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토크①] 이병훈 PD, ‘대장금’ 연출자도 한때는 월급 도둑?

입력 2017-08-02 1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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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史劇) 장르는 지금까지 시청자를 잡기 위해 다양한 변주를 계속해 왔다. 사극 멜로부터 시작해 퓨전사극까지, 심지어 최근에는 하이브리드 팩션 사극이라는 장르까지 나와 시청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이런 사극의 변화는 오로지 젊은 시청층이 이 장르를 외면하는 것을 막기 위한 나름의 자구책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사극 장르가 보여준 이 기특한 노력의 시작에 ‘허준’, ‘대장금’, ‘이산’ 등을 만들어낸 이병훈 PD가 있다.

“‘옥중화’를 끝내고 난 뒤에는 한동안 정신없이 잠만 잤네요. 빡빡한 국내 드라마 촬영 환경에서는 저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드라마 PD들이 이렇지 않을까 싶어요. 전 세계에서 70분짜리 드라마를 일주일에 두 편씩 만들어 내보내는 나라는 아마 우리가 유일할 거에요.”

이제 이병훈 PD의 나이가 만으로 73세다. 현역에서 물러나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못할 나이임에도 그는 여전히 촬영 현장과 사극 장르에 대한 애정으로 머릿 속이 가득하다.

“‘대장금’ 때까지만 해도 제가 한 70% 정도는 만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서동요’ 끝나고 나서는 ‘이러다 제가 죽겠구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김근홍 PD에게 조연출을 맡기고 스튜디오, 야외 촬영을 나눠서 했어요. ‘옥중화’ 때는 그 비중을 좀 더 조연출 쪽에 치우치게 했죠. 그래서 그나마 조금 편하게 찍었죠. ‘이 정도만 돼도 앞으로 더 뛸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이병훈 PD의 증언이 아니더라도 국내 드라마 촬영 환경의 열악함은 이미 많은 대중에게 알려진 사실이다. 일주일에 두 번, 70분짜리 두 편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어찌 보면 하나의 영화를 만들어 내는 것보다 더 힘들고 고된 일이다.

특히 이 PD가 그동안 몸담은 장르는 무려 사극이다. 정신적으로보나 체력적으로보나 현대물보다 훨씬 힘든 장르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는 왜 계속 사극을 놓지 못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그가 직접 겪은, 요즘 말로 ‘월급도둑’이었던 과거 때문이다.

“입사 후에 조연출을 했던 드라마도 사극이었어요. 그 후에 수사물을 연출하기도 했었죠, 그러다가 77~8년도에 지금의 아내를 만나 연애를 시작했어요. 그 때 정신이 다른데 팔려 있었는지 연출을 맡은 드라마의 시청률이 뚝뚝 떨어졌어요. 결국 드라마국에서 쫓겨나서 예능국 PD가 됐죠.”


‘대장금’을 만든 PD가 예능 PD였다니. 위화감이 느껴질 만큼 생소한 이야기다. 이에 이병훈 PD 역시 “그 때만큼 괴로운 적이 없었다.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내가 예능국 일에 대해 뭘 알았겠어요. 그냥 큰 행사가 있으면 도와주는 정도지. 왜 요즘도 회사에서 해고하려고 할 때 전혀 상관없는 일을 시켜서 압박을 준다고 하잖아요? 그 때의 내가 그랬어요. ‘월급 받고 일 안하는 것만큼 괴로운 것도 없구나’ 라는 걸 느꼈죠. 당시 아내가 회사에 출근하는 저를 아이들과 함께 배웅할 때마다 눈물이 왈칵 났어요. 회사에서 굉장히 대단한 일을 하는 줄 아는데 정작 제가 하는 건 신문 읽고 퇴근 시간까지 죽 치는 것 밖에 없었으니까.”

이런 고난의 시간이 무려 6개월 간 이어졌다. 계속되는 스트레스가 그를 갉아먹기 시작할 즈음 이병훈 PD의 사극 인생을 다시 열어준 작품이 등장한다.

“그 때 당시 예능국은 쇼와 코미디 뿐만 아니라 좌담회 같은 것도 제작을 했어요. 당시에 교수들이 나와 역사적 인물의 주요한 일생을 설명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죠, 거기에서 제가 그 역사적 인물들의 일화를 드라마화 시키는 일을 맡게 됐어요. 지금으로 치면 ‘서프라이즈’ 같은 거죠.”

분량은 고작 15분, 하지만 이병훈 PD는 오랜만의 드라마 작업에 혼신을 다했다. 적은 제작비로 만들어지는 15분 분량의 드라마를 위해 그는 촬영팀을 이끌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이에 윗선에서 “15분 짜리 만드는데 무슨 로케이션을 가느냐. 대충 만들라”고 타박했을 정도.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교수들 이야기보다 드라마가 더 재밌었던 모양이에요. 조금씩 분량이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15분에서 20분으로 늘어났고 그 프로그램이 끝났을 때는 50분짜리 전체 방송 중 40분이 드라마로 채워졌어요. 그렇게 그 작품을 들도 다시 드라마국으로 금의환향 했죠. 이후에 ‘조선왕조 오백년’ 연출도 하고 ‘암행어사’라는 작품도 했어요. 그 프로그램 덕에 온각 역사 서적을 읽고 인물에 대해 알아가면서 사극을 하게 된 거죠.”

동아닷컴 곽현수 기자 abroa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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