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토크①] 진경 “좋은 대본 보면, 맥박조차 쾌감이 느껴져”

입력 2017-07-19 1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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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심장이 뛰는 작품을 만난 것 같아요.”

배우 진경이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로 4년 만에 무대에 올랐다. 그 동안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맹활약을 하다 친정 집으로 돌아온 진경의 모습은 어느 때보다 평안해 보였다. 그래서 그런 걸까. 그 동안 봐왔던 ‘걸크러쉬’ 매력은 어디 갔는지 보이질 않고 친한 언니 같은 다정함이 느껴졌다. 연극을 하는 행위 자체가 자신에게는 치료와도 같다는 진경의 말이 진심처럼 다가온 이유도 이 때문이다.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은 종군기자 연옥이 위암 선고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오며 다시 만나게 된 친구이자 옛 연인 정민과 매주 목요일마다 한 주제로 토론하며 서로의 관계를 다시 논하게 되는 작품이다. 이 대본을 보자마자 진경은 ‘이거다!’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하고 싶은 마음 반, 해야 한다는 마음 반이었어요. 그 동안 드라마와 영화를 찍으면서 연극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계속 안 하게 되면 멀어질 것 같고 연극을 했던 사람으로서 사명감도 있었거든요. 대중매체에 쉼 없이 나갔더니 잠깐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때 마침 ‘그와 그녀의 목요일’ 출연 제안을 받았고 시기 적절하게 연극을 하게 됐죠.”

그가 휴식을 취하며 연극에 참여한 것은 극을 가볍게 여겨서가 아니다. 오히려 연극을 하는 활동 자체가 진경에게는 배우로서, 또 한 사람으로서 회복 되는 기분이라고. 사실 인터뷰 내내 진경은 “연극을 하며 마음의 치료를 받는 기분”이라고 반복해 말했다.

“예전부터 연극 출연 제안을 많이 받지만 대부분 캐릭터가 돋보이는 작품이나 코미디 장르가 많았어요. 물론 캐릭터가 연기의 본질 중 하나죠. 내 모습과 캐릭터의 성격을 얼마나 적절히 섞어서 표현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연기잖아요. 그래서 배우를 ‘듀얼 퍼스낼리티(Dual Personality)’라고도 하죠. 영화나 드라마는 캐릭터 뒤에서 연기하는 경향이 강한데 연극은 그나마 관객과 함께 하며 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게 필요했어요. 진솔한 내 모습을 표현하고 연기하고 싶은 마음이 컸죠.”


‘정연옥’이라는 여성의 인생을 연기하며 진경은 격세지감이 든다고 했다. 2005년 윤석화의 ‘위트’를 봤을 때만 해도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되돌아보는 연기를 해보겠다고 다짐을 했는데 이제 자신이 그런 연기를 하고 있으니 신기할 따름이라고.

그는 “대본을 받고 읽으면서 이걸 하면 내 인생도 돌아볼 기회가 생길 것 같았다”라며 “뭔가 묘한 교감이 되는 기분이었고 뛰는 맥박에서도 쾌감이 느껴졌다”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사실 연옥은 외면적인 면모보다 내면을 많이 보여주는 캐릭터죠. 그는 성공한 여성이지만 삶을 들여다보면 기본적인 인간관계가 다 어그러진 상태에요. 부모에게 받았어야 할 사랑, 연인에게 받았어야 할 사랑 등이 결핍돼 있는 상태죠. 그런데 거기에 대해 말 한마디 하지 않아요. 겉으로는 강인하지만 속은 참 연약한 사람이죠. 그런 연옥의 모습을 부분적으로 보면 공감이 많이 가요. 그래서 이 작품에 더 애정이 갔던 것 같아요.”

‘그와 그녀의 목요일’에서 연옥은 종군기자다. 극 중에서 특별히 기자로 활동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대사를 통해, 역할을 통해 자신의 직업인 ‘배우’에 대해서 다시 보게 됐다고도 말했다. 진경은 “그런 대사가 있지 않나. ‘이집트에서 카메라를 내려놨죠.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왜 나는 남의 사진만 찍고 있는 걸까.’라는. 한 때 제가 그런 고민을 했다. 배우도 남의 삶을 사는 직업이니까”라고 말을 이어나갔다.

“저도 연옥이처럼 일에 집착하던 때가 있었어요. 일이 아닌 일상은 의미가 없는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이렇게 늙어서 죽을 날이 다가오면 무섭고 후회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게 ‘일’이란 ‘도피처’ 같은 거였어요. 그래서 마지막에 연옥이가 끝내 자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내린 결정이 참 짠하기도 했죠. 일상의 소중함을 못 느낀 제 자신과 연옥이가 둘 다 짠했어요.(웃음)”

진경은 이런 고민을 하기 시작했을 때 만성위장장애를 앓고 있었다. 그는 “쉴 때는 무조건 병원에 갔다”라면서 배우라는 직업이 갖고 있는 부담감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기도 했다.

“힘들어서 쉬고 싶을 때도 있지만 도태될까 두렵기도 하죠. 주변 사람들이 ‘야,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라며 쉬지 말고 일하라고 많이 이야기를 해요. 스스로도 혹여 나를 찾지 않을 까봐 제안 들어오는 작품이 있으면 놓치고 쉽지 않은 마음도 커요. 그럴 때마다 잃어버린 내 일상은 누구에게 보상받나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하고 있는 연극이 좋아요. 그런 고민을 하던 차에 이 연극을 만나고 조금씩 생각을 하고 있어요.”

→ 베테랑 토크②에서 이어집니다.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주)스타더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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