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토크②] 이병훈 PD “젊은 층 잡으려 왕(王) 아닌 인물에 주목”

[베테랑토크②] 이병훈 PD “젊은 층 잡으려 왕(王) 아닌 인물에 주목”

앞서 밝힌 이병훈 PD의 금의환향 이후 그는 국장 자리까지 오르는 등 이후 순탄한 직장생활을 했다. 하지만 그는 곧 관리직에서 현장에서 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 때 제작한 것이 바로 전광렬 주연의 ‘허준’이다.

“이제 현장 PD가 되고 난 후 뭘 만들어야 하나 고민하는데 당시 대학 신입생이던 딸 아이가 ‘아빠, 또 사극할거야?’라고 물어요. 그러면서 ‘사극 재미없다. 치마 저고리에 갓 쓰고 나오는 드라마 친구들도 재미 없어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때 당시 일본에서 ‘히데요시’라는 사극이 시청률 30%를 넘어 굉장한 이슈가 됐어요. 그래서 한 매체에서 ‘비결이 뭐냐’고 물었더니 ‘아무래도 중고등학생들이 본 것 같다’고 답하더라고요. 그 때 ‘젊은이들이 재밌어할 사극’을 만들자고 결심했죠.”

이병훈 PD가 이런 결정을 내리고 취한 행동은 과감 그 자체였다. 주인공의 선정부터 O.S.T에 이르기까지 그는 사극의 체질 자체를 변화시켰다 결국 2017년 우리가 보고 있는 사극들은 일정 부분 이병훈 PD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우선 젊은이들은 드라마 늘어지는 걸 극도로 싫어해요. 그런데 과거 우리 사극은 한 사건가지고 며칠씩 끌고 그랬어요. 그래서 저는 지금까지 사극을 한 번도 안 써본 작가와 해보기로 했어요. 이 정도의 변화가 없으면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사극을 만들 수 없다고 판단한 거죠. 그리고 여기에 왕이 아닌 인물 중에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 성공한 입지전적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세웠어요. 그래야만 그 인물의 성공에 시청자들이 통쾌함을 느끼니까요.”

실제로 이병훈 PD는 ‘허준’ 이후 정조 대왕의 이야기를 다룬 ‘이산’을 제외하고는 임금을 주인공으로 내세우지 않았다. ‘대장금’, ‘동이’, ‘상도’ 등을 봐도 이병훈 PD의 이 같은 신념은 꾸준히 지켜져 왔다.

이 밖에도 이병훈 PD는 사극에서 두 가지 요소를 변화시켰다. 사극 의상과 음악에 손을 대 충격을 안겼다.

“과거 사극을 보면 주로 의상이 다 검은색 아니면 흰색이었죠. ‘백의민족’이라서 그런 것 같은데 실제로 흰색은 때가 많이 타서 우리 조상님들이 잘 안 입었어요. 나들이용 정도로 입었지. 그래서 그때 한복제조업체와 연계해서 약 20종의 의상을 만들어 놓으라고 했어요. 또 등장인물이 40명이면 40명의 의상을 다 다르게 했죠. 하다 못해 엑스트라는 머리띠 색깔이라도 바꾸라고 했어요. 화면으로 나가니까 색감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죠.”

“거기에다 음악도 국악이 아닌 켈트족의 음악이나 클래식을 사용했어요. 그 전에는 트로트도 많이 사용됐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았거든요? ‘허준’ 첫 회가 나가고 나니 ‘사극에 피아노 소리가 어울리느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점점 많은 분들이 익숙해 지셨죠.”

이처럼 이병훈 PD가 사극 장르에 미친 영향력은 크다. 그리고 짧은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더해 사극을 만드는 그의 방식은 여전히 논쟁거리다. 또 이병훈 PD라는 이름 자체가 사극 장르에서 가지는 위치도 있다. 쉽게 차기작을 세상에 내놓을 수 없는 이유다.

“새 드라마를 할 때마다 오는 중압감이라는 것이 있죠. 세상 사람들이 ‘이제 내게 뭘 보여줄 것이냐’고 제게 기대하는 게 있으니까요. 저 역시 늘 새로운 걸 보여준다고 잔뜩 새로운 것을 준비했는데 반응이 시원찮으면 당황스러워요. 제 마음과 달리 어쩌면 제 사고가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것일지도 모르죠.”

동아닷컴 곽현수 기자 abroa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