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토크③] 이병훈 PD “女 주인공 고르는 기준? 똑똑하되 요염하지 않아야”

입력 2017-08-02 1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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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2 10:30사진│동아닷컴DB, MBC 제공

이병훈 PD 이전의 사극은 분명히 남성 중심이었다. 주로 왕이나 장군 등이 주인공으로 내세워지면서 여성은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나게 된 것이다. 이에 이병훈 PD가 연출해 공전의 히트를 거둔 ‘대장금’의 위치는 특별하다. 굳이 사극 장르에 국한하지 않더라고 한국 드라마 역사에서 ‘대장금’을 빼놓고 말할 수는 없다.

“‘허준’에서 예진 아씨가 의녀로 나왔잖아요? 그 때 공부를 위해 중앙대학교 대학원 박사 논문에서 의녀 교육 제도에 관한 이야기를 읽었어요. 거기서 장금이라는 이름을 봤어요. 그런데 거기서 장금이 중종의 주치의 노릇을 했다는 거 에요. ‘요즘도 대통령 주치의가 여자가 아닌데 조선시대에?’라는 생각이 들어서 실록을 뒤져봤더니 ‘여인이 임금의 병세를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비판하는 의견이 나오다가 나중에는 ‘대장금이 임금의 병세를 중신들 앞에서 설명했다’고 나와요. 이렇게 입지전적인 인물이 또 어딨겠어요.”

사진|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이렇게 탄생한 ‘대장금’은 아시아 전역을 뒤흔들며 드라마 한류를 이끌었다. 그리고 이 ‘대장금’의 성공은 ‘동이’, ‘이산’, ‘옥중화’ 등에서 우리가 만났던 성장형 여주인공을 탄생시켰다.

“사실 요즘 어느 여성이 신사임당을 롤모델로 삼고 있겠어요. 시대가 변했으니 현모양처가 꿈인 시대도 아닌거죠. 그리고 제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하나 같이 전문직이에요. 그러다 보니 이걸 연기하는 배우들도 똘똘해 보여야 하는 게 첫 번째 조건이었어요.”

그의 말대로 이병훈표 사극은 이영애를 시작으로 한효주, 한지민, 진세연 등이 맡아 극의 중심을 이끌었다. 점점 능력치가 상승하면서 허점 없는 만능형 주인공이 됐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병훈의 주인공들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사진|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두 번째 캐스팅 기준은 얼굴에 선한 느낌이 있어야 해요. 주인공은 늘 정의를 추구해야 하는데 요염한 느낌을 주거나 주면 안돼요. 사실 요염하고 색기가 흐르는 여배우를 남자들이 좋아하긴 하죠. 그런데 이게 정의를 추구하는 주인공이면 이야기가 달라요. 핀트가 안 맞는다고 해야 하나요?”

하지만 이병훈 PD는 이런 기준을 다음 작품에서도 고집할 마음이 없다. 현재 방송되는 국내 드라마는 물론 해외 드라마까지 모두 섭렵하는 그는 다음 작품의 주인공에게 초능력을 줘야 하나 고민 중일 정도로 유연한 사고를 지니고 있다.

“금방 이야기 했던 주인공이 요염해서는 안된다는 것도 제 편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누군가 ‘요염한 사람은 정의로우면 안 되느냐’고 물어보면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도 없잖아요. 만약 차기작을 한다면 주인공을 고르는 제 기준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요염함의 대명사인 이효리가 제 사극의 주인공을 맡지 못할 이유도 없죠.”

동아닷컴 곽현수 기자 abroa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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