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②] ‘원라인’ 박병은, 아이돌 말고 배우하길 참 잘했다

입력 2017-04-05 18: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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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인상, 서늘한 눈빛. 그러나 웃으면 전혀 다른 사람처럼 한없이 따뜻한 인상이다. ‘천의 얼굴’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배우, 박병은을 만났다. ‘원라인’ 주연 배우 가운데 가장 손꼽아 기다린 인터뷰였다. 박병은은 앞서 제작보고회와 기자간담회 그리고 무비토크까지 ‘원라인’ 행사에서 남다른 입담을 과시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뻔뻔하리만큼 유쾌했다. 무뚝뚝한 얼굴로 엉뚱한 애드리브를 던지는가 하면 뜬금없이 노래하기도 했다.

베일을 벗은 영화 ‘원라인’에서는 또 달랐다. 박병은은 세상에 다시없을 냉소적인 캐릭터 ‘박실장’을 그려냈다. ‘박실장’은 성공을 위해서라면 누구의 머리든 사정없이 찍어버리는 냉혈안. 한 마리의 야수 같은 남자다.

‘원라인’을 제작한 미인픽쳐스 곽중훈 대표는 일면식도 없던 박병은에게 직접 전화해 출연을 제안했다. 곽 대표는 사석에서도 박병은의 연기력과 자세를 칭찬하면서 “두고 봐라. 분명 큰 배우가 될 것”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뿐 아니라 박병은을 먼저 만난 관계자와 기자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왜 다들 입을 모아 칭찬할까. 백문이 불여일견. 박병은을 만나보니 자연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인터뷰①에서 이어집니다>


Q. 드라마 데뷔는 2000년이고 영화 데뷔는 2002년인데 두각을 드러낸 건 몇 년 채 되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행보를 보면 주연이나 인기에 욕심 내지 않고 차근차근 온 느낌이에요.

A. 연기에 대한 욕심은 있지만 주연에 대한 야망은 없었어요. 조연이 더 매력적이면 무조건 그 캐릭터를 하려고 했죠. 감정 이입도 안 되는 주연을 하느니 제가 더 잘 할 수 있는 조연을 하는 게 낫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거예요.

어릴 때는 알려지는 것에 대한 바람이 있었어요. 20대에서 30대 초반까지는 인기 있는 배우들이 부럽기도 했죠. 그렇다고 유명해지려고 연기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예술고등학교와 연영과를 다닐 때 상업적인 제안을 많이 받았지만 다 거절했어요. 젊은 시절의 제가 대견하고 뿌듯해요.


Q. 상업적인 제안이요? 예를 들자면요?

A. 어릴 때 아이돌 제안을 받은 적 있어요. 그때 피부도 뽀얗고 얼굴도 꽤 괜찮았거든요(웃음). 그때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지금의 행복은 없었을 거예요. 그런 생각하면 아찔하죠. 지금 제 배우 생활이 정말 좋거든요. 청년 박병은에게 고마울 따름이에요.


Q. 힘들진 않았나요.

A. 경제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제 생활을 하면서 잘 살았어요. 연극과 영화 등 작품을 꾸준히 해왔죠. 저는 뚜벅뚜벅 잘 걸어왔는데 오히려 주위 사람들이 ‘많이 힘들었겠구나’ 하면서 걱정하더라고요.


Q.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나요.

A. 부모님은 중학교 때부터 제가 무엇을 하든 한 번도 뭐라 하신 적이 없어요. 예술고등학교도 연극영화학과도 제 뜻으로 진학했죠. 저를 그냥 믿어주셨어요.


Q. 예술고등학교에 갔다는 건, 어릴 때부터 배우를 꿈꿨나요.

A. 중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거기 가면 연예인이 된대’라면서 권유하셨어요. 당시에는 배우를 꿈꾸지도 않았죠. 예고가 많지 않던 시절이라 전국에서 ‘동네에서 방귀 좀 뀐다는 녀석’들이 다 모였는데 제가 38대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죠.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연기에 대해 생각이 많아진 것 같아요. ‘보이첵’의 주인공을 맡으면서 무대에 매력을 느꼈죠.


Q. 중학교 때 담임선생님은 왜 연예인을 권유하셨을까요.

A. 제가 인기가 많았어요. (진지하게) 정말 많았어요. 금테 안경을 쓰고 다녔는데 약간 서태지의 느낌이랄까. 아침에 학교에 가면 책상에 선물과 편지가 쌓여 있곤 했죠. 진짜예요. 그래서 선생님은 ‘연예인 하면 되겠네’ 싶으셨던 거죠.



