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토크①] 정은표 “‘해품달’ 후 삶 달라져…정체성 깨닫게 해준 작품”

입력 2017-05-24 10: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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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정은표가 활약한 작품은 영화부터 연극까지 약 58편에 달한다. 이중 이훤(여진구/김수현)을 보필하는 내관 형선으로 열연한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2012)은 대표적인 흥행작으로 꼽힌다. 정은표의 인생을 적자에서 흑자로 바꿔준 기특한 작품이다. 차고 넘치는 인기를 안겨준 ‘해를 품은 달’은 이후 행보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정점의 시기, 여느 배우들이 그렇듯 인기에 취해 그릇된 판단을 할 수도 있겠지만 정은표는 달랐다.

“예전에는 작품 세 개를 동시에 하고 있을 때도 답답하고 불안했어요. 작품 하나를 끝내면 다음 작품이 없을까봐 전전긍긍했죠. 실직한 가장의 기분이었어요. 감사하게도 ‘해를 품은 달’을 찍고 나서는 득도 한 것 같아요. 작품을 하고 있든 안 하고 있든 저는 배우잖아요. 초조할 이유가 전혀 없더라고요. 배우로서의 정체성을 깨달았죠.”

‘해를 품은 달’을 기점으로 정은표의 삶은 달라졌다. 작품이 잘 되니 인기도 급상승했고 광고도 물밀 듯이 들어왔다. 주변에서는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고 부추겼다.

“그 말도 맞긴 맞죠. 돈은 들어올 때 벌어야죠. 그런데 저는 반대였던 것 같아요. 돈을 추구하는 게 좋은 건지 의문이었죠. 아내가 영향을 많이 미쳤어요. 어떤 광고가 들어왔는데 아내가 ‘그건 안 했으면 좋겠어. 자기가 그런 모습으로 비춰지는 게 싫어’라고 하더라고요. 돈 없이 연기할 때도 충분히 멋있다면서요. 아내는 제가 힘들 때는 응원을 해주지만 잘 될 때면 브레이크를 잡아주는 사람이에요. 같이 들떠있지 않고, 더 침착하게 상황을 바라봐요.”

매년 서너 편 이상의 작품을 촬영는 다작 배우 정은표지만 지난해에 드라마 ‘옥중화’ 한 편만 필모그래피에 새겼다. 51부작에 걸쳐 방송된 장편 사극인데다 정은표는 첫 회부터 꾸준히 출연했기 때문이다.

“제일 많이 출연한 배우 중에 하나죠(웃음). 워낙 길었던 작품이라 ‘옥중화’가 끝나고는 아직 차기작을 결정하지 않았어요. 물론 준비하고 있는 작품은 있어요. 요즘은 운동하면서 자유롭게 보내고 있어요.”


잠시 쉼표지만 초조하지 않다. 부모님의 걱정에도 “에이~ 재촉하지 마세요”라고 웃을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가장 가까이서 정은표를 지켜보는 아내도 “당신, 편안해 보여”라고 기뻐했다고. 10년 가까이 회사 없이 혼자 활동해온 정은표는 최근 새로운 소속사에 둥지를 틀었다. 새로운 출발, 시작점에 다시 섰다.

“돈의 맛을 알게 된 후에는 아무래도 자유롭지 못한 것 같아요. 가장으로서 지켜야 할 게 많아지고 초조해졌죠. 정말 연기가 좋아서 연기할 때가 있었는데…. 스스로 혼란스러울 때마다 ‘초심으로 돌아가야지’하며 다짐해요. [정은표가 바라던 꿈]을 향해 달려가야죠. 요즘은 조건보다 같이 작품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요. 무엇보다 나를 쓰고자 하는 사람이 간절하게 원할 때가 제일 좋더라고요. 조건을 떠나서 행복하게 임하게 되고요. 지금은 제 마음이 가는 대로, 순리대로 가려고요. 누군가가 나를 부를 때는 다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세월이 더해질수록 연기가 좋다는 정은표에게 어떤 배우,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물었다.

“보는 사람에게 깊은 감동과 만족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세월이 변하면서 연기자도 보는 사람들도 변한 것 같아요. 더욱 디테일해졌죠. 대중의 평가가 평론가 수준이에요. 더 긴장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배우로서 누구보다 성실하게 연기해야죠. 인간 정은표로는 아이들을 행복하게 성장시키고 싶어요. 할 게 많네요. 열심히 살 수밖에 없어요. 하하.”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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