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토크①] 이준혁, 요동치는 연예계에서 배우로 산다는 것

입력 2017-07-12 1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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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0년 전, 영화감독을 꿈꾸는 한 고등학생이 있었다. 소년은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는 마음으로 야심차게 영화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입성 며칠 만에 영화사가 망해버렸다. 낙심하던 그때 “연출을 하려면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시선’이 있어야 한다. 차라리 연극을 한 번 해봐라”는 누군가의 조언에 따라 소년은 연극 동아리로 방향을 틀었다. 배우 이준혁(45)의 다소 엉뚱한 연기 입문 스토리다.

“YMCA 고등학생 연합 서클 ‘쎈’(scene)이라고 있었어요. 이곳을 통해 연극을 접했죠. 그러다 제대 후 극단 백수광부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연극과 연기를 시작했죠. 30대 중반까지 연극 활동과 학교 강의를 병행하면서 지냈어요. 영화와 드라마로 넘어온 지는 10년도 채 안 됐죠.”

이준혁의 상업 영화 데뷔작은 ‘과속스캔들’(2008)이다. 이는 강형철 감독의 상업 영화 데뷔작이기도 하다.

“강형철 감독이 학생일 때 우리 부부와 단편 영화를 많이 찍었어요. 아내도 연극배우 출신이거든요. 그런 연이 있었기에 강 감독이 본인의 데뷔작에 감사하게도 우리를 써준 거예요. 사실 입봉 감독이 배우를 데려다 쓰기 쉽지 않잖아요. 정말 감사했죠. 사랑할 수밖에 없는 감독님이에요.”

이준혁의 연기 인생은 ‘과속 스캔들’ 전후로 극명하게 나뉜다. 이전까지 매체에 관심이 전혀 없었던 이준혁은 ‘과속 스캔들’을 계기로 각종 영화 오디션에 제 몸을 던졌다. 그는 이름 모를 단역에서 시작해 지금 이 자리까지 왔다.

“제가 안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관심도 없었죠. 잘나고 잘생긴 사람들이 넘쳐나는데 ‘제 얼굴’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드라마에서도 영화에서도 저를 필요로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도전할 생각 자체를 안 했던 것 같아요.”


매체에 진출한 지 불과 9년 밖에 안 됐지만 이준혁의 출연작은 약 70편에 달한다. ‘다작의 아이콘’. 요즘 인기 좀 있다 하는 작품에는 꼭 이준혁이 있다.

“그만큼 단역을 많이 한 거예요. 하하. 정말 쉬지 않고 했죠. 왜 그랬냐고요? 즐거우니까요. 연기할 때 비로소 제가 살아있는 것을 느껴요. 연기 자체가 가치 있는 일이죠. 배우는 카메라 앞에 있어야 하잖아요.”

한 해에도 이준혁의 출연작 최소 10편이 시청자 혹은 관객을 찾아간다. 최근 몇 년 사이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구르미 그린 달빛’에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 현재 방송 중인 ‘아버지가 이상해’까지 연타석 홈런을 날리고 있다. 그러나 이준혁은 달콤한 인기에 취하지 않고 끊임없이 마음을 다잡고 있다.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마인드다.

“동명이인 이준혁 배우가 있는데 포털 사이트에서 함께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어요. ‘구르미 그린 달빛’ 때는 제가 위에 있었다가 지금은 ‘비밀의 숲’이 있어서 그 분이 올라갔죠. 그런 것만 봐도 참 순식간이에요.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만큼 빠르게 요동친다는 것을 알 수 있죠. 빨리 잊히는 곳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인지도와 인기를 얻었다고 일희일비하지 않으려고요. 인기에 에너지 쏟지 않고 그 힘으로 제 일에 정진하는 게 낫죠. 게다가 제가 아이돌만큼 인기 있는 것도 아니고요. 하하.”


시청률과 화제성을 동시에 잡은 인기 주말 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로 낙천적인 나영식 역으로 시청자들을 만나고 있는 이준혁. 그 다음 작품은 8월 개봉하는 미스터리 스릴리 영화 ‘장산범’이다. 그간 대중적인 작품에서 밝고 유쾌한 캐릭터를 맡은 것과 달리 이번 영화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선보일 계획이다. 독립영화 ‘애니멀 타운’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보여온 추악하고 어두운 캐릭터를 큰 상업 영화에서 처음으로 꺼내들었다.

“상업영화에서도 무거운 역할을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다양하게 연기해야 재밌잖아요. 아마 ‘장산범’이 분기점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대중이 또 다른 이준혁의 색깔을 볼 수 있는 작품이 될 거예요.”

이준혁은 “다작이 꼭 좋은 건 아니다. 중요한 비중의 작품에서 긴 호흡을 가지고 연기하고 싶은 바람”이라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연극으로의 회귀는 드라마와 영화에서의 입지를 굳건히 다진 후의 계획이라면서 “지금은 정진할 때”라고 강조했다. 연기 이전부터 뜻을 품었던 연출에 대한 꿈도 덧붙였다.

“아직 연극으로 갈 시기는 아닌 것 같아요. 매체에서 자리를 완전히 잡은 것도 아니니까요. 한 번 흐름이 끊기면 안 찾더라고요. 제가 스케줄을 조정할 수 있는 위치에 간다면 연극을 할 수 있겠죠. 연출도 아주 나중에, 하고 싶은 간절한 이야기가 있을 때 하고 싶어요. 영화는 이야기가 중요하니까. 지금은 끊임없이 쉬지 않고 연기하고 싶어요. 쉬고 싶다는 생각은 없어요. 순리대로 주어진 일에 감사해하면서 열심히 일해야죠.”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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