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토크] 최용민 “목표요? 이순재 선배처럼 여든에 무대 서는 거죠”

입력 2017-05-10 10: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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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작은 배역은 있어도 작은 배우는 없다. 하나의 빛나는 작품이 탄생되기까지는 수많은 배우들의 노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주연, 조연, 단역에 상관없이 모든 배우들이 함께 호흡하고, 제 몫을 해줘야 한다. 성공한 작품일수록 조연과 단역들까지 사랑받는 경우가 많다.

배우 최용민은 출연하는 작품마다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배우다. ‘베테랑 토크’에 최용민이라는 배우만큼 적합한 인터뷰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 수많은 작품에 출연해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배우이며 작품을 빛나게 해주는 사람이다. 이에 최근 최용민을 만나 연기에 관해 많은 대화를 나눴다.

최근 MBC 월화드라마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 촬영을 마친 최용민은 “사약 먹고 죽으니까 편하다”라고 너스레를 떨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24년간 연기 생활을 했지만 사극은 세 번 정도 했다는 그는 “드라마는 촬영 현장이 늘 바쁘게 돌아가고 변할 때도 있어서 기다리는 것은 늘 있는 일이다”라며 “분장도 30분 정도 걸리고 대부분 지방 촬영이니 다른 드라마보다 힘든 건 사실이다. 그래서 사약 마시고 죽으니 마음 한 쪽은 홀가분했다”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최용민은 브라운관, 스크린, 그리고 무대 등 활발하게 활동을 하는 배우 중 하나다. 작품 속에서 그는 극의 무게를 좌지우지하는 역할을 주로 하는데 적재적소에서 감초와 같은 존재이다. 배우로서 연기를 펼칠 수 있는 현장은 어디나 소중한 곳이다. 그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현장을 꼽으라고 물으니 “당연히 무대”라고 말했다.

“무대 연기는 뭐랄까, 하나의 집을 만드는 기분인 것 같아요. 땅을 준비하고 공사를 하고 물건을 옮겨놓는 것까지 다 함께 하니까요. 또 거기서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고 관객들과 반응을 주고 받을 때면 조금 흥미진진하고 쫄깃쫄깃한 기분이 들어요. 그렇기 때문에 보람이 있어요. 사골 육수 우려내는 게 이런 기분인가? 오래 걸려도 진하게 국물이 나오면 좋잖아요.(웃음) 그래서 후배들에게도 기회가 된다면 연극 무대는 꼭 해보라고, 몰랐던 것을 많이 깨닫게 될 거라고 가끔 추천을 해주고 있어요.”


최용민이 연기를 시작한 것은 1991년으로 돌아간다. 경기고 출신 연극반 모임인 ‘화동연우회’ 회장이었던 배우 이낙훈이 그의 외삼촌이었다. 당시 연극반 출신은 아니었지만 외삼촌이 그를 불러 스태프로 참여를 했다. 최용민은 “이것저것 시키는데 재미있더라. 이후에 한 번 더 참여를 했는데 그 땐 배우로 올랐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잘 한다고 했다”라며 “선배들이 ‘대학로에서 제대로 연기 한 번 해보지 않겠냐’고 말해서 누나의 허락을 받고 연기를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누님이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최형인 교수예요. 처음에 연기를 한다고 했을 때는 반대를 했었어요. 그래서 무대에 오르는 건 무산이 됐죠. 제가 경영학 공부를 하기도 했었고 가업을 물려받아 기업을 운영했었거든요. 그러다 이후에 한 선배가 누나를 설득해 제가 처음으로 대학로에서 연기를 하게 된 거예요. 그때 처음 대학로에서 한 작품이 ‘사랑을 찾아서’예요. 이후로 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드라마도 촬영하고 그렇게 됐죠.”

최용민은 갑자기 휴대폰을 꺼내 뭔가를 찾더니 몇 개의 사진을 보여줬다. 그 사진은 자신이 연극을 하면서 인터뷰를 했던 기사를 스크랩 해놓은 것이었다. 그는 “세월이 이렇게 흘렀다”며 “누님과 함께 극단을 꾸리며 연기를 한 지도 20년이 넘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옛 기억을 털어놓았으니 예전 방송국을 다니던 시절도 물었다. 강산도 두 번이나 변하는 시간 동안 연기를 했으니 달라진 점도 확연히 느껴질 것이 아닌가.

