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토크②] 진경 “염세주의자였던 20대, 이선균·박해일도 무섭다고 할 정도”

입력 2017-07-19 10:3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 베테랑 토크 ①에서 이어집니다.

1998년 연극 ‘어사 박문수’로 배우의 첫 발을 디딘 배우 진경의 젊은 시절은 꽤나 어두웠다. 그는 스스로를 “나는 염세주의자였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때는 왜 그랬는지 머리도 짧게 하고 세상에 반항적인 모습을 많이 보였다. 그런 마음으로 연기를 해야 된다고 생각했었다”라며 “마음 속 90%는 화로 가득했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20~30대 때는 성격이 모났다고 해야 되나요. 그 뾰족함이 말로 다 할 수가 없었어요. 어느 날 강신일 선배가 ‘너 그러면 사회생활 못해’라고 조언하시기도 하셨어요. 한예종 동기인 이선균 씨는 ‘옆에만 가도 사람이 죽을 것 같아’라고 했었고 박해일은 ‘누나 눈에서는 독이 나오는 것 같아요’라고 하기도 했어요. (웃음)”

“돌이켜보면 그게 멋있는 거라고 착각했었던 것 같다”라는 진경은 “나이를 먹으니 성격이 둥글둥글해지더라. 많이 유해졌다. 아마 지금 내 후배가 그러면 정말 안 예뻐 보였을 것 같다. 강신일 선배는 얼마나 내가 안 예뻤을까”라며 웃음을 터트렸다.

진경은 그가 생애 처음으로 선택했던 것이 ‘연기’라고 말했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 시키는 것을 아무 말 없이 따랐던 그가 연기를 선택한 이유는 소통할 방법을 배우기 위함이었다. 그는 “일종의 합법적인(?) 감정 소모의 방법을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워낙 성격이 어둡고 표현을 하지 않은 아이였어요. 배출을 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죠. 그런데 어느 날 연극을 한 편 봤는데 무대에서 배우들이 소리를 지르고 울고 화를 내는 모습을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 사람들은 저기서 감정을 표현해도 뭐라 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저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도 ‘연기’는 일종의 제 치료를 위해 시작한 거였어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그가 잊을 수 없는 건 대학교에서 한 첫 워크숍 연극이었다. 손톤 와일더의 ‘우리 읍내’에서 여주인공 ‘에밀리’ 역을 맡은 진경은 우는 연기를 해야 했는데 훈련이 안 된 상태에서 그게 가능할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지문이 ‘에밀리가 복받쳐서 운다’였어요. 진짜 내가 할 수 있을지 궁금했는데 되더라고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해요. 그 연기를 하면서 감정을 표현하는 게 이런 거라는 깨달음을 얻은 것 같아요. 에밀리가 긴 머리를 하고 있던 여성인데 제가 당시에 숏컷이었거든요. 가발을 쓰고 울었던 기억이 지금 막 떠오르네요.”


어느 배우나 그랬듯, 진경에도 힘든 시기는 있었다. 무명의 시기는 생각보다 길었고 불안감이 지속됐다. 그는 “대부분 배우들은 극단에 있지 않나. 나는 극단 소속은 아니어서 프로덕션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일년에 한 작품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극단에 있으면 돈은 못 벌지만 작품 활동은 계속 할 수 있어요. 그와 반대로 저 같은 경우는 돈은 벌지만 그럴 기회가 많지 않았다는 거죠. 일이 없으면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충당했어요.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 때는 연극 배우들을 영화나 드라마에서 잘 써주지도 않았을 때였으니까요. 많은 배우들이 혼자서 프로필 돌리며 작품을 기다렸죠.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쉽게 일이 풀리지 않아서 그 때가 가장 힘들었던 때였어요.”

하지만 이제는 캐스팅 우선순위를 달리는 배우가 됐다. ‘감시자들’, ‘암살’, ‘베테랑’, ‘마스터’ 등 흥행 쾌조를 달렸던 작품에서 활약을 보였고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 ‘함부로 애틋하게’, ‘낭만닥터 김사부’ 등에서 열연을 하며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배우가 됐다. 이제는 티켓을 파는 배우로 무대에 돌아왔다고 하니 진경은 웃으며 “진짜 뿌듯하고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대학로가 극단에서 프로덕션 체재로 바뀌면서 스타 캐스팅이 시작됐었어요. 그러면 마케팅은 그 스타 위주로 돌아가니까요. 기사만 봐도 스타들의 이름이 우선으로 적혀있고 저는 그 뒤에 ‘연극 배우 진경’이라고 돼 있었죠. 어린 마음에 그 때는 씁쓸했어요. 연극은 우리의 세계인데 연기 트레이닝이나 하려고 연극하나 생각도 들고.(웃음) 그런데 뭐 지금은 다들 실력이 좋은 분들이 많이 오시고, 연극 배우들도 대중매체로 많이 넘어가시잖아요. 저는 처음 이 연극 시작 했을 때 관객이 없으면 어쩌나 싶었거든요. 그런데 저를 보러 오시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관객석이 차 있는 모습을 보면 정말 감사하죠.”

마지막으로, 진경에게 배우로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물었다. 그는 이 질문에 한참을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일이 도피처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물론 배우에게 연기는 생계 수단이기도 하지만 그 이상의 가치도 있는 것이니까요. 대신 그 가치를 너무 과대 포장하지 않은 채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삶의 본질, 인간의 본질을 마주할 수 있는 작품을 만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 베테랑 토크 ③으로 이어집니다.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주)스타더스트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