박병은이 얼굴 한번 찌푸리지 않고 웃으면서 하더라’는 미담이 들리던데요.

A. 아휴~ 뭐 그 정도는 감사하죠. 제 얼굴에 피 범벅이 되더라도 좋은 작품에서 큰 역할을 맡았잖아요. 그것만으로도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현장에 갔어요. 촬영이 길어지면 제작비 차원에서는 힘들지만 저는 좋았어요. ‘원라인’ 제작진, 배우들과 더 많은 촬영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죠.


Q. ‘원라인’ 현장 분위기가 참 좋았나 봐요.

A. 좋았죠. 주요 인물 중에서는 제가 첫째였는데 동생들이 눈치 보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분위기를 일부러 더 밝게 만들었어요. 촬영하는 날마다 마치고 술 마실 생각하면 즐겁더라고요. 숙소에서 맥주 한잔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요.

진구는 말술일거라고 생각했지만 (임)시완이가 의외였어요. 술을 잘 안 즐기거나 마셔도 수입맥주만 마실 것 같은데 술을 좋아하고 잘 마시더라고요. 귀여웠어요. ‘원라인’ 덕분에 귀여운 동생을 얻은 것 같아요. ‘오구오구’ 해주고 싶다니까요. 하하.


Q. 임시완 씨는 ‘원라인’을 시작으로 연기 방식을 바꾸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자신과 호흡을 맞춘 상대 배우들이 힘들었을 거라고 했는데 어땠나요.

A. 어려운 점은 없었어요. 시완이가 신나게 놀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 좋았죠. ‘잘 하고 있구나’ 싶었어요.

정말 열심히 하더라고요. 현장을 대하는 태도와 열정이 이렇게까지 큰 사람이었나 싶었죠. 그날그날 촬영을 마치고도 새벽 1-2시에 전화가 와요. 계속 물어보고 제안하고…. 이야기를 듣다가 나중에는 졸리니까 ‘그만하고 소주 한 병 마시고 자라’고 하곤 했죠. 몸에 힘을 빼고 이완시키는 것도 중요하거든요. 시완이는 지금 진화하는 단계인 것 같아요.


Q. 본인의 연기 방식은 현장 친화적인 스타일이군요.

A. 캐릭터나 작품에 따라 달라져요. 코미디 영화나 유쾌한 장면을 찍을 때는 대사만 외우고 장면만 인식한 채 가요. 애드리브로 채우죠. 하지만 진중하거나, 슬프거나, 감정이 북받치는 장면은 며칠 전부터 집중적으로 생각해요. 어떤 작품이든 촬영하기 전에는 깊이 파고 들어갔다가 현장에 오는 길에 모두 쓰레기통에 넣어요. 그렇게 던져도 캐릭터의 잔재가 가슴이나 몸에 인식 돼 있죠.


Q. 앞서 언급한 ‘첫째’라는 표현이 마치 남매 같고 좋네요. 첫째로서 어떤 마음가짐이었나요.

A. 끌고 가거나 그런 것보다는 동생들을 편하게 해주고 싶었어요. ‘노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꼈죠. 불편해하면 티가 확 나잖아요. 형으로서 분위기를 잘 만든 것 같아서 뿌듯해요. 뭐 다들 술 마시면 더 편해지고 그랬어요.


Q. 진구 씨와 특히 돈독해보였어요. 술로도 잘 통했을 것 같은데요.

A. 사석에서도 한 번도 못 본 사이인데 ‘원라인’ 통해서 처음 알았어요. 제가 촬영 초반에 일산으로 이사 갔는데 알고 보니 진구도 일산 주민이더라고요. 우리 집에서 둘이서 술을 마시다 친해졌어요. 공허한 거실에서 오징어 과자 하나 뜯어놓고 컵에 소주를 따라 마셨죠. 새벽까지 서로 사는 이야기하면서 순식간에 마음이 열렸어요. 빚 얘기도 하고 인생 얘기도 하고요. 공통분모가 많았어요.


Q. ‘원라인’은 돈에 대한 질문을 많이 던지는 작품이잖아요. 촬영하면서 ‘돈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본 적 있나요.

A. 어려워요. 누구나 돈을 많이 가지고 싶어 하죠. 돈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예요. ‘원라인’을 찍으면서 ‘지금은 돈이 없지만 나중에 돈을 벌게 되면 잘 써야 겠구나’ 싶었어요. 돈이 많이 생긴다면 노인들을 위해 쓰고 싶어요.


Q. 특별히 노인 복지를 꿈꾸는 이유가 있을까요.

A. 노인에 대한 애틋함과 짠함이 있어요. 어릴 때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살았고 그 분들이 집에서 돌아가시는 것도 봤어요. 어린 나이에도 ‘나이듦’과 ‘생을 마감하는 것’에 마음이 안 좋았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때 어린이 프로그램을 방청하러 간 적이 있는데요. 부모님 말씀에 따르면 ‘커서 뭐가 되고 싶어요?’라는 MC의 질문에 제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힘드시지 않도록 돕고 싶습니다’라고 했대요.


<인터뷰②로 이어집니다.>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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