“확실히 예전보다는 드라마 제작 환경은 많이 변했어요. 요즘에는 ‘인터넷 카페’로 대본도 확인하고 내 스케줄도 확인할 수 있죠. 옛날에는 아니었어요. 그 때 인터넷이 어디 있어, 매니저나 배우가 직접 방송국에 찾아가서 대본을 갖고 왔죠. 둘 다 장단점은 있긴 해요. 지금은 편하고 효율적이긴 한데 아날로그 적인 부분이 없어서 좀 아쉽죠. 예전 같으면 대본 받으면서 말이라도 한 번 더 걸고, 밥이라도 한 번 먹을 수 있는데 말이죠. 하지만 시대가 변하는 걸 어쩌겠어요. 앞으로는 또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죠.”


또한 그는 점점 사라져가는 ‘가족 드라마’에 대한 아쉬움을 털어내기도 했다. 최용민은 “요즘에는 현장에서 내 또래 배우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라며 “가족 드라마도 잘 없고 삼촌 역할, 사촌들 역할들이 아예 사라진 것 같더라”고 말했다.

“요즘 드라마를 보면, 주변 인물의 이야기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회사 동료나 가족 이야기 등이 점점 사라지고 두 주인공의 이야기가 부각이 되는 편이긴 한 것 같아요. 드라마가 왜 그렇게 흘러가는지는 여러 요소가 있겠죠. 제작비가 부족하다 보니 시청률이 잘 나오는 배우를 써서 광고를 많이 가져와야 하고요. 또 그걸 해외에 판매도 해야 하니 다소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최근 필력이 좋은 드라마 작가의 탄생을 바라보며 흐뭇하기도 하다고. 그는 특히 ‘황금의 제국’(2013)의 박경수 작가를 꼽으며 “글을 정말 잘 쓴다”라고 감탄했다.

“제가 박경수 작가를 처음 만난 게 ‘황금의 제국’이었는데 글을 정말 잘 쓰시더라고요. 다음 대본을 보면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면서 전개가 이어지는데 ‘우와’라는 감탄사가 나올 정도예요. 지금 ‘귓속말’도 잘 보고 있죠.(웃음) 그렇게 애착이 가는 작품들이 몇 개가 있어요. 지난해에 했던 MBC ‘엄마’(극본 김정수)인데 작가가 정말 열심히 글을 쓰셨고 대본이 참 좋았어요. 마음이 따뜻해지는 드라마였죠.”


최용민은 명지전문대학 연극영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기도 하다. 학생들에게 학점을 잘 주는 교수님인지 물어보니 “내가 학점 때문에 고생을 해서 학생들에게 학점을 잘 주는 편”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연기를 하는 사람에서 가르치는 사람으로 있을 때 가장 보람되는 일은 “학생들에게 좋은 변화가 일어났을 때”라고 말했다.

“제 이야기를 듣고 학생들의 연기가 달라질 때 보람을 느껴요. 제가 가장 강조하는 것이요? 대사를 외워서만 말하지 말라는 것이에요. 이런 대사가 있는 건 이유가 있고 목적이 있어요. 쉼표 하나까지요. 그런데 이것을 잘 숙지해서 말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학생들에게 머리로만 이해하지 말고 마음으로 이해를 하라고 가르쳐요. 상대방의 대사를 마음으로 이해하고 반응을 하는 것, 이게 연기거든요. 그렇게 되려면 훈련을 많이 해서 몸에 익숙해져야 돼요. 그런 학생들이 눈에 보이면 기분이 좋죠.”

앞으로 최용민이 꿈꾸는 배우의 삶은 무엇일까. 그의 계획을 물어보니 “80세에 무대에 서 보는 것”이라고 단번에 말했다.

“얼마 전에 이순재 선생님의 ‘세일즈맨의 죽음’을 보고 오현경 선생님의 ‘언더스터디’를 봤어요. 선배들이 아직까지 무대에서 연기하시는 모습을 보고는 정말 놀랐어요. 특히 이순재 선배님은 세 시간이 넘는 연극 무대에 오르시는 걸 보고 존경스럽더라고요. 게다가 주인공이라 대사가 되게 많거든요. 그걸 다 해내시는 모습을 보곤 감탄했어요. 선배들의 그런 모습을 보면 나도 나중에 저렇게 무대에 설 수 있을지 생각을 해보곤 하죠. 정말 그렇게 해보고 싶네요.”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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