Q. 예고에서의 배움이 중앙대 연영과로 이어졌군요.

A. 고3 때 정말 ‘미친놈’처럼 공부했어요. 저 말고 안양예고에서 독서실 다닌 사람은 거의 없을 걸요. 중앙대가 제일 좋다고 해서 ‘거기 가야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대학교에 갔더니 고등학교 1학년 때 배운 연기 이론을 똑같이 다시 시작하는 거예요. 저는 더 많이, 빨리 배우고 싶은 열정이 넘치는데…. 심지어 교재도 거의 똑같았어요.

그때부터 아웃사이더처럼 겉돌았어요. 낚시를 좋아하는데 학교 안에 있는 연못에서 막걸리 마시면서 낚시하다가 걸려서 퇴학당할 뻔 한 적도 있어요.


Q. 아, 그렇게 술을 잘 드신다면서요. ‘불막’을 잘 만든다던데.

A. 불가리스+막걸리 조합이에요. 정말 맛있어요. ‘불막’을 마시고 나면 다음날에 화장실에서 아나콘다를 볼 수 있어요. 사과맛부터 시작해서 딸기맛까지 도전해보세요. 강력 추천합니다. 예전에 전라도 영암에 낚시하러 갔다가 동네 사람들이 먹는 것 보고 배웠어요.

한창 때는 주량이 무한대였어요. 대학교 때는 컵으로 마셨어요. 20대까지는 숙취가 뭔지도 몰랐어요. 한두시간만 자고 나면 술이 깼으니까요. 지금은 술을 줄여서 일주일에 다섯 번 정도 마셔요. 주량은 소주 서너병 정도?


Q. 술과 낚시가 일상이군요.

A. 보통 작품 촬영이 끝나면 일주일에서 보름 동안 낚시터에 가 있어요. 충남 서촌 일대로요. 방 하나 얻어놓고 내내 낚시만 하죠. 최고 사이즈는 가물치 95cm, 참돔 75cm…. 어종마다 다 달라요.


Q. 대단한데요(웃음). 대학 시절로 돌아가 볼게요. 연기에 대한 갈증을 어떻게 해결했나요.

A. 현장에서 채웠어요. 처음에는 고생을 많이 했죠. 제가 믿던 연기법, 호흡법이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영화 오디션에서는 그게 과잉인 거예요. ‘학교에 다닐 때는 잘한다고 칭찬받았는데 왜 이렇게 많이 떨어지는 거지? 왜지?’ 싶었어요. 의문을 품었고 스스로 실타래를 풀어갔죠. 무대 위에서의 연기와 카메라 앞에서의 연기는 다르다는 것을요.


Q. 연기 외의 다른 길은 생각해 본 적이 없나요.

A. 단 한 번도요. 주위에서는 ‘다른 것도 생각해라. 밥벌이도 해가면서 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답답해했죠. 동반 사업 권유도 많았어요. 한 번은 친구네 청바지 가게에서 한 두시간 정도 도와줬는데 가게 하루 매출의 두 세배를 벌기도 했어요. 하하. 그래도 다른 것은 하기 싫었어요. 연기하는 배우가 되고 싶었으니까요.


Q. 연기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A. 낚시와 비슷해요. 제 생활이거든요. 낚시하러 갈 생각하면 전날부터 행복해지죠. 연기도 그래요. 캐릭터를 만날 때마다 설레거든요. ‘어떻게 풀릴까’ ‘어떻게 화면에 나올까’ 설렘과 궁금증이 가득해요. 완성했을 때의 쾌감도 크고요. 감정을 쓰면서 공허하면서 시원함, 카타르시스를 느껴요.


Q. ‘원라인’에 개봉을 앞둔 ‘특별시민’ 그리고 드라마 ‘추리의 여왕’까지. 쉼없이 달리네요.

A. 바쁜게 좋아요. 부모님도 바빠 보이는 제 모습에 흐뭇해하시고요. ‘원라인’ 포스터를 보고 가족들이 정말 뿌듯해했어요. 처음으로 포스터에 얼굴과 이름이 나온 작품이거든요. 저도 감회가 새로운데 가족들이 기뻐하니 저도 더 기쁘죠.


Q. 올해 목표를 물어보려고 했는데 왠지 거창한 목표는 없을 것 같아요. 걸어온 대로 한 걸음씩 걸어가지 않을까….

A. 네. 목표는 없어요. 저를 찾아오는 작품들을 잘 만나서 솔직하고 열심히 작품 활동하면서 걸어가는 게 목표라면 목표예요. 굳이 뭘 더 하고 싶거나 욕심 부리지 않고요. 연기와 낚시로 가득한 한해를 보내고 싶어요.